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리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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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
작은 시골 마을의 낡은 가게의 벽면에 붓글씨 액자가 붙어있다. 가게 밖은 바람 소리와 가끔씩 서로를 찾는 오래된 귀신 부부의 외침만이 들릴 뿐, 고요하다. 이 가게의 주인은 오늘도 조용히 가게를 운영한다.
마을 사람 몇몇만이 이곳을 찾는다. 소새끼라며 욕을 퍼붓는 욕쟁이 할머니, 술에 취해 집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자,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교사, 새로 온 주지 스님... 그들은 한적한 이 가게에서 이런저런 속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겉으로 보기엔 소박하고 유쾌한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말 못할 마음이 닳을 대로 닳아있다. 슬픔, 망각, 분노 등 마음 속에 사무친 무언가를 표출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가게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고요하게 품는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만큼 그리 달갑지 않은 손님도 이곳을 찾는다. 땅을 매입하려는 부인, 아버지에게 가게를 매각하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며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주인의 아들…. 각자의 사정을 품은 인물들이 오래된 가게 ‘돌아온다’로 모이면서 이야기는 극으로 치닫는다.
연극 ‘돌아온다’는 소시민적인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그리움의 정서를 자연스레 녹여낸 작품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막걸리를 마신다 해서 그리운 사람이 돌아오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있다 해도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극히 적을 확률이 높다. 그래, 애초에 굳이 막걸리를 매개체로 두지 않아도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 내 품으로 돌아오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제대를 앞둔 아들의 부고 소식을 들은 교사는 울부짖으며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찢어버렸을 것이다. 거짓말로 자신을 기만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막걸리를 마신다고 해서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그리움에는 누구 하나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상황이 일어났기에 등장인물들은 슬픔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끝까지 불효자인 것처럼 보였던 아들도 속사정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버렸다는 원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계속 욕을 하며 가게를 맴돌던 욕쟁이 할머니도 잃어버린 아들을 평생토록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리움은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마음에 품고 있는 그리움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그것은 묵인의 방식이나 폭력의 방식처럼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본 극은 그리움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안타깝게 아들을 잃은 교사의 행동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가 된다. 그는 슬픔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일어서본다. 교사직을 내려놓고 가게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마음에 안고도 어쩔 수 없이 몰아치는 현실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아니라, 직접 그리움의 물살을 가로질러 이를 인정하고 현실로 나아가는 담담한 발걸음처럼 보였다.
사실 극의 마지막 즈음 근본적인 그리움이 해결된 인물은 잃어버린 아들과 만난 욕쟁이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찾은 스님밖에 없었다. 서로 껴안고 엉엉 우는 두 인물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그저 어떤 응어리를 가진 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중 유일하게 현실을 박차고 일어선 인물인 교사가 눈에 띈다.
그의 행동은 마치 우리에게 남은 것은 미래이니 과거를 받아들이고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 했다.
그리움은 모두 과거에 있다. 모두가 행복하게 가게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마지막 장면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모든 일이 완벽히 진행되었을 때나 일어날 법한 공상이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마신다고 보고싶은 이가 돌아오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결국 가게에 걸린 문구가 가리키는 ‘돌아오는 그리운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죽음의 방식이든 떠남의 방식이든, 누구에게나 이별은 찾아온다. 마음 속에 품고 충분히 애도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던 그들에게 이 작은 가게는 그들 마음속에 잠시 덮어둔 깊은 그리움을 불러일으켜 기억할 수 있게 도우려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오래된 스님은 문구를 써내려갔을 것이고, 교사는 자신이 찢은 간판을 새로 가져와 새로운 시작과 함께 가게에 걸었을 것이다.
남겨진 이들은, 우리는 그리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연극 '돌아온다'는 묻고 있다.
[이도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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