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술, 그거 어떻게 끊는 건데?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5.1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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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한 번만 더 술 마시면 인간이 아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우린 매번 술에 배신당하면서도 얼마 안 가 다시 찾는다. 정말이지, 술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려, 뜻밖의 기쁨에,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이별의 아픔에, 실패의 슬픔에, 단순한 호기심에… 셀 수 없는 갖가지 상황들의 끝은 결국 술이었다. 우리의 방황엔 희로애락이 담겼고, 오직 술만이 그 방황을 멈출 수 있었다.

 

실제로 술이 가진 힘은 강력했다. 꾹 다물고 있던 입을 가볍게 열게 만들고, 꼭꼭 숨기고 있던 비밀은 순식간에 언어가 되어 공기로 흩뿌려진다. 정말 좋았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고, 일회성이라 생각한 만남은 지속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용기를 심어주어 원하는 연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예상치 못 한 사람과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원치 않은 연을 맺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모든 현상이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 내면에 깊이 내재 된 것에 술이 닿게 되면, 그때부터 경계의 벽은 너무도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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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술을 마셨던 20살, 그 당시엔 과일소주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덕분에 나름 맛을 즐기며(?)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최악인 맛이지만)

 

여타 스무 살과 다름없이 주량도 모르고 막 마시며 많은 흑역사를 생성했고, 술이 주는 몽롱함을 즐겼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이젠 주량도 주사도 완벽히 파악했기에 자리에 따라 철저히 절제하며 실수를 범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부단히 노력한다. 여전히 몽롱함은 즐기지만.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 모처럼 갖는 자리인 만큼 각자 짊어온 이야기보따리의 크기는 어마어마했고, 이야기를 풀기 위해선 술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그날 가져온 이야기의 크기와 마신 술의 양은 비례했고, 역시나 나는 취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서 술자리에서 자제하는 법은 터득했지만, 친한 친구 앞에선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술이 주는 몽롱함을 여과 없이 즐겼다.

 

몽롱한 기분은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친구가 주는 위로와 응원에 힘입어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던 비밀과 불만, 생각들은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표출됐다. 유일하게 서로의 가정사까지 아는 관계였지만, 그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웃기게도 지금은 너무 후회스러운데, 당시엔 정말 홀가분하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털어놔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서, 내 약점을 공개하는 것 같아서,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꿋꿋이 속내를 감추고 감췄던 내가 실은 누군가의 어깨가 고팠단 사실이,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실은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했단 사실이, 그게 너무도 웃겼다.

 

나에게 있어 술은 시험과도 같았다. 긴 시간 동안 혼자서 굳게 간직하던 비밀이 술만 마시면 말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한없이 약해지니 말이다. 그 끝이 후회인 걸 알면서도 순간의 망설임은 안 좋은 길을 걷게 했다.

   

이렇게 술은 늘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리고 어리석은 나는 앞으로도 그 시험에 스스로 뛰어 들어가 모른 척 당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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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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