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변함없이 따뜻한,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展

글 입력 2022.05.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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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_공식 포스터.jpg



4월 말부터 시작되어 더운 한여름인 8월 말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이어지는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전을 다녀왔다.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는 국내 무대에서 꾸준히 이어져 온 바 있어 여타 전시회에 비해 관람객들에게 많이 친숙한 편일 것이다. 당장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들을 읽고 자란 사람들이 있어서 앤서니 브라운을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들을 전시회로 만나본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전은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 전시회일 것이라는 마음을 안고 예술의전당을 향했다.


역시나, 한가람미술관에 도착하니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아기들을 업고, 안고, 손을 꼭 쥐며 관람하기 위해 표를 끊는 부모님들을 보니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세계를 어린 아이가 만끽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5월 초인 만큼 어린이날 연휴와 맞닿아 있어 더욱 가족 관람객들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자리였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가족들의 틈을 파고 들어, 관람을 시작했다. 여느 전시와 다르게 시끌벅적한 전시회였지만, 그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 전시 소개 >


“어릴 때부터 시각 교육은 문자 교육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 앤서니 브라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상상력 가득한 <원더랜드 뮤지엄展>이 2022년 4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집니다. 이번 전시는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상상의 공간 ‘원더랜드 뮤지엄’에서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신작 <넌 나의 우주야 Our Girl(2020)>,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Ernest the Elephant(2021)>와 60점 이상의 원화는 국내 초연되어 앤서니 브라운의 소식을 기다려온 국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리가 될 것이며, 영상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미디어아트와 유명 셀럽들과 콜라보레이션한 NFT 아트 작품들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더욱더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외 전시 기간 동안 창의적인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코로나 19로 집안에만 갇혀 사회 경험이 부족해진 우리 아이들이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세계에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마음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4인 가족의 막내로 태어나 자랐다. 그에게는 그림을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있었고,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키와 덩치가 크고 멋진 형이 있어 단란한 가족 속에서 화목하게 자랐다. 형과 함께 셰이프 게임을 하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그리는 법을 익힌 것은 앤서니 브라운에게 큰 자산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큰 버팀목 같았던 아버지를 열 일곱의 나이에 떠나보내게 되어, 그는 가슴 속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짙게 가지게 되었다.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을 잘 그렸고 지금은 이미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이기 때문에 그가 처음부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첫 직장은 병원이었다. 다만 병원에서 의료직으로 일했던 것은 아니고, 수술과정 등에 참관하면서 인체의 장기 등을 그려 의학교재의 삽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맡았다. 이를 통해 앤서니 브라운은 자연스럽게 세밀하게 그리는 방법을 훈련한 셈이다. 이렇게 정밀하게 그리는 경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운 경험, 그리고 형과 함께 셰이프 게임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앤서니 브라운은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여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앤서니 브라운이 가족을 그린 모습을 보면 그 가족에게 투영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감정들이 모두 선연히 비친다. 앤서니 브라운이 자신의 아빠(Dad이므로 아버지보다 아빠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를 그린 모습을 보면, 아빠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모습이다. 늑대같이 무서운 존재는 집밖으로 쫓아낼 수도 있고, 달리기를 하면 1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고 멋지고 큰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앤서니 브라운의 엄마(그의 표현에 따르면, Mum)는 따뜻한 색채와 부드러운 터치로 가득한 모습이다. 엄마의 사랑이 자신을 얼마나 감쌌는지, 그 순간들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형을 그린 작품들은 일관되게 형을 쿨하고 멋지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딸에게는 애정을 담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껏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Section 2에서 가족에 대한 작품들을 다루는데, Section 1에서 이를 다뤘어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여라도 앤서니 브라운 전시를 처음 오는 관객들이 있다면 아무래도 작가의 배경을 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작품 속에 묻어나 있고, 또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자신의 가족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전시 초입에 배치된 것은 그래도 다행이었다.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가족 작품들을 보면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하는 나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가정의 달을 맞이한 이 시기에 더욱 적합한 테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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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ad 2000 @ Anthony Browne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이 가족 이야기만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들도 물론 그리긴 했지만 주로 동물들을 활용하여 어린이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그림을 그렸다. 이번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 전의 첫 번째 섹션은 바로 작년에 출판된 신작 <어니스트의 멋진 하루 Ernest the Elephant(2021)>를 아시아 최초로 공개하고 있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아기 코끼리 어니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어니스트가 만나는 수많은 동물들의 원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작년에 출간된 신작이지만, 사실은 앤서니 브라운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1974년에 처음 구상하고 그림들까지도 그렸지만 당시에 출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앤서니 브라운이 새롭게 그려서 작년에 출판한 그 원화 작품과 더불어 1974년 당시 그렸던 원화 작품들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는 셈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처음부터 완성형이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의 초기 작화와 현재 작화를 비교하니 놀랍게도 그가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은 작가로 데뷔한 이래로 거의 매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래서인지 똑같은 컷을 그렸는데도 1974년 작과 2021년 작에서 그림체, 디테일, 색의 활용 그 무엇 하나 발전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완성형'이라는 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줄 알았는데도 이렇게 꾸준히 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또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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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the Elephant 2022 @Anthony Browne



어니스트라는 코끼리로 신작을 발표하긴 했지만, 사실 앤서니 브라운하면 떠올릴 수 있는 동물은 코끼리가 아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앤서니 브라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동물은 바로 침팬지다. 그가 만들었던 수많은 캐릭터들 중에서 침팬지 윌리는 작가 스스로를 투사한 존재다.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던 유년기의 자신을 반영한 윌리는 고민이 많아 마치 구름이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를 이겨내고자 스스로 문제를 직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윌리뿐만 아니라 아기 침팬지 아치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도, 앤서니 브라운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어린이들이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어린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화가 나는 기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 만족스러운 기분까지 모두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치를 통해 표현한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은 아주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앤서니 브라운은 비단 동물 캐릭터를 활용해서만 그리지 않았다. 예컨대 Zoo(1992)에서는 자신의 유년기 때에 가족들과 동물원을 갔던 경험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선에서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바라보지만 반대로 동물들의 시선에서는 사람들이 철창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차가운 역설을, 앤서니 브라운은 어린이의 눈으로 담아냈다. 놀랍도록 유연하고 열려있는 어린이들에게 앤서니 브라운의 메시지가 얼마나 뜨겁게 전해질지. 상상만 해도 놀라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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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o You Feel 2011 @ Anthony Browne



이렇게 앤서니 브라운이 따뜻한 감성으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작품들을 풀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우선은 유년기에 아버지와 형과 함께 했던 셰이프 게임의 영향력이 막중할 것이다. 주어진 도형이나 어떤 형태에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으로 발전시켜내는 것은 분명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앤서니 브라운에게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자산이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은 이 셰이프 게임에만 영향을 받았던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영감을 준 또 다른 예술가가 있었다. 바로 르네 마그리트다.


르네 마그리트하면 수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대중적으로 친숙한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피레네의 성, 골콩드, 이미지의 반역 그리고 금지된 재현을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앤서니 브라운은 마그리트를 오마주한 작품들을 그렸다. 이번 전시의 Section 5에서 앤서니 브라운이 오마주한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앤서니 브라운이 르네 마그리트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조금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초현실주의'가 앤서니 브라운에게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꿈꾸는 윌리를 통해 그가 그린 작품들을 보면 마그리트 뿐만 아니라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오마주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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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y the Dreamer 1997 @ Anthony Browne



이렇듯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보다가, 특히 어른들의 눈에서 놓치기 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앤서니 브라운이 디테일의 대가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그림들이다보니,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이나 동물들은 모두 크고 둥글둥글한 느낌들이 강하고 사실적이기보다는 작화적인 특징들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쉽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울 법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를 보는 관람객들은 반드시 작품 속의 인물 또는 동물에만 포커스를 맞출 것이 아니라 배경 하나하나까지도 세세하게 놓치지 말고 관람해야 할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디테일은 모두 배경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의학교재 삽화를 위해 인체 장기를 세부적으로 그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그는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것에 매우 능하다. 그래서 동물 인물들 뒤에 숨겨진 배경을 보면 사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가닥, 꽃 한 송이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강점은 이러한 회화적인 디테일뿐만 아니라 컨텐츠적인 디테일까지도 강하다는 점이다. 그가 작품 속에 그려낸 배경은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렸다는 점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의 내용전개와 더불어 필요한 장치들을 담고 있기도 하기에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 수록 곱씹을 부분이 많다. 물론 그 모든 디테일을 알아야만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은 배경에도 수많은 디테일을 담은 이스터 에그들을 숨겨놓기 때문에, 그의 디테일함과 위트를 이해하고 싶은 관람객들이라면 Section 6에서 앤서니 브라운이 얼마나 배경에 공을 들였는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즐거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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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는 변함없이 따뜻했다. 이미 호호할아버지가 된 앤서니 브라운이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그 원동력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그런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놀라운지를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는 자리였다.


놀랍게도 곧, 한국에 앤서니 브라운 미술관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의 부제가 원더랜드 뮤지엄이었던 이유는, 한국에 앤서니 브라운 미술관을 설립하기에 앞서 일종의 체험판처럼 한국 관람객들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서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국내 작가들의 조형 작품들도 함께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린이들이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과 관련하여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어 추후에 세워질 앤서니 브라운 미술관이 어떤 느낌일지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앤서니 브라운. 그의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뭉클한 작품 세계관을 만나고 싶다면 2022년 8월 31일 전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길 바란다. 데뷔 이래로 꾸준히 다작하면서 점점 발전해가는 앤서니 브라운의 몽글몽글하고 사랑스러운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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