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고우에게

초등학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글 입력 2022.05.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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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들이 애정을 담는 글이란 뭘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은 확실해. 내 글이었으면 좋겠는 글과 내가 쓴 것 같은 글. 후자에 해당하는 글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 나는 시인이 아니지만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시였지. 안현미 시인의 「불멸의 뒤란」이라는 시야. 좋아하는 첫 번째 시구를 읽어줄게.

 

"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이 도착한다"

 

그날따라 시인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렸을까?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쓰는 온갖 글들은 모두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한 비망록이자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흔적을 남겨두기 위한 유서일 것이라고, 언젠가 일기장에 적어둔 적이 있었어. 그런데 연서라는 말이 그렇게 크게 들릴 줄이야.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아 버린 새벽이었어. 연서에는 어떤 말이 쓰이는 줄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랑한다는 고백과 사랑받고 싶다는 고백이 대개 함께 진행되는 것이 연서라는 글의 특징이더라고. 그러니까 어느 날 불현듯 깨달은 거야. 어쩌면 글을 쓰는 일이란 한 톨의 사랑이나 관심을 얻으려는 발버둥이지 않을까. 혹은 자신의 사랑을 광막한 세상에 표현하려는 포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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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편지는 소통의 최전선에 있는 글인 것 같아. 언어라는 것은 상대를 전제한 행위인데, 그 중에서도 언어를 활자의 형태로 새겨 먼저 마음을 건네는 것이 편지니까. 바닥 없는 늪에서 나를 끌어올려준 것들도 다름 아닌 어린 시절부터 모아둔 수많은 편지들이었지.

 

그럴 때가 있잖아. 내가 나라는 존재를 한없이 의심하게 될 때.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믿지 못할 것 같을 때. 물 먹은 솜처럼 축늘어져 있는 옷가지들이 죄 방치된 방안을 치우다가 우연히 편지함을 열었어. 껌 종이 뒤에 적힌 쪽지 한 장도 버리지 못하는 습관 덕인지 그곳은 몇 년치 보물들로 가득하더라.

 

물론 그 중에는 너의 편지도 있었지. 너가 써준 편지를 비롯한 몇 십장의 편지를 읽는데 그만 눈물이 났어. 그 속의 내가 너무도 괜찮은 사람이라서.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편지를 써준 친구들과 그 안의 나를 믿으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괜찮은 과거의 나한테 빚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나게 됐어.

 

그날 이후로 편지는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소통 수단이야. 내가 아는 애중에 짐짓 악한 체하는 모습이 미치게 사랑스럽고 한심한 H는 예쁜 것이 아니면 글을 쓰기 싫다고 툴툴거리면서 매일같이 문방구를 들려 편지지를 사는 모습을 보여줬고, 한때 무척 좋아했던 친구 J는 시집의 맨 앞장에 편지를 써서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선물하는 방법을 알려줬지.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생일이 아니어도 편지를 쓰곤 한다는 걸 그 애들을 보면서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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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구장창 손편지만 쓰던 내가 최근에 이메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지 뭐야. 너 덕분이야. 그땐 몰랐지. 한번도 정리하지 않은 메일함을 정리하면서 10년도 더 된 너의 메일에 내가 답장을 하게 될 줄은. 그리고 너가 하루 만에 답장이 올 줄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멀어져 버린 인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것도 “너는 내 최초의 단짝 친구였어!”라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할 법한 뜬금없는 대사에도 아주 정성 들여 답장을 해주더라 너는.

 

단짝 친구… 으… 단짝 친구라니. 친구는 그냥 친구일 뿐이지. 단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꼭 그 친구랑만 놀아야 할 것 같다며, 친구라는 단어 앞에 붙는 모든 수식어를 싫어하는 나인데, 이 말이 아니면 너를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았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집단 속에 속하는 소속감을 욕망하고, 어린 우리 역시 그러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 새 학기 새 반에 배정되면, 혹시 무리에서 낙오된 뒤쳐진 새가 내가 되지는 않을까. 두툼한 패딩을 입은 와글와글한 무리들을 걱정스레 곁눈질 하곤 했어. 마침 한때 같은 반이었던 너와 눈이 마주치고는 약간은 안심하며 활짝 웃으며 눈인사를 했던 것 같아.

 

그리고 정신차리고 보니 우린 처음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으로, 왁자지껄하고 막역한 사이가 되어 있었어. 한창 영화 「아바타」가 유행할 때였지.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교감을 하겠답시고 서로의 머리 가닥을 붙잡고 곱게 따서 끄트머리를 맞대곤 했던 기억이 나. 영화 내용처럼 우리도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비슷한 상황에서 똑 닮은 말을 내뱉는 순간들이 잦아졌지. 나는 난생 처음 생긴 단짝 친구가 너무너무 좋았나 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좋아해 달라는 너의 부탁에 생전 처음으로 덕질도 시도해봤으니까. 개중에 몇몇은 이제 TV에서 더는 보지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열렬히 무언가를 좋아하는 경험을 만들어준 너에게 감사해. 그런 힘이 나의 추동력이라는 것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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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이 친밀한 관계가 좋았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 봐. 너는 틈만 나면 나를 잊지 말라거나 앞으로도 연락하라는 말을 당부 하듯 건네곤 했으니까. 애석하게도 뺑뺑이로 배정받은 학교는 서로 달랐어. 그러나 나는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지. 우린 같은 동네였고, 핸드폰이 있으니까.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었어.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 있던 너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는 눈치였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잖아. “영원한 우정 같은 건 없어. 어차피 다른 학교에 가게 되면 우린 금세 멀어져 버리고 말 걸”

 

머지않아 그 말은 현실이 되었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너와 같은 반이던 친구들을 만난 날, 배스킨라빈스를 가득 채운 어색함과 얼어붙은 정적의 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나. 힐끗힐끗 살피던 눈치와 사이사이에 스민 억지 웃음들. 말그대로 낙엽만 굴러가도 깔깔대던 우리였는데, 종일 떠든 다음 날에도 또 할말이 넘치던 우리였는데. 그때 처음 알았어. 노력해야 이어지는 말들이 있다는 거. 오래된 친구 사이에도 그 말이 성립한다는 사실을.

 

흔히들 그런 말들을 하잖아. 살다 보니 각자 사느라 바빠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고. 우리도 그렇게 멀어졌던 것 같아. 그런데 모르지. 그 피상적인 말의 기저에는 어색함의 기에 눌려 내민 손을 다시 거둬들인 누군가가 있었고, 눈앞의 새로운 인연들과 펼칠 미래에 대한 기대로 흠뻑 취해 과거를 돌아볼 여력이 없던 또다른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두 추측일 뿐이니 그때의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다만 하나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거야.

 

인간관계라는 것이 하나가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날의 일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더라. 어쩌면 최근에 이메일을 보낸 이유도 그날의 다짐들이 미처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나 봐. 자신만만하게 외치던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거라는 무책임한 다짐에 대해 그나마 성의 있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나 봐.

 

나는 이제 비장한 태도로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먼저 남발하지 않아. 숱한 상실을 경험했고 영원한 것이 결코 없다는 것도 알지. 인간조차 한시적인 존재일 뿐인 걸. 그러나 영원이라는 단어가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알아. 영원이란 말에 스민 낭만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란 것도. 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바로 그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덧붙이고 싶어. 영원이란 것이 없다고 해도, 영원을 믿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 아는 마음으로 천진하게 또다시 영원을 맹세해. 어색함에 굴복하기보단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눈을 꼭 감고 스스럼없는 척 잘 지내냐는 인사를 건네고, 거절의 두려움에 주춤 하다 가도 마지막까지 손 내미는 것을 잊지 않아. 그렇게 누군가는 무용하다고 말하는 관계들을 이어가지.

 

한낮의 짧은 인연으로는 알 수 없던 친구들의 고유함과 잘남을 깊은 우정을 이어가며 배워. 이것저것 뚝딱뚝딱 만들기를 잘하고 좋아했던 친구 S가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도, 그 애한테 우아함이란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라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말이 잘 어울린다는 것도, 차분하고 다정한 다갈색 눈동자를 지닌 K가 사실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좋아하고, 자기를 닮은 새벽 이슬 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모두 그때 그렇게 멀어졌었더라면 알 수 없었던 귀한 이야기들이야.

 

사랑하는 친구들은 나의 자부심이자 자랑이 되었어. 언제부터인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반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곤 해.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굳세었더라. 언제부터 내가 흔들 다리 위를 걷듯 위태롭지 않은 사람이 되었지. 이젠 그것이 그 애들이 내게 보여준 확신과 크고 단단한 경애의 마음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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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 우리가 지켜낸 관계 이전에는 너의 투정 섞인 염려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 어쩌면 나는 너가 내준 숙제를 평생 풀 수 없을지도 몰라.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잖아. 만남과 헤어짐을 필연적으로 반복하는 우리에게는 평생의 숙제라는 것.

 

그렇지만 고맙다는 말은 꼭 전하고 싶었어. 맑고 현명한 너가 너무나도 좋아서, 영원한 우정 따윈 없다는 너의 못된 믿음을 깨뜨리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10년만에 보낸 메일은 하루 만에 회신이 오더라. 불시에 보던 쪽지시험마저 늘 백 점을 받아오던 너는 역시나 여전히 공부를 잘했고, 내로라하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어려운 시험을 준비중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끝나면 만나기로 했지.

 

너와의 만남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어. 옛 추억을 되짚어보면서 하루 종일 수다를 이어갈 수도, 그때와 같은 어색함에 연신 찬물만 들이킬 수도, 예상과 다른 모습에 서로 실망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이 편이 최선을 다한다는 말에 더욱 부합한다는 것을 지금의 우린 깨닫게 된 것일 거야.

 

“우리는 키즈모델 빼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인 거 알지?”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글을, 네게 보내는 메일에도 썼어. 사실 네가 이 메일 주소를 아직도 쓰고 있는 줄, 읽을 줄도 모르고 보낸 글이었지. 그러니까 수취인 불명의 편지일지라도 어딘가에서 떠돌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거야. 어쩌면 그건 내가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어. 우린 잘하고 있다고. 뭐든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쫄지 말라고. 세상 하나도 안 무섭다고. 그런 말들을 하고 싶었나 봐.

 

다시 만나는 날에 우리의 대화가 마르지 않기를 바라며, 믿음과 용기를 네게 보내. 존 버거의 『A가 X에게』라는 편지로 쓰인 소설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만 말을 줄일게.

 

“침묵은 언제나처럼 압도적이죠, 내가 받은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응답을 바라지 않는 넉넉한 마음으로 나는 채워진다고 말하고 싶어. 그것이 아마 편지의 순기능일 거야. 나의 말뿐이 가득한 이 지면에, 여전히 응답을 바라지 않고 바라. 너의 밝은 미래와 깊고 충만한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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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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