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생의 의미, 내 이름의 의미 :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공연]

글 입력 2022.04.1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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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러시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꽤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혹은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내용에 크게 공감을 못하기도 하고, 인물 간의 관계가 꽤 복잡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늘 새로운 작품에 대한 도전 정신이 생겨나고, 또 세계관이 연결되는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를 관람하게 되었다.

 

 

 

1.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스메르쟈코프>



마침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온라인 중계가 진행된다고 하여 해당 작품을 먼저 보았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제목 그대로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죽음을 둘러싼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스메르쟈코프>는 그 작품 속 표도르를 살해한 범인 스메르쟈코프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파고드는 작품으로, 일종의 스핀오프라고 볼 수 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먼저 보고 <스메르쟈코프>를 본 사람의 입장으로서, <스메르쟈코프> 속에서 오버랩되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요소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반 까라마조프가 쓴 신의 대리인에 관한 논문이 대사에서 가사로 발전하고, 조시마 장로가 표도르, 코폴라(코르넬리우스)가 드리트리 까라마조프로 변모하여 둘의 갈등을 다시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스메르쟈코프>에서 조시마 장로 역을 맡은 김주호와 심재현 배우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표도르 역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반대로, <스메르쟈코프>만 본 관람객이라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꽤 난항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시놉시스에서 ‘까라마조프 세계의 1악장을 마치고 새로운 2악장으로 넘어간다’라고 <스메르쟈코프>를 설명하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보지 못한 관람객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쉽다. 그리고 1악장과 2악장 간의 연결도 중요하지만, 각 악장의 의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 비해 <스메르쟈코프>는 내용이 워낙 복잡하여 그 의미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아 이 또한 아쉬움을 얘기하고 싶다.

 

 

 

2. 세 조각의 스메르쟈코프, 그리고 발작



이 작품에서는 세 명의 배우가 모두 스메르쟈코프를 맡는다. 1, 2, 3으로 표기되어 있지도 않고, 그저 ‘스메르쟈코프’라는 이름을 가진다. 그렇다고 특정 스메르쟈코프가 나머지 두 자아의 본체가 되거나, 각각 다른 감정의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세 명의 스메르쟈코프 모두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어우러진다. 그렇다면 왜 스메르쟈코프는 세 명으로 분리되어 있는가?

 

 

내 육신에서 나온 육신! 발작!

 

-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넘버 ‘발작’ 中

 


발작은 문학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갑작스러운 무언가, 짧지만 강한 힘이 응축되어 튀어나오는 무언가를 주로 상징한다. 문득 프랑스 문학 강의에서 들었던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젊었을 때 간질 발작을 앓았던 플로베르, 그리고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집필을 끝낸 <세 가지 이야기(Trois Contes)>. ‘Conte’는 단편소설보다 짧은 이야기를 뜻하는데, 이를 발작과 연관시켰던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세 명의 스메르쟈코프는 마치 그 ‘세 가지 이야기’처럼 발작으로 튀어나온, 어떤 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 어떤 조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표도르를 죽인 이후의 발작으로 스메르쟈코프는 세 조각으로 나뉘고, 그리고 그 안에서 또 짧은 이야기들(contes)을 만들어내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강한 힘은, 그들이 말한 ‘악마의 침’, 즉 인간의 그릇으로 견딜 수 없던 악이었던 걸까?

 

 

 

3. 한 인물의 생을 훑으며 찾아가는 의미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의 스메르쟈코프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사생아라고 알려져 있으면서도, 그의 하인으로 일하고 있고, 그러나 그를 죽인 인물. 여러 갈등이 얽혀 분리된 듯한 까라마조프가를 나약한 악이라는 이름으로 연결하는 결정적 인물.


그래서, 스메르쟈코프는 왜 이런 인물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뮤지컬 <스메르쟈코프>가 찾아가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주체를 스메르쟈코프 자신으로 만든다. 스메르쟈코프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와 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특징이자 단점은 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왜 끊임없는 살해의 가도를 걸어간 것인가? 그의 이름은 왜 ‘파벨 표도로비치 스메르쟈코프’이며, 표도르의 이름을 가졌지만 왜 까라마조프의 성씨는 얻지 못했는가? 수증기라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은 결국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마치 스메르쟈코프의 환상을 그대로 경험한 것처럼, 몸을 강하게 짓누르는 광기는 존재했지만, 그 끝은 아득했다는 점이 아쉽다. 서사를 모호하게 남겨두고 관객들이 직접 상상하여 그 해답을 찾도록 하는 의도적 연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 관객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지 않았나 싶다.


*


개인적으로 작품의 연출도 화려하고, 피아노 한 대로 광적인 넘버를 보여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칫하면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광기의 연기를 적당한 선을 지켜가며 표현한 배우들의 실력도 훌륭했다. 하지만 한 번의 관람으로는 극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것을 응축하려 한 시도는 보이지만 그게 완전히 와닿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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