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어떤 꿈을 뜨개질하시겠습니까 - 빨간 늑대

마가렛 섀넌의 그림책 『빨간 늑대』
글 입력 2022.04.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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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섀넌의 『빨간 늑대』는 높은 돌탑 꼭대기에 갇혀 사는 어린 공주 로젤루핀의 이야기다.

 

로젤루핀의 아버지는 딸을 험한 세상으로 내보낼 수 없다며 공주의 방문을 걸어 잠갔다. 어느 날 로젤루핀은 의문의 황금상자를 받게 되는데, 상자 안에 든 것은 털실 뭉치와 쪽지 한 장이었다. 쪽지의 내용은 ‘무엇이든 뜨고 싶은 걸 뜨세요’. 그날밤 로젤루핀은 상자에서 빨간색 털실을 모조리 꺼내 뜨개질을 시작한다.

 

로젤루핀이 완성한 건 빨간 늑대 옷이었고, 그 옷을 입은 로젤루핀은 몸이 커져 마침내 돌탑 지붕을 뚫어버리고 만다. 빨간 늑대가 된 로젤루핀은 이제껏 경험할 수 없었던 자유를 만끽하며 새로운 생활을 맞이한다.


 

“빨간 모자야, 다시는 한눈팔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예!”

 

- 그림 형제, 『빨간 모자』 중에서

 

 

“나 같은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이 너무 위험하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커다란 빨간 늑대가 되고 말겠어!”

 

- 마가렛 섀넌, 『빨간 늑대』 중에서

 

 

마가렛 섀넌의 『빨간 늑대』를 읽으며 추억의 고전동화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를 가장 먼저 생각해냈다. 『빨간 모자』(그림 형제, 지경사, 2006)는 ‘빨간 모자’라 불리는 여자아이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숲속에 계신 할머니께 음식을 전해 드리러 가는 길에 곧장 할머니 집으로 가라는 엄마의 당부를 잊고 꽃을 꺾다 늑대에게 할머니 집의 위치를 알려주고, 빨간 모자보다 먼저 도착한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고 숨어있다 빨간 모자까지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이 동화를 읽을 때마다 매번 같은 대목에서 마음속으로 빨간 모자를 다그쳤다. 빨간 모자의 엄마가 길을 나서기 전의 빨간 모자에게 “가는 길에 숲에서 놀거나 한눈팔지 말고 곧장 할머니 집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으로,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빨간 모자가 엄마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빨간 모자』를 읽고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완벽히 이해한 것을 떠올리면 이 동화는 제법 훌륭한 동화일 것이다. 목적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어린이 독자에게 바깥세상의 위험을 일러줌으로써 어른들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한다.

 

“빨간 모자야, 다시는 한눈팔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라는 대사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할머니 귀가 왜 이렇게 커요?” “응, 네 말을 잘 들으려고 크지.” “할머니 눈은 왜 이렇게 커요?” “응, 너를 잘 보려고 크지.” “할머니 이빨은 왜 이렇게 뾰족해요?” “응······, 너를 잡아먹으려고!” 와 같은 긴장감 있는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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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섀넌의 『빨간 늑대』는, 『빨간 모자』를 불러오되 ‘지금, 여기, 우리’에 맞도록 새롭게 ‘뜨개질’한 ‘공주’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에세이스트이자 영어교육가인 조이스 박은 이 이야기의 추천사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빨간 늑대』는 우리가 왜 이야기를 짓고 나누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옛이야기의 모티브를 가져다 새롭게 써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빨간 늑대』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옛이야기도 ‘지금, 여기’에 맞도록 새로 ‘뜨개질’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이야기를 읽고, 나누고, 함께 뜨개질을 하자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온 수많은 옛이야기 속 공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탑에 갇힌 채 순종적으로 살았거나 저주 걸린 신발을 신고 평생 춤을 춰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고, 아니면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거나 물레방아의 바늘에 찔려 오랜 시간 잠드는 저주에 걸렸다. 그들은 백마 탄 왕자의 키스를 통해서만 깨어날 수 있었다. 안데르센의 『백조 왕자』에  등장하는 엘리자 공주는 11명의 오빠들을 구하기 위해, 마녀로 몰려 사형될 위기에 처하면서까지 거친 쐐기풀을 꺾어 뜨개질을 하는 희생도 불사한다.

 

『빨간 늑대』는 이와 같은 고전동화의 공주들이 새롭게 다시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빨간 모자’ 가 아닌 고유한 이름을 가진 ‘로젤루핀’ 공주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뜨개질을 한다. 어떤 타인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직접 만든 빨간 늑대 옷을 입고 통쾌히 돌탑 지붕을 뚫고 바깥세상으로 향한다.

 

이전의 『빨간 모자』에서 선과 악의 구도로 대립하던 ‘빨간 모자’와 ‘늑대’ 둘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특히 로젤루핀이 스스로 빨간 늑대가 되겠노라 결심하고 실행한 결과로써 돌탑 안의 로젤루핀과 돌탑 밖의 빨간 늑대가 한 명의 인물로 연결됨은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전개가 아닐 리 없다.

 

여러 고전동화에서 악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늑대는 로젤루핀 공주와 동일시되어 차츰 독자와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이윽고 본성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자유로운, 독자들의 응원을 받는 존재로 거듭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 마가렛 섀넌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개개인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는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에 맡긴다고 말한다. 즉 이 동화는 여성과 어린이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견고하고 단단한 탑이 있고 그걸 부수고 나오고자 하는 독자 모두를 위한 책이라는 의미일 테다. 로젤루핀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넓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가고, 늑대처럼 신나게 춤추고 노래한다. 그녀가 느낀 해방감과 빛나는 자유는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고, 작가는 위로하고 격려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털실 뭉치와 ‘무엇이든 뜨고 싶은 걸 뜨세요’라고 적힌 쪽지가 담긴 상자가 전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뜨개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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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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