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한 일상에 즐거움을 불어넣은 예술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글 입력 2022.04.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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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작가와 작품을 통해 미술사와 시대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미술관에 방문해 전시 관람을 자처하는 주된 동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원본의 아우라에서 느껴지는 예술적인 힘을 전해 받으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할애한다.


2022년 4월 8일부터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F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역시 개념미술 1세대 작가의 발자취로부터 미술사의 한 대목을 살펴보고 특별한 시각적 경험이 가능해 발걸음이 흥미로운 예술의 장이다.


특히 82세 거장이 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아시아 첫 회고전이자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총 150여점이나 되는 최대규모의 원화 작품이 걸렸다는 점에서 ‘관람할 전시’ 목록에 기록해두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회고전은 회화, 드로잉, 디지털 작품, 대형 월 페이퍼 등 폭넓은 영역의 작품이 총 6개의 섹션 구성을 통해 공개되며 아시아 최초 공개되는 개념미술의 기념비적 작품인 <참나무(An Oak Tree, 1973)>, 본 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작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로서의 글자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그의 작품세계로 한발짝 들어가 보자. 이 작품은 '욕망(DESIRE)'이라는 단어가 큰 형태로 겹쳐져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형형색색의 텍스트와 그것을 가로지르는 얇은 선이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게 유도한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까, 관객들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끌어냈다면, 동시에 전복하고자 하는 게 바로 작가의 의도이다. 보통의 현대미술에는 복잡하고 치밀한 서사가 담겨있다. 그러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에게 알파벳은 서사적 매체로서의 언어가 아닌, 하나의 오브제다. 그저 다른 이미지들을 쌓을 수 있는 견고한 구조물일 뿐이다.

 

따라서 캔버스 속 알파벳과 오브제와의 연관성은 없다. 관객들의 상상과 해석이 곧 작품을 바라보는 올바른 답이 된다. 다만, 작가는 늘 신선하고 특별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만한 단어를 선정해 그림으로 옮겨냄으로써 관람자를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사라진다. 해석하기 전까지의 단계만이 오롯이 창작자의 몫이다.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무엇이든지 떠올릴 수 있기에 그의 작업은 바라보는 이들의 온전한 창작물이 된다. 흔히들 모호하고 파악이 어렵다고들 말하는 현대미술이지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무거움과 부담감이 뒤섞인 일반 대중의 시선이 미술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루는 게 맞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며 유쾌한 장소로의 전환을 시도하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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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loveglove), 2011

 

 

위 사진의 오른쪽에 위치한 2011년 작, Untitled(loveglove)도 앞서 언급한 언어의 비서사성을 내포한다. 더 나아가, 단어와 오브제 각각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운율(rhyme)의 연결을 중점으로 언어와 픽토그램 사이의 유희를 나타내기도 했다.

 

작가의 발상으로 시작된 본 작품은 장갑을 그린 그림에 운율을 살린 'LOVE'를 겹쳐 적어 < 글러브와 러브 > 두 오브제 사이의 공통된 운율을 발견하도록 재미 요소를 집어넣어 표현했다. 직관적인 감상이 가능하면서도,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되는 유머러스함이 묻어나 있다.

 

 

 

일상의 사물 들여다보기 : 시각과 기억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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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창작해내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일상에 자리한 인공적인 사물을 즐겨 활용한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의 사물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평범한 물건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없으면 안 될 삶 속의 물건을 커다란 캔버스에 옮겨 직시하게 한다.

 

본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그렸는지 바로 알기를 원하기 때문에 유명하고 알려진 사물만 그리는 작가만의 표현 방식이다. 시각과 기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보는 방식은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그의 생각이 간단하고도 이념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Here and Now

 

"제 작품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즐거움,

아름다움,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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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주로 그리는 작가의 표현 방식에서 중요한 개념은 '경계(fragment)'다. 단순하지만 윤곽선이 정확한 오브제. 이는 맥락과 그림자, 세부 정보를 제거한 후 사물의 부분을 파편처럼 떼어내 표현하는 축약법이다.

 

또한 오브제를 한 화면에 모두 그리지 않고, 프레임 밖으로 일부 잘려 나가도록 하는 것은 일부만 보고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상상력의 자극이다. '잘라내기'에서 끝나지 않고 '상상해서 연결하기'로 나아가게 하는 작가의 진지한 위트가 빛나는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현시대의 가치를 담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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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시는 회고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작품의 형식, 의미와 더불어 개념미술 1세대이자 82세의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요즘 세대 못지않은 감각과 감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다.

 

미적 효과뿐만 아니라, 흔한 사물을 예술 분야에 접목하여 일상의 가치를 되새기게 해준 작가의 작업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일상', '평범함'이라는 키워드가 더욱 소중해진 현시대에 예술가의 작품은 시의적절한 시각 언어다.

  

또 한편으로는 작품의 심오함을 말하기보다, 감상법에 접근하여 '시각과 기억의 관련성'을 논하는 관객 중심의 의미를 발견해 낸 작가의 탁월함이 놀라웠다. 그런 탁월함조차 그가 오랜 시간 내재해왔던 예술적 가치관과 고민에서 비롯한 결과 그 자체였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을 통해 글로 다 전할 수 없는 현장의 박진감, 온라인으로는 전해받기 힘든 원화가 뿜어내는 아우라를 전해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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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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