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에 퍼진 불법촬영에 맞선 사투 '나를 지워줘'

글 입력 2022.04.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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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학창시절에 함께 했던 청소년 소설들은 고민하고 흔들리는 주인공들이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어려움을 뛰어넘는 내용이 많았다. 요즘의 ‘사이다 결말’과는 거리가 멀고 내면이 단단해진 주인공이 문제를 더 이상 문제로 여기지 않게 되곤 했다. 혹은 조금은 판타지가 곁들여진 해결책이 나오긴 하지만 모든 엔딩은 처음과는 달라진 주인공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런 책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이 흘러가는 데에 관심이 없었고 학교와 집, 친구와 나 자신만이 관심사였기에 주인공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책에서 문제 제기하고 있는 사건들을 그저 주인공의 어려움, 난관 정도로 보았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만난 '나를 찾아줘'는 조금은 달랐다.

 

 

친구의 고통을 지우기 위한 열일곱 살 디지털 장의사의 위험한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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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내용은 불법 촬영을 소재로 한다. 디지털 장의사로 활동하던 '모리'가 누명을 쓰고 활동을 그만하려 한다. 그렇지만 학교 친구 '리온'이 자신에 대한 헛소문과 딥페이크 영상을 지워달라는 부탁을 하고, 얼마 후 리온이 찍힌 불법 촬영 영상이 퍼지게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리온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생각보다 깊게 얽혀 있다. 찍은 사람과 업로드한 사람의 정체에 다가갈수록 모리는 사건의 내막은 물론 어두운 범죄의 소굴을 발견한다. 개인의 악의를 밝혀내려는 줄 알았던 모리의 추적은 추악한 범죄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일조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을 변화를 맞이한다. 불법 촬영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모리의 친구들 현준, 수석은 범죄를 밝히는데 일조하며 가해자의 논리를 비판하는 데 이른다. 모리 역시 첫 의뢰인에 대한 죄책감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만든다.


리온의 친구이자 불법 촬영에 동조한 가해자이자 진욱에 의한 피해자인 '재이'라는 인물이 가장 문제적일 것 같다. 재이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독자도 있고 재이를 비판하고 싶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느 쪽도 의견을 꺼내기 어려운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고 파괴적이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독자는 쉽게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는가.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 쉽게 말을 얹고 그가 겪는 고통을 합리화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재이의 선택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리온에게 큰 고통이 된다. 작은 악의가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변화하지 않는 인물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진욱 뿐이다. 학교 내에 불법 촬영물을 '즐겨' 올리며 피해자에 대해 '피해자다움'으로 피해자를 감히 평가하고, 부모님의 배경을 믿고 '까분다.' 진욱을 보다보면 열등감에 빠져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지르고, 잘못된 방향으로 방치된 채 살아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불쌍하지도 않다. 작품 내에서도 악역에게 사연을 주지 않는다. 언급이 되긴 하지만 인물들은 진욱의 서사를 '안물안궁' 태도로 저지한다. 사연 없는 집 하나 없으며 모든 사연 있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지는 않다. 그들의 사연까지 알기에는 우리가 좀 바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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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이야기는 불법 촬영과 N번방 사건을 모티프로 한 내용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물들에 주어진 설정들이 굉장히 많다. 리온은 입양되어 어머니와 살고 있는 아이이다. 모리는 부모님이 어린 시절 돌아가셨고 그 사건으로 쌍둥이 여동생 모연을 잃어버렸으며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다.

 

하지만 개인사는 그다지 작품 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리온은 연예인 지망생으로 오디션 프로에 참가하면서 겪게 되는 편견과 허위사실 유포가 더 부각되며, 모리는 디지털 장의사로서의 집념과 노력이 강조된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 개인사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행동과 태도로 보여주는 모습이 지금 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큰 단서이라고 생각해본다.

 

*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줘’는 쉽게 써져 있고, 전개가 흡입력 있다. 얼마나 빨리 읽게 되는가를 강조해보자면 2시간도 걸리지 않고 다 읽었다. 자랑으로 보이는 것 같다면 직접 읽고 시간을 재어보아도 좋다. 어렵지 않는 이야기 구조를 따르기 때문에 쉽게 갈등 관계를 파악할 수 있고 어쩌면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생각과 대화에 힘을 쏟아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모리가 더 이상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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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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