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동물과 인간 이분법을 넘어서 - '동물 너머' 독서모임

글 입력 2022.04.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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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기르며 사람과 동물 간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 책도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비건 지향적 삶을 사는 중인데, 비건 관련 음식과 물건 등을 어떻게 더 현명하게 소비할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며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미술사를 공부하는 중인데, 요즘 미술사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인류세 담론과 이 책을 연관 지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난 9일 『동물 너머』 독서모임이 있었다. 참석하신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날의 동물 담론이 반려견을 기르는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예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를 여러 가지 층위에서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이야기 나누며 2022년의 ‘동물’이란 그 단어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인간과 사회 전체를 아우른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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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너머』를 통해 동물에 대한 좁은 시선이 머문 곳에서 더 나아가, 그 너머에 수많은 복잡한 문제를 주목하며 다른 시선의 사유를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천만 반려인이 존재하게 된 계기도, 동물 복지를 향상시킬 윤리를 요구하고 요구받는 이유도 모두 근대적 관념인 ‘인권’과 ‘인도주의’가 등장함으로써 가능해진 것. 동물에 대한 배려가 궁극적으로는 계급, 젠더, 권력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인간-동물 관계는 동시에 인간-인간 관계를 뜻하며 따라서 순수하게 동물만의 문제, 순수하게 인간만의 문제란 없음을 깨달았다. (중략) 결국 우리가 주목할 바는 단순히 타자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의 유무를 논쟁할 것이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희생양이 발생하는 ‘사회적-역사적-문화적-경제적 구조’를 살펴보고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이다.(신지예)


인류학자 전의령은 한국에서 의미화되는 ‘동물’에 대한 시선을 꼬집는다. 동물권, 동물복지 담론의 인간과 비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종간(interspecies) 연민을 ‘넘어’서는 사고의 확장을 요구한다. 인간-비인간(동물) 관계가 가지는 복잡성을 인지하고 기존의 인식을 ‘너머’ 인간-동물, 인간-인간으로 매개되는 사회적 문제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시성의 이동을 통해 현재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의식하고 다른 방식의 질문과 사유를 촉구한다.(중략) (문지애)


책을 다 읽자,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책은 끊임없이 동물 너머의 문제를 보게 한다. 동물권을 비롯해 반려동물, 길고양이, 동물싸움 등이 어떤 사회문화적, 자본주의적 배경과 얽혀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3장 '인간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이었다. 49페이지를 보면 "우리가 푸마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비인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러 부류의 '자기'가 됨을 뜻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앞의 '반려종' 개념과 이어지며 동물과 인간이 동등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동물과 인간의 이분법을 해체한다.(정예지)

 

 

 

"이런 논의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다루는 책인 만큼 모임에서 나눈 질문도 답을 하려 애쓸수록 더 많은 질문들을 불러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며 출구가 없는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시야는 더 넓어졌다. 뾰족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때는 답답해하면서도, 이런 논의를 이어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Q.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3의 존재를 찾아야 할까 아니면 자아 형성 과정에서 타자의 정의를 흐트러뜨려야 할까? ‘여러 존재와 관계 맺는 나’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타자와 나는 동일화되는 것일까?

 


-‘동일화’가 곧 문자 그대로 타자와 내가 완전히 동일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타자와 나는 같을 수 없다. 타자와 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존의 이원론을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가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을 통해 인식하기에, 타자의 존재가 아예 사라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와 타자, 인간과 동물, 자연과 사회(문화)의 엄격한 구분을 넘어 각각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정립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은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자연을 보호하자’에서 더 나아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자연’이 훼손되는 건 아닌지 살피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Q. 어떤 고통, 죽음, 부정의, 불평등은 불가피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왜 어떤 것은 불필요하고 잔인한 것, 따라서 폭발적인 연민의 대상이 되는 걸까? 해결 방법은 없을까?

 


-동물 또는 비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의 유무는 ‘관계’ 속에서 촉발된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직접적인 교류를 하거나, 또는 생생하게 자신이 겪을 법한 경험과 상상력을 촉발하게 하는 대상은 폭발적인 공감과 연민의 대상이 된다.


-단순히 관계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에 언급되어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표한 퓨마의 죽음을 보면 그렇다. 퓨마는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일은 드물고, 오히려 낯선 동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퓨마의 죽음에 사람들이 슬퍼한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퓨마를 죽였다는 데 있다. 한편, ‘돼지망치살해사건’에서 많은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잔혹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긴밀한 관계를 맺거나 교류를 하지 않아도 어떤 고통이 불합리하거나 과도하게 잔혹하다고 인식되면 감정이 동요하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완전한 해결법은 없어도, 인간의 연민에 모순이 있으며 우리의 지각은 불완전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런 논의를 해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Q. 지금껏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인식이 변화했듯이 반려동물에서 반려종으로 또 한 번 변화한다면, 그에 맞춰 관련된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전환될까? 지금 우리 사회는 반려종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일단 반려견에서 반려종으로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얘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반려견(반려종) 산업은 반려견(반려종)에게 나를 이입해 결국엔 나를 꾸미고자 하는 욕망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산업이 과연 함께하는 동물을 위한 걸까, 여전히 동물은 어떤 ‘대상’에 머무는 건 아닌지 의문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반려견(반려종) 산업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과 반려동물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든 개가 같은 장난감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장난감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반려종 산업에서 반려종이 주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반려종과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관련 산업은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SNS 등을 통해 보여주기 식으로 확산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많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반려동물과 관련해 정책적인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모임을 마치며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 인간-동물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다. 하지만 그 바람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는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수많은 모순과 맞닥뜨렸다. 각자의 가치관과 지금 처한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결국 개인적 차원보다 구조적,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곤 했다. 우리는 동물권 전문가가 아니고  『동물 너머』가 법제도를 상세하게 다룬 책은 아니었기에 논의가 더 나아가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이 책이 독자를 수많은 문으로 안내한다고 쓴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많은' 문이 '무한대의' 문으로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2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던 깊고 방대한 이야기를 나눈 소감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생생한 토론 현장에 참여해서 좋았다.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는데, 각 부분마다 주체적으로 의미를 규정하며 읽은 분도 계셔서 인상 깊었다. 다시 읽으면서 모임에서 나왔던 얘기를 새롭게 생각해보고 싶다.(정예지)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다 보니 혼자 읽을 때는 실제 생활보다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이론과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읽었다. 그러다 실제 비건적 삶을 실천하는 분과 만나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니 책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비건 지향적인 삶에도 관심이 생긴다.(문지애)


반려견을 기르고 있다 보니 반려견과의 관계 바깥에서 이 책을 보는 분들의 시선이 궁금했는데 그런 관점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신지예)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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