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변기(샘)과 물컵(참나무)가 탄생시킨 새로운 미술사 - 마이클 그레이그 마틴 전

글 입력 2022.04.2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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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변화한다. 변화에 따라 시대별 미술특징이 생기고, 미술사조가 생긴다. 과거 원시시대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술사조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탄생하고, 흥하고, 때론 비난받기도 하며 변화해 왔다.


원시시대의 벽화그림과 중세의 종교화와 같이 당시 사람들이 보고 믿었던 것들을 그려냈고, 르네상스에 원근법이 발견된 후에는 보다 사실적이고 정확한 그림이 그려졌으며, 이후에는 자연의 색채 변화와 찰나의 인상을 그림에 담아냈다. 하지만 산업과 기술이 발달하며 카메라가 등장하였고, 미술에서는 사실적 표현보다 개성과 물체의 본질이 중요해졌다. 미술가들은 이후 오브제를 내세운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지속적인 본질에 대한 탐구와 아이디어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변기(샘)과 물컵(참나무)가 탄생시킨 새로운 미술사


 

이를 증명할 떠들썩한 사건이 20세기 뉴욕에서 일어났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샘(Fontaine, 1917)>이란 이름의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뒤샹의 작품을 두고 생긴 논란을 두고 그는 “자신이 오브제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며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운 개념과 정체성을 창조한 것이라 주장했고, 이는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야기했다.


그리고 1973년 영국, 미술계에 또 한 번의 논란이 생겨난다. 영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참나무(An Oak Tree, 1973)>이 그 주인공이었다. 갤러리 벽면에 선반과 물 한 잔을 올려놓고 물컵이 아닌 참나무라고 명명한 것이다. 사람들이 참나무가 아닌 물이라고 반박했지만, 그는 작품 속 물컵은 작가의 의도를 통해 분명히 참나무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작품을 만드는 건 작가의 의도”임을 명확히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작품은 개념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 세계 최초, 최대 규모 회고전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논란의 작품 <참나무(An Oak Tree, 1973)>를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참나무>의 작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 세계 최초’, 그리고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자신을 표현하는 색이라고 표현한 마젠타 컬러의 제목이 관객을 반긴다. 강렬하지만 맑은 마젠타 컬러의 제목은 시작부터 시선을 사로잡으며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에는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 <참나무(An Oak Tree, 1973)>가 작가와의 Q&A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Q&A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가 단순히 물컵을 보고 참나무라 이름만 붙인 것이 아닌, 물체의 본질에 대해 깊이 사유함으로써 탄생한 작품임을 느낄 수 있으며 작가의 의도가 중요한 개념매술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개념미술은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물체의 이름은 그저 교육과 사회화에 의해 약속된 언어일 뿐 보는 이의 기억, 경험, 창의력을 통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두 번째 파트인 ‘Language(언어)’에서는 문자를 오브제로 사용했다. 말 그대로 알파벳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자주 사용하는 메트로놈, 서랍, 지구본 등과 같이 오브제들처럼 이미지로 사용한 것이다. 모름지기 단어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단어는 뜻이 배제된, 오로지 오브제로 존재하며 관람자들에 의해 재해석 된다.


반면 같은 단어라도 오브제와 단어의 연관성을 그린 작품이 있는데, 바로 이다. 작품 속 장갑과 LOVE 라는 단어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생각하는 순간 ‘LOVE'와 'GLOVE' 사이의 운율을 깨닫는 순간 운율을 통해 연결되는 언어적 유희를 느낄 수 있다. 언뜻 아재개그라고 생각될 수 있는 단어 간의 운율 속에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재치를 담은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제 작품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즐거움, 아름다움,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이 공산품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원의 풍경보다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는 공산품을 오브제로 활용하여 일상을 작품안으로 끌고 온 것이다. 이 오브제는 테이크아웃 컵, 스마트폰, 게임기, 노트북, 헤드셋 등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이는 매우 흔하게 느껴지지만, 만약 우리 곁에 없다면 당장의 불편함을 느끼고 존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잇는 일상의 사물들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평범한 물건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삶 속의 물건들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미학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그의 작품을 보며 관람자들은 어느새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볼 뿐 아니라 우리 주위의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모든 해석은 관람하는 자의 몫이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유쾌하게 움직여 보라”


 

상상력을 유쾌하게 움직여 보라는 그의 메시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색상이라고 느껴진다. 전시를 다녀온 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에 대해 찾아보며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컬러가 작품을 섹시하게 한다며 더 극단적으로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그의 주장처럼 강렬한 원색을 즐겨 썼지만 형광색은 작품을 생기 없이 만든다며 사용하지 않았고, 오직 12가지의 색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고집이 담긴 간단명료하면서도 과감한 색상은 검은색의 선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오브제와 만나 최대한 익숙지 않은 인공적인 색상들을 사용하여 지각에 영향을 줌과 동시에 오브제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더욱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코로나 이슈를 담은 최근의 작품으로 이뤄진 마지막 파트까지 관람을 마치면 작가가 중요시하는 일상의 중요성을 표현한 일상의 오브제들로 표현한 작가의 위트에 어느새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나만의 해석을 더해 전시를 즐겼음을 깨달으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개념미술을 온전히 즐겼음을 깨닫게 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눈과 경험, 생각으로 해석을 즐김과 동시에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편견 또한 깨지는 시간이 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미술은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변화한다. 마르셀 뒤샹과 그 계보를 이어받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을 통해 개념 미술이 탄생했다. 작품을 보며 “그냥 원래 있던 사물에 다른 이름 붙이는 걸 누가 못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 새로운 것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생각만 하던 걸 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 시작을 보지 못했다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니 개념 미술의 시작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새롭고 충격적이었을까.


모든 미술사조의 시작엔 사람들의 놀람과 감탄, 그리고 비난과 비평이 있었을 것이다. 개념미술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의 고민과 시도 속에서 피어난 다양한 미술양식과 사조가 있기에 지금의 미술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과연 앞으로는 어떠한 새로우면서도 경악스러운 미술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궁금해진다.

 

 

[김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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