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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내 이름은 수증기라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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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쟈코프, 본 뮤지컬 중에 가장 난해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를 건네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가슴에 울림을 느낄 수 있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이 작품은 그랬다.

   

극을 보러 가기 전까지 나는 본 작품이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오프 작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전작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마치 아무런 캐릭터 설명을 듣지 않은 채 8화부터 드라마를 시청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이름들은 물론 스메르쟈코프(이하 스메르)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건지, 오해를 받는 건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상당히 불친절하고 난해한 스토리 진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진행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고 오히려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생각을 하는 것에 즐거움을 얻는 스타일이라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러나 미리 이전 이야기를 알고 갔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극에는 이반, 알로샤, 스메르, 묘지 관리인, 아버지 등 꽤나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극에 나온 모든 것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스메르는 발작하고, 괴로워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모독당한다. 그는 광기에 차기도, 혼란스러워하기도, 가끔은 편안해하면서 알 수 없는 내면을 탐구한다.

 

뮤지컬은 전체적으로 스메르의 자아찾기 여정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이 끝나고 음악 감독님과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어려운 내용을 가진 본 극을 ‘스메르가 발작을 시작하고 발작이 끝이 나며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주마등’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셨다 들은 것 같다. 이에 맞춰 뮤지컬을 회상해보면 이건 온전히 스메르 본인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싶다. 스메르가 3명인 것부터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표현한 느낌이라.

   

뮤지컬을 보다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생각났다. 선과 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갈구하며 그 양상이 처절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요리 학교에서 주방장과 학생들은 귀족들과 고위층의 혀만이 중요하고 천민들의 혀는 상관없다는 노래를 부른다. 여기에 스메르쟈코프는 귀족과 천민, 신과 악마를 들며 분위기상 해서는 안될 질문들을 던진다.

 

대략 신이 악마를 만들었고 그 존재로 자신이 증명된다면 신은 악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아니냐며 그렇다면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인 신일까라며 던지는 의문들이었다.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관계 없이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일은 주변과 자신을 깨우고 스스로의 내면의 길에 빛을 비춰보며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다. 스메르는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란 자신을 죽기 전에서야 빛을 드리워볼 수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 깨어났을 때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스메르는 점차 자신의 이름, 주위의 사람들, 자신이 벌인 일들을 알게 되며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노력했다.

 

   

스메르쟈고프 제출용 색반전.jpg

 

 

이렇게 난해한 극임에도 불구하고 극에 몰입하기는 쉬웠다. 마치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즐길 수 있는 음악같다고 해야 할까. 스메르가 자신의 존재를 부르짖으며 어떤 것을 열망할 때는 동화되어 나도 어떤 갈망같은 게 느껴졌고, 어머니가 있다면 자신의 존재가 증명될까 슬퍼하며 노래를 부를 때에는 울컥하기도 했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가 친절하지 않고 난해한 극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스메르의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관람한다면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많은 흥미로운 극이 될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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