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감, 마감. 23시 59분의 미학 [문화 전반]

당신의 마감은 안녕하십니까?
글 입력 2022.05.1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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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마감이 언제까지죠?”

“나 오늘 자정까지 마감할 게 있어서…”

 

오늘 오피니언은 마감학개론,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늘 마감 속에 산다. 과제, 업무, 투고, 지원서. 끝도 없는 그 굴레 속에서 시간은 야속하게 째깍째깍 흘러간다. 왜 마감은 마지막까지 미루게 되는 걸까?

 

 


마감이 싫은 이유?


  

끝도 없이 미루다 결국 제출일이 다가와서야 한숨을 쉬며 노트북 앞에 앉는다.

 

마감이 싫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는데 그건 ‘타의’가 담겨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마감일은 늘 다른 이가 정해준다. 교수님, 상사, 회사, 기관 등. 나는 정해진 시간 내에 업무를 끝내야 하고 나의 의도가 아닌, 다른 이의 요청을 위해 시간을 쏟는다.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왠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의 요청일지라도 그 역시 내 삶의 일부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 내가 걸어갈 행보에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요소 때문에 자주 잊곤 하는 현실이다.

 

아, 그래도 역시 마감은 힘들다. 애초에 왜 마감이 있는 걸까? 자문자답하자면 우리는 모두 시간이 한정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일이 없다면 우리는 끝없는 자유를 누리며 원하는 때(그때가 올지 모르겠지만)에 마감을 하고, 그 탓에 무엇도 예측할 수 없어질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상과 나의 합의점을 찾은 게 바로 마감일이다.

 

 

 

업무가 된다는 부담감


 

나는 어릴 적 소설 작가를 꿈꿨다. 글쓰기를 누구보다 좋아했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글을 썼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때는 당연히 ‘마감’이 없었다. 그 탓에 텀이 길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많은 양의 글을 써냈다.

 

지금은 과제로 글을 쓴다. 소설과 대본을 쓰는 일도 과제 외에는 한 적이 없다. 그 현실이 조금 씁쓸하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던 글쓰기는 일이 된 순간 그 빛이 바랬다. 예전보다 능숙해졌을지 몰라도 그때의 반짝이던 마음을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취미는 취미로 남겨두어야 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사랑하던 것이 일이 된 순간 너무나도 많은 요소가 덧붙여진다. ‘마감’의 존재와 함께 성적, 보수 등이 따라붙는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기뻐하기에는 부담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는 일과 취미를 완전히 분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정말 좋아하는 취미로 푸는 식으로.

 

하지만 나는 되려 불안해진다. 일이 너무 바빠 취미를 할 시간이 없어진다면? 쉬지 않고,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소설 쓰기를 손에서 놓은 지 꽤 되었다. 여유로워질 때쯤 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언제 여유로워질까 생각해보면 또 막막해진다. 결국 의지박약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면서도 지금 쌓인 일에 고개를 젓는다.

 

언젠간 하겠지, 바쁜 일상 속 취미마저 일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적인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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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마감이 있기에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 주에도 무수히 많은 마감을 시간 내에 해냈다. 10장짜리 리포트부터, 12시간 수업 준비, 세계 지리에 대한 분석과 PPT 제작,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까지.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딱 맞다(누군가는 ‘애’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그것. 더 빨리, 더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채찍질이다. 그 채찍을 손에 든 사람을 생각하자면 그들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그저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질서를 세웠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원망하지 말기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감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제한된 시간을 가진 세계를 바꿔버리지 않는 이상 필연적인 일이다.

 

 


약간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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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불안한 이유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더 잘할 수 있다는,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발휘하지 못할까 초조함도 느끼는 것이다. 진정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포기했기 때문에 체념한다. 나는 아직도 삶이 불안하다. 세상을 살아보니 알겠더라. 

그것은 누구보다 내 가능성을 믿고, 기대하고 있기에 느낀 감정이었다고.

 

누군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러니 청춘이여, 불안해 말라. ‘불안함’이 아니라 ‘기대’이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준 감정. 그 감정을 믿고 오늘도 하나씩 마감해 나가자. 그것이 결국에는 곧 삶의 과정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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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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