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세모의 흔적] 1편 – 아무튼, 메모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5.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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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서 귀퉁이 한 구석씩 접혀있는 책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작은 세모의 흔적들은 과거의 내가 지금에게 보내는 작은 편지 같다. 책을 깨끗하게 읽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지저분한 표시가 남아있는 책들이 있다. 나는 이런 책을 두고 ‘마음먹은 책’이라고 부른다. 문제집이나 참고서처럼 하나하나 공부하고 문장을 뜯어 삼키고 싶었던 책, 소화하기로 마음먹은 책들 말이다.


책 한 구석을 접어놓은 책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긴 작품은 많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천천히 더 해나가도록 하자. 앞으로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장르별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씩 읽어가는 시리즈가 있으면 좋겠다. 시를 함께 나누던 [함께 읽으‘시’죠] 시리즈도 함께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다. [작은 세모의 흔적]은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산문을 소개하는 글의 묶음이다.




아무튼,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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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 p.67

 

 

오늘의 책은 정혜윤 작가의 < 아무튼, 메모 > 이다. ‘마술적 저널리즘’의 세계를 개척하고 싶은 CBS라디오 피디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정혜윤 피디님이 아무튼 시리즈의 일환으로 ‘메모’를 주제로 펴낸 책이다.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냅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른 누군가의 언어로 읽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을 들킨듯한, 혹은 읽어주는 기분을 느꼈고 지금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있다. 작가님이 진행하는 북콘서트에도 참여하고, 개인적으로 인터뷰도 해보고 싶었으나 코로나와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하지 못했다. 작가님의 다른 책이 또 나오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작가는 취업 준비를 앞두고 ‘나의 비애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나를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남들이 알아봐주길 원했다는 것’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메모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냄으로.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p.35

 


고작 메모를 적는 일이 그렇게 가치있을까? 기업에서 인정해주는 어학성적이나 자격증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차와 주식 성공이 아니라, 글을 조금 적어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까? 시간낭비인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그냥은 살지 않는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산다. 마치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가듯이.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자기 창조도 변화도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지금과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은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얼굴와 몸짓, 표정, 눈빛마저 바꾼다. 나는 나의 가치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살리는 이야기의 질에 달려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p.48

 

 

작가님과 친해져서 오래도록 차를 마시면서 그 분의 지난 노트를 읽어보는 상상도 해본 적이 있다. 시험기간에 공부 잘하는 친구의 비밀 노트집을 빌려보듯이, 왠지 그 노트를 가지면 나도 인생을 지금보다 더 잘 살아낼 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 나만의 기록장을 채워나가는게 더 중요하겠지만 참고서처럼 읽어보고만 싶다.


여기 내가 이 책에서 정말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이 내용이 생각나 다시 한 번 읽고싶어 책을 핀 적도 있다. 자꾸자꾸 곱씹으며 내 삶으로 만들고 싶다.

 


한번 읽은 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말이 있다. 보르헤스의 말이다.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일은...” 여기서 잠깐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대체 나쁜 일은 어떻게 해야할까?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이 말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평생 하는 일일 것이다. p.67

 


누군가의 꿈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좋은 현실이 태어났는지 모른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거다. 끝까지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이 바로 꿈꾸는 자의 자유다. p.87

 


메모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 메모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하며 우리가 원하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글은 하나의 가공품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정제하고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쁜 것은 좋은 것으로 승화시키고 이미 좋은 것은 세공해서 보관할 수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싶어 노력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메모는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한 사람의 어떤 노력도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그 사람은 속으로 얼마나 슬프겠어요”(p.103) 이 한 마디를 밖으로 뱉고 싶어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 정혜윤 작가님의 < 아무튼, 메모 >를 읽다보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아지고 싶어 작품을 읽고, 기록하려 애썼던 나의 삶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분이 있어 다행이다.

 

작가님만의 에피소드와 유머가 담긴 페이지도 있고, 다양한 메모의 기록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펼쳐도 좋은 책이다.


 

[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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