[Review]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자람'

매일의 나는 다르고, 그 다름이 내가 된다.
글 입력 2022.05.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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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방송사마다 트롯을 소재한 예능 프로를 경쟁하듯이 만들어냈다. 그로 인해 그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트롯은 인기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그때의 전성기를 계기로,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한국의 음악 장르인 트롯을 향유했다. (친구 몇몇은 트롯으로 컬러링을 변경하기도 했다) 그렇게 흔히 아줌마 아저씨들만이 즐겨 듣는 노래라는 편도 조금씩 사라졌다.


* 트롯 : 대한민국의 음악 장르. 기존의 국악을 비롯한 한국 전통 음악과 당시 서양 블루스 계통의 음악 문화, 그리고 일본의 근대 대중가요인 엔카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트로트를 노래하는 가수 중 국악인 출신의 가수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두 장르 모두 흥 많고 한 많은 한국 역사를 뿌리로, 다른 음악 장르와는 달리 뭔가 깊은 맛을 낸다는 면이 비슷해서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 판소리는 우리에게 낯설다. 트롯은 어릴 적 <전국노래자랑>을 틀면 익숙하게 들을 수 있었고, 노래방에서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기에 그리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 판소리는 트롯과 음악적으로 비슷한 면은 있지만, 연극이나 공연 예술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고, 난 트롯이 어머니 아버지 노래라면, 판소리는 그야말로 아주 옛날 옛적 음악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대로 판소리 공연을 본 적도, 아예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었다.

 

 

오늘도자람_표1.jpg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악인 이자람의 <오늘도 자람>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간접적으로 판소리를 접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이 책에 판소리 공연에 대해 묘사해 놓은 것도, 판소리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것도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국악이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사는, 한 여성의 이러저러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즉, 소리꾼 이자람이 지금까지 소리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경험함으로써 얻은, 인생 교훈이나 가치관들이 담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판소리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소박하게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쓴 사람이 한다는 판소리가, 대체 어떤 것인지 말이다.

 

 



판소리는 12마당으로 그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마당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다섯 마당이며, 모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중 춘향가의 경우 완창 시간이 최장 8시간 30분이라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판소리는 소리꾼이 청중에게 단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는 예술이 아니다. 판소리를 구성하는 3요소가 소리꾼, 고수, 청중인 만큼 판소리는 관객과 함께 공연을 완성해나간다. 즉, 관객이 극 중에 호응을 할 수 있다.


공연은 당연히 숨죽이고 보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고, 관객이 무대에 개입한다는 것은 상상치도 못했던 난, 이 사실도 책의 '추임새(p.62)'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자람은 공연 전 관객에게 추임새를 설명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도록 가르쳐준다고 한다. 그리고 판소리라는 장르의 특성을 잘 아는, 추임새 센스를 잘 갖춘 관객을 만나면 시너지효과가 정말로 크다고 한다. 

 

위 영상은 헤밍웨이의 소설인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로 재해석하여 창작한 이자람의 최근작이다. 짧고 굵은 이 영상을 보고 나면 분명 나처럼 다른 공연 영상도 찾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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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건 다 잘해서 ‘이잘함’이라고 불린다는 이자람. 그녀의 이름 앞으로는 소리꾼 뿐만 아니라 음악감독, 뮤지션, 착장가, 작가 등 여러 포지션들이 줄을 선다.


그녀는 다섯 살 나이에 가요 <예솔아!(1984년)>로 큰 인기를 얻었고, 스무 살엔 <춘향가> 최연소·최장시간(8시간)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후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과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재해석한 작창극, <사천가>와 <억척가>로 프랑스, 호주, 홍콩, 루마니아, 우루과이, 브라질 등 공연을 돌며 전석 매진의 신화를 쓰기도 했다.


2016년 부터는 국립창극단의 객원 음악감독, 작창가,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판소리에 그치지 않고 뮤지컬, 밴드 장르까지 섭력중이다.

 

*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나는 앞서 말한 이자람에 대한 소개 글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난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의 에세이라, 분명 나와 다른 삶을 살았고 시작부터 다르겠지?’. 하지만 나는 책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았다.

 

물론 그녀가 얼마나 대단히 노력하고 멋진 마인드를 가졌는지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이 꾸밈없이 솔직한 이자람의 에세이에서 그녀의 평범함 즉, 여린 마음이며 가끔 남들처럼 방황하고 세상을 미워하는 이자람의 모습에 주목했다.


지금껏 나는, 너무나도 완벽한 모습을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분명 그 자리까지 오는 과정에서 잘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야, 물론 좌절하거나 실패를 맛보더라도 금방 일어났겠지, 남다른 특별한 기회, 타고난 소질, 자질 등이 있었것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수도) 


그런데 이자람 역시도 남들처럼 평범히 눈치 보고, 상처받고, 그러다 결국 예민해진 것을 보았다.

 

[이 고함이 무대 감독을 향한 것인지, 프로듀서를 향한 것인지, 미련하게 이것을 감당하고 있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인지.. 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짓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울었다. 너무 분하고 힘들어서 울었다. '예술가는 무대위에서 죽어야' 얼어죽을. 나는 이 어리석은 문장에 침을 뱉고 싶다. - '무대 위에서 죽어라' 중]

 

[무대 위의 이자람은 개인 이자람보다 더 많은 지식과 고뇌와 올바름으로 무장한 듯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렇구나! 나는 실체가 없는 사명감을 붙들고 그 의미들이 내게 두껍을 입히는 것을 허용해왔다! 스스로를 정말로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기꾼이 되는 것이구나! - '사명감' 중]


또한 이자람은 삶에서 직면한 사건 사고 또는 문득 들어와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들에 대해, 단순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맞서 싸우지만은 않았다. 그녀 역시도 바닥까지 빠진 생각에 모든 것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솔직한 자신을 만났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자신의 '마음'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리 좋은 방향으로 타인이나 세상에 돌아가도록 두고 있다.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욕망은 지난한 습관이 되어 나의 언어에, 순간적인 표정과 행동에, 상황에 따른 리액션에 얼룩처럼 들러붙어 있다. 굳이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가 싶을 때면 잠시 멈추는 노력도 하고 있다. - '착한 아줌마' 중]

 

[몸과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에게 무언가를 시키고 있다면 단단히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욕망에 사로 잡힌 것이나, 그릇이 허용치 않은 야망을 넘보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둔해지면 점차 남에게도 둔해진다. 둔해지다 보면 서서히 잃게 된다 소중한 것들을. - '무대 위에서 죽어라' 중]

 

[나는 사람의 자리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기술과 건강을 돌보며 삶을 걸어간다. 그러다보면 사람의 자리에 진짜 내 사람들이 칸을 채워가고 있다. - '검은 터널의 시간' 중]

 

[나를 살짝 갈아넣어서 살아도 별문제 없다가도 이제는 거절을 좀 잘해야겠다 싶을 때가 분명히 온다. 당신이 스스로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타인도 당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기 시작할 것이다. - '거절' 중]

 

그리고 이자람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저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삶은 가진 자에게 더욱 유리하게 기회를 주니까. - '보이지 않는 축적' 중]

 

하지만 이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사건 때문에 어떤 순간의 결정 때문에, 인생이 뒤바뀌고 사람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하니까. 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실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인, 보이지 않은 시간의 축적이다. - '보이지 않는 축적' 중]

 

[어떤 일이든 내가 만들면 기회인 거고 기회인 줄 알았는데 싱겁게 지나가면 그냥 내것이 아닌 해프닝일 뿐이다. 기회는 끊임없이 내 안에서 발생해 내 손으로 확실해진다. - '인생에는 기회가 세번 온다며' 중]

 

그렇게 나도 이제,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고 내가 만들 기회를 믿고,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정확히 걸어 나가야지. 남에게 착한 사람보다 먼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무엇보다 솔직해져야지. 그럼 자연스리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어야지.

 

이자람은 수백 번의 무대를 거치며 '소리 앓이'를 겪었고, 결국 오른쪽 청력을 많이 잃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예술이 만들어져도 되는 거였을까.' 이러한 회의감으로 그녀는 돌연 무대를 떠났었다.

 

그리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후, 코로나19가 찾아왔다. 팬데믹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이 이대로 소멸된다고 생각하니 작품 이야기가 관객들과 나의 기억 속에만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블로그에 '이득봉'이라는 필명으로 써온 글이 모여 첫 책이 됐다.


그녀는 "책을 쓰며 과거를 돌아봤고 왜 그렇게 자신이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과거의 난 어려움을 푸는 방식이 서툴렀구나 깨달았어요. 이젠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공연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끝으로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온 것이 오늘의 일상을 잘 돌봄으로써 가능했다며 보이지 않는 축적에 대해 강조했고, 정말 괜찮은 예술인 판소리를 경험해보라고 전했다.

 

[나는 가능한 오래, 이 좋아하는 판소리를 관객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다. 장르 특성상 많은 횟수를 하지는 못할 나의 판소리 공연들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가능한 많은 관객을 만났으면 한다. 오만한 마음이지만 진심으로, 이 해내기 만만치 않은 공연들에 빈 좌석을 볼 때면 아까운 마음이 든다. 나 되게 잘하는데. 잘하는 기술로 최선을 다해 깨끗하게 이야기를 들고 올라서는데. 이런 공연이 그리 흔치는 않을 텐데. 좀오지. 와서 한번이라도 보지. - p.83]

 

 

[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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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  
  • 죠니
    • 빠르게 한권의 책을 다 읽은것 같아요! 이자람의 경험들에 관한 글들을 보니까 포기하지않아야겠구나 내 삶을 또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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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첼
    • 그렇게 나도 이제,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고 내가 만들 기회를 믿고,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정확히 걸어 나가야지. 남에게 착한 사람보다 먼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무엇보다 솔직해져야지. 그럼 자연스리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어야지. 

      이글을 읽고 늦었다고 샛각하지않고 내 삶을 열심히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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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세하
    • 이자람씨의 글을 읽으니 그녀의 글을통해 특별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예술가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있다는 사실을 통해 가지고있었던 편견 아닌 편견을 깨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이자람씨의 판소리를 통해 판소리 공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앞으로 판소리의 공연 또한 많이 관람하고싶다는 생각 또한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많은 판소리 공연을 볼 기회도 가질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디터님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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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플망고
    • 각자 다른 삶의 방식이 있기 마련인데
      이글을 읽고
      그녀가 여기까지 오는데
      머그리 특별한것도 아닌
      '오늘의 일상을 잘 돌봄으로써 가능','보이지 않는 축적을 강조'했다는 말이 확 와 닿았네요!!
      주어진 내 조건,환경에 투덜되기 보단
      내자신을 아끼고,내가 만든기회도
      잘 잡으며 살아야겠단 맘을 먹게 해준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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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승현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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