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과 지아, 너와 나 [영화]

글 입력 2022.05.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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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도,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도 나는 도대체 어떤 입장에서 이들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선’의 입장인가, ‘한지아’의 입장인가. 그래, 그 누구에게도 이입하지 않는 제삼자가 좋겠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잔인한 우리들의 세상 속에서 나의 객관성은 파도 앞 모래성처럼 흰 물거품과 함께 무너진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볼 때 연출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는 점에서 꽤 단순한 사람이다. 영화의 의도를 파악했든, 파악하지 못했든 웃으라면 웃고 울으라면 운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설정한 인물의 서사에 자연스럽게 이입한다. ‘우리들’의 주인공은 ‘이선’이기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선’이었다. 하지만 선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 감정은 옳지 못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붙잡았다.


언제나 멋진 어른이고 싶었다. 살아온 세월은 다르고 경험은 상대적이니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린아이일 테지만 적어도 이들에게는 상처를 보듬어주고 과거의 잘못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2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성숙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선과 지아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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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시간, 피구팀을 정하기 위해 주장을 맡은 두 친구가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기면 원하는 팀원을 먼저 고를 기회를 얻는 아주 간단하고 익숙한 방식이다. 선이는 한둘씩 이름이 불리는 동안 초조하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한다. 흔들리는 눈빛과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에서 불안함과 공포가 여실히 느껴진다. 팀을 정하는 단 한 장면만으로도 선이가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반 친구들과 함께하려 아등바등 애쓰는 선의 모습에 그 누가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답 없는 초인종 소리에, 전해지지 못한 실 팔찌에 마음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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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1학기가 끝나고 무더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방학식 날, 선은 전학생 지아를 만난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서로에 대한 아무런 편견 없이 둘은 친구가 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흐르고,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름이 선과 지아 앞에서는 초록색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된다. 선의 집에서 함께 지낸 7일 동안, 그들은 김치볶음밥을 먹고, 고민을 나누며 봉숭아 물을 들이며 일상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2학기 개학식에서 지아는 선을 모른 척하고 선을 따돌리는 친구들과 함께한다. 다시 혼자가 된 선은 지아에게 다시 다가가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지아의 집에 생일선물을 들고 찾아간 선은 차갑기만 한 지아에게 물어본다.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말 하지 않았으면 했던 말이다.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는다. 차라리 나의 잘못이라면 친구가 돌아선 이유를 알 수 있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어서일까. 사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눈치를 보고 소심해져 가는 선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선을 따돌리는 지아와 다른 친구들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앞서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비판이 아닌 비난을, 이해가 아닌 원망을 하는 나는 영락없는 초등학생의 모습이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둘을 바라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마치 싸움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선생님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11살 난 아이에게 갖는 이 부정적인 감정이, 그 감정의 주인인 내가 못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선과 지아가 그 행복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깊어진 감정의 골을 선뜻 좁힐 수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도 함께 있으면 선명해지는 각자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지아는 항상 엄마를 그리워하고 선은 비싼 색연필과 친구들과 연락할 핸드폰, 색색깔의 매니큐어를 원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은 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지아는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장난치는 선을, 선은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지아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이 부러움의 감정이 질투가 되고 열등감이 되지 않았을까. 결국 자존심만 세우고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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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실적인 초등학교 4학년들의 이야기는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아마 평생을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다닐 때도, 직장인이 되어 회사에 다닐 때도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고픈 소망이 언제나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꼬여버린 매듭을 천천히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선과 지아가 결국엔 눈을 마주쳤던 것처럼 너와 나도 성숙한 모습으로 갈등 속의 우리들을 마주할 수 있다. 위로를 담은 서툰 마음으로 물들인 봉숭아가 아직 손톱에 남아있으니, 그때의 우리들로 돌아갈 기회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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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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