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는 것 [영화]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이 포착하는 우리 곁의 상실과 고독
글 입력 2022.04.2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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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접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 다양한 방법으로 꺼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개개인들은 오히려 희미해지기도 한다.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가 건네는 모호한 자극만 남은 채, 이야기 뒤에 있는 개인의 존재는 잊혀진다. 진실과 거짓이 뒤얽힌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확실치 않은 누군가의 존재는 쉽게 상상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도, 정작 정말 가까이 있는 존재들은 쉽게 외면하며 지워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저 우리 곁을 부유하고 흘러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을 깊숙이 들여다 보고, 어떤 것에 귀 기울이게 되는 걸까? 그 이야기들이 포착하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느끼고 발견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종관 감독의 영화 <아무도 없는 곳(2021)>은 이렇게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꾸미기]포스터.jpg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힘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창석’이 만나는 4명의 인물과 창석 자신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창석에게 털어놓고, 창석은 주로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은 자신이 지어내거나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창석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미영’이었다. 미영은 소설을 읽고 있는 창석을 향해 어차피 지어낸 이야긴데 왜 읽고, 왜 믿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다.

 

 

"나는 소설책 읽는 사람들이 제일 이해가 안 가더라.

어차피 만들어 낸 이야긴데 왜 믿어?"

 

 "그래요? 그래도 잘 만든 이야기는 사람이 믿게 되어 있어요."

 

 

이 장면을 보며, 정말 잘 만든 이야기란 ‘있을 법한’ 혹은 ‘믿을 법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내용이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그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관점으로 삶을 경험해보며 삶의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한 이야기와 풍경들을 적절하게 섞어 놓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그려낸다. 7년 만에 돌아온 창석이 마주하는 익숙하지만 낯선 서울 곳곳의 풍경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차근차근 앵글에 담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한 영화 속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곁의 풍경들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이야기가 가지는 힘은 어쩌면 낯선 이야기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곁을 부유하며 흐르는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포착하며, 이를 통해 일상적인 풍경을 새롭게 보고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도 다시 깊숙이 들여다 보게 된다.

 

우리의 모습과 우리 곁의 풍경을 짚어내는 이야기는, 일상 속 순간을 삶에 영감을 주는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이러한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이야기 속에서 사실과 거짓을 명확하게 구분해내는 것은, 이미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심지어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꾸미기]스틸컷_창석_유진.jpg

 

 

"어떻게 보면 지어내는 이야기는 없어요. 제가 겪은 얘기 그대론데,

그냥... 관점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소설이 되는 거죠.

관점이라는 게 결국 지어낸 이야기와 다를 게 없어서요."

 

 

창석의 글을 맡은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후배인 ‘유진’은 창석의 글이 창석 본인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유진의 말을 들은 창석은 이렇게 대답한다.

 

창석의 말처럼 어쩌면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과 허구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점의 차이로 나누어 지는 것일지 모른다. 이는 특히 앞서 언급했던 ‘잘 만든’ 이야기에 더욱 해당될 것이다. ‘잘 만들어 믿게 되는’ 이야기란 ‘거짓’을 품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다른 사실’ 중에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도 다섯 명의 관점으로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역시 관점을 바꾸어 다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 ‘나’와 ‘너’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누군가가 지어낸 거짓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세계를 넓혀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잃어버린 기억을 모으듯, 마음에 담긴 무언가를 풀어내듯, 수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믿으며, 심지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곁을 흐르는 상실과 고독 속에서 포착해낸 이야기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석 뿐만 아니라 창석이 만나는 네 명의 인물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영화는 그들의 상실과 슬픔, 외로움을 그저 우리 곁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로 놓아 둔다.

 

인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절절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곁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창석은 놀라거나 화를 내는 등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도 그런 창석 앞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툭툭 털어놓는다.

 

창석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해서 인물들의 슬픔이나 외로움은 해소 되지 않는다. 영화도 인물들이 간직한 지난한 기승전결을 담아내기 보다는, 상실을 마주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의 어느 한 시점을 포착할 뿐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창석이 인물들과 가지는, 영화가 이야기와 가지는 적당한 거리감은 무심하지만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꾸미기]스틸컷_창석_성하.jpg

 

 

"나는 우리가 섬이라고 생각했어요, 섬"

 

 

예전에 창석과 인연이 있었던 사진작가 ‘성하’는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창석을 만난다. 성하는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아내와 자신을 ‘섬’에 비유한다. 성하는 자신의 세계 안에 자신과 아내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아내가 죽으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말을 담담하게 한다.

 

성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우리도 자신만의 경계를 만들어 구축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각각의 ‘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섬들은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비슷하기도 하다.

 

섬이 된 우리들은 우리 주변을 부유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저 흘러가게 둔 채, 상실을 마주하며 슬픔과 외로움에 잠겨 가기도, 종종 마주하는 일상의 기쁨과 행복에 떠오르기도 한다.

 

 

[꾸미기]스틸컷_창석_주은.jpg


 

"그는 기다린다. 느리게 술잔을 비우고, 침묵과 대화 속에서.

사소한 거짓말들로 그는 기다린다.

그는 사실 기다린다는 말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오는 사람 없지만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바텐더인 ‘주은’은 자신의 마지막 손님이 된 ‘창석’에 관해 이렇게 적는다. 주은은 교통사고로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후 손님들의 기억과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데, 그는 마지막 손님이었던 창석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창석은 주은에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누굴 기다리는 지, 기다리는 사람은 언제 오는지, 주은도 영화를 보는 우리도 끝내 알 수 없었다.

 

마지막에서야 밝혀진 창석의 이야기를 통해, 손 쓸 틈 없이 밀려온 상실 앞에 창석이 어쩌면 그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화 속에서 창석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 놓지는 않는다. 그런 창석 역시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실을 겪고 슬픔과 외로움에 잠겨 가는 또 하나의 ‘섬’ 이었다는 사실에, 마지막 남은 창석의 모습이 더욱 씁쓸하고 외롭게 다가온다.

 

 

[꾸미기]스틸컷_마지막_창석.jpg

 

 

이렇게 영화는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제목처럼 마음 기댈 사람 아무도 없이 홀로 존재하는 개인들이 닿는 곳을 그려낸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은 동시에 ‘누구도 있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영화 속 이야기들이 그리 멀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자체로 상실을 내포하는 시간의 흐름이나, 어찌할 수 없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침잠하고 부유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랬듯, 그저 무심히 흘러가게 두었던 이야기와 풍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포착해낼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우리 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각 떨어진 것처럼 보여도 바다 깊은 곳에서는 같은 땅으로 연결된 섬처럼, 서로 떨어진 무수한 개인들도 다른 듯 닮았고 먼 듯 가까운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이를 통해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의 마음과 이야기들을 바라 볼 수 있기를, ‘아무도 없는 곳’이라 여겼던 곳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태그 .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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