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호기심 가득한 농담의 세계 -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도서]

글 입력 2022.05.0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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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사람, 곽재식



자꾸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그만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사람. 똑같이 흘러가는 피곤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섬세한 눈으로 작지만 흥미로운 포인트를 잘 찾아내는 사람. 예상치 못한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드는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의 저자 곽재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빵좋아하는행성_표1.jpg


 

공학 박사이면서 SF 소설가라는 저자 소개를 읽으면 오래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땀 흘리던 시간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직접 겪어본 게 분명한 직업인으로서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직업인으로 그는 놓치기 쉬운 일의 일면과 일상 속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페이지 안에 녹아들게 만든다. 그만의 유머를 놓치지 않아 읽는 중간중간 뜬금없이 픽하고 웃게 되고 말이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은 그에게 가장 친숙할 과학과 맞닿은 책이다. SF 장르 아래, 상상에 상상을 더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공학 박사답게 미래의 기술에는 적당한 논리가 뒤따라서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느낌도 없이 편안하게 글을 감상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그 악당들이 누군지 만나보자.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에 담긴 10가지 이야기는 말 그대로 빨려 들어갈 듯이 숨까지 참으며 읽게 되는 게 많았다. 각 단편의 기본 설정과 이야기 주제가 흥미진진했고, 기술과 인간의 삶을 넘나드는 진지한 고민과 곽재식만의 농담이 한데 섞인 문장들에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표제작인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은 외계인이 사람을 관찰하며 쓴 보고서이다. 사람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지구 밖 생명체들의 사람 분석일지는 가혹하다. 그들의 시선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산소를 빨아들이며 식물과 세균에 기생해 살아가는 미생물이다. 온도가 조금만 높아지거나 낮아져도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같은 종인 서로서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자주 보인다.


이처럼 어쩐지 하찮고 부실한 미생물임에도, 사람은 특이한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헌혈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통해 생존에 꼭 필요한 혈액을 빼내는데, 그토록 미워하고 싸우던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그보다 더 큰 보답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나누는 사람.


이 부분을 보면서 전혀 다른 이가 새로운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본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평소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던 면과 닮아 있음을 느꼈다. 뉴스를 통해 만나는 폭력과 무자비함에 몸서리 쳐지다가도 따뜻한 누군가의 선행에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 호기심과 관찰력이 더해질 때



곽재식은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를 책에 가득 심어 놓았는데, 그 배경에는 그의 호기심과 관찰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다급한 마음으로 읽었던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이 특히 그렇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은 한 박사가 마감 시간 2시간 안에 정부 사이트에서 세금 정산 보고서를 다운로드해 제출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다. 120분 안에는 서류 하나를 뽑기 위해 온갖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또 팝업 차단을 해제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절차에 대한 유머러스한 분노가 담겨있다.


‘그 심정,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안타깝게도 다들 겪어보았겠지만.’ -p.123

 

하지만 마냥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던 일이기에, 울며 웃으며 주인공 박사의 성공을 간절히 바랄 수밖에. 이처럼 한국인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SF라는 생각지도 못한 장르와 엮어낸 모습에 놀라웠다. 정부 사이트에서 서류를 뽑아야 할 때면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일상 속 가장 작고 작은 장면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그의 관찰력 놀라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순간을 건져올린 후에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더했다. 이렇게나 피곤한 절차를 아주 짧은 기한 내에 압박감을 느끼면서, 극악의 상황에서 해결해야 한다면? 그런데 계속 모든 게 꼬이기 시작한다면? 이라는 호기심이 더해져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이 완성되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두 편을 소개하면서 ‘빵 좋아하는 행성’이 지닌 매력, 저자 곽재식이 지닌 호기심과 관찰력, 상상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적정한 온도가 이어져서 마음 편히,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SF라는 점이다. 적당히 희망적이고, 적당히 절망적인 인물들의 감정 선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심심할 때 한 편씩 꺼내보며 일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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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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