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버림받은 딸의 이야기 - 연극 'Is God Is'

글 입력 2022.04.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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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Is God Is'는 낯선 작품이다. 작품의 주축이 되는 쌍둥이 주인공은 외국인이라는 특성 외에도 버려지고 화상을 입었다는 점에서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주인공들이 영영 먼 존재들로 느껴지진 않는다. 시종일관 표현되는 가까운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와 애증, 깊은 상처가 만들어낸 동정심과 분노는 우리 삶 속에서 쉽게 보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폭력의 대물림과 흑인 여성 극을 내세우지만, 사실 나는 의도한 코드와는 조금 다른 코드로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작품의 의도와 내가 읽은 연극이 서로 평행선을 그리는 것은 아니고,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에게 'Is God Is'는 없는 존재가 있는 존재가 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버림받고 기대받지 못한 끔찍한 존재가 끔찍한 굴레 속에서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방식으로-생존하여, 마침내 그를 창조한 존재와 같은 위치에 다다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생존하고 마침내 존재한다는 것은 늘 그렇듯 등 떠밀어 찾은 가능성과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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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주인공은 화상을 입은 쌍둥이다. 아나이아는 보이는 곳에, 러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 화상이 생겼다. 달리 말하자면, 아나이아는 추한 얼굴을 가지고, 러신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에는 어떤 뚜렷한 차이가 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상처는 절대 아물지 않는다. 아나이아는 모두에게 껄끄러운 존재고, 그들을 오랜만에 부른 어머니에게도 은근히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러신은 얼마든지 상처를 숨길 수 있다. 그녀는 밝고 아름답기에, 언제든 상처를 숨기며 살아갈 수 있다.

 

보이는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는 그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아나이아는 끊임없이 상처받은 과거를 직면하고 살아가면서 끝없이 그것들을 곱씹는다. 하지만 러신은 상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신이 정말로 상처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활발한 활동력으로 그것을 넘겼을 뿐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신과 쌍둥이들의 삶을 망쳐놓은 아버지를 죽이라고 했을 때, 러신만이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상처와 덮어진 것들이 만든 공허한 틈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나이아는 주저하지만, 어머니의 위치에 자신을 놓음으로써 고통스러워 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들은, 어머니를 신이라고 부르며 복수를 맹세한다.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러신은 주저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을 처리하고, 아나이아는 그것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방관한다. 마침내 아버지가 재혼한 가정에서 남자 쌍둥이를 만났을 때, 아나이아는 그들에게 자신들을 대면하면서 러신을 막아선다. 하지만 그 틈을 틈타 러신이 살해당하고, 아나이아의 손에 피가 묻고만다.

 

막상 아버지의 앞에 선 아나이아는 다시 갈등한다. 아버지는 용서를 구하고, 아나이아 뱃속에 있는 아이를 걱정하면서 재결합을 부탁한다. 아나이아는 돌을 내려놓고, 아버지는 방심한 아나이아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러신이 살아 돌아와 아버지를 때리고, 두 쌍둥이는 아버지를 함께 때리며 그를 모욕한다.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불을 붙이자, 아버지는 러신을 끌어안는다. 러신은 함께 불타며 소리 지르지만, 아나이아는 뱃속의 아이가 걱정되어 차마 그녀를 구하지 못한다.

 

돌아와서 시체의 공물을 만지는 신, 어머니는 러신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 없이 만족한다. 그리고 아나이아가 살아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나이아는 자신들이 저주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울먹거리면서 죽어가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돌팔매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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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한다. 하나는 두 신화적 인물을 통해서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적 관점을 통해서다. 첫 번째 시각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아나이아와 러신이 헤파이토스와 아폴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가 사용한 비유와 상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분명 두 남신과 두 여자는 어느면에서 많은 부분 닮았다.

 

첫번째, 헤파이토스와 아폴론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아버지이자 주신인 제우스의 사랑을 갈구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족간 부드러운 사랑이라기보다, 일종의 위계가 있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자신의 안위를 해칠 자식이라면 얼마든지 감금하고 버릴 수 있는 냉혹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신을 자신들의 신으로서 공경한다. 마찬가지로 아나이아와 러신은 버림받았음에도 어머니를 신이라 부르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맹세한다. 이때의 신은 사랑보다 폭력의 얼굴을 한다.

 

두번째, 헤파이토스는 버림받은 아들이고 아폴론은 사랑받는 아들이다. 헤파이토스는 섬세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추한 얼굴과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신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폴론은 능력도 출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이와 비슷하게 아나이아는 사려 깊은 면모가 있으나 화상 탓에 사랑받지 못한다. 오히려 그에게 다정함은 하나의 감옥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러신은 어머니가 부탁한 일을 능히 해내는 행동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 작품 내내 아나이아는 껄끄러운 존재로 여겨진다.

 

세번째, 헤파이토스는 추하고 버림받은 아들이지만, 깊은 지하 속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아나이아 역시 쌍둥이 자매 외에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처를 끊임없이 직면한 삶을 산 탓일까, 본래부터 섬세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상황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폭력의 굴레에서 멈춰 선다. 무엇보다 그는 뱃속의 아이를 정말로 낳길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는 주목받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련하는 대장장이인 것이다.


연극 'Is God Is'는 기독교적 코드가 많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신의 뜻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 돌팔매로 사람을 죽이는 점을 보면 성서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냉혹한 어머니를 향한 돌팔매질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어떤 기독교적 상징이나 실체를 저격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는 같은 극단의 연극 '마터'과 통하는 점이 있다.

 

'마터'에서 무신론자 교사인 로트는 자유를 위해 예수처럼 자신의 발에 못을 박는다. 이처럼 로트가 순교자를 자처하는 벤야민보다 진정한 순교자의 역할을 했던 것처럼, 신은 신이 아닐때 가장 신적이다. 신이 어떤 곳에 존재하여 개인들에게 받아들여지건, 신을 경외함으로써 기대하는 자애로움과 자유는 결코 절대불변한 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을 끔찍한 운명에 밀어 넣은 잔혹한 존재일 뿐이다. 신이 휩쓸고 나간 자리에 살아 숨쉬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신이 아끼는 러신 마저도 온몸이 다 탄 상태로 그 사이에 누워있다.

 

하지만 아나이아는 살아남았다. 그는 끊임없이 상처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 얼굴에 남은 상처를 지울 수 없다. 상처는 그를 옭아매는 감옥이 되어 냉혹한 복수자도, 자유로운 순례자도 되지 못하게 되었다. 뱃속의 아이는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고 의지했던 존재가 업화의 불에 타오를 때조차 주저하게 하였다.

 

하지만 모든 막이 내리고, 그는 이제 그를 끔찍한 운명으로 밀어넣은 어머니이자, 자식의 창조주인 신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든 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글쎄,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이제 관객의 몫일 것이다. 뭐가 되었건 그의 삶은 가능성에 휘둘리고 휘두르면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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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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