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하기를 말하기 [도서]

당신의 말하기는 어떤 당신을 나타내고 있나요
글 입력 2022.04.1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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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신분이 된 이후로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면서 언어를 배우는 건 문화 또한 같이 배우게 되는 것이라는 소리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언어란 굉장히 미묘하다.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의 언어를 마주하다 보니 이것이 꽤 명확하게 인식의 틀을 보여준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즉각적인 재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일단 고려해봐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언어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생각과 존재를 포착할 수 있는 예민한 레이더로서 분명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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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하나 작가에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 검색해 보니, 그의 책 중 유일하게 <말하기를 말하기>만이 소장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지만, 언어와 말하기에 관한 관심이 존재했으니 손해는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읽은 게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 이 책은 재치 있고 설득력 있게 ‘말하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카피라이터, 팟캐스터, 작가, 강연자 등 말하기를 중심으로 여러 직업을 삼아온 저자는 대다수가 말하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는 점을 아쉬워한다. 말의 형태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존재는 평생을 ‘말’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말하기는 소통이고, 공감이고, 폭력이고, 음악이고, 가르침이고, 놀이고, 도발이고, 해소고, 울림이고 예의이므로."

 


이 한 문장으로 말하기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얼추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말하기는 내용과 형식 모두 연습으로 발전 가능한 것이고, 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 현대인의 지성이라고도 말한다.

 

그의 말처럼 우린 앞으로 수많은 존재를 만나며 어떤 말이든 해나가야 하기에 '말 공부'를 놓을 순 없다. 단순히 말을 '사용'하는 것만이 학습이 아니다. 말이 갖는 회복의 힘과 파멸의 힘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이 시공간에서는, 말 공부는 '기왕이면'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따지지도 말고' 해야 하는 공부 중 하나겠다.


 

“기억해, 너는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

 


중학교 2학년 작가를 향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바삐 시간을 달려 나에게도 향했다. 당시 ‘극 내향적’이었던 작가가 느꼈던 얼떨떨함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20살 이전까지는 책을 잘 읽지도, 흔한 일기를 쓰지도 않았다. 특별한 계기 없이 불과 1년 만에 책을 유흥거리 삼고 글을 쓰는 게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았으니 삶은 정말 모를 일이다.


많이 읽고 듣는 건 필연적으로 많이 쓰는 것으로 이어지고, 말하는 것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글자가, 그러니까 다른 세상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가만히 움츠려있거나 휘발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온기를 몸 곳곳에 비밀스럽게 남겨놓는다. 그러다 문득 발화 장치를 만나면 온기가 달아올라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말하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뱉음의 시작. 새로운 온기를 가진 존재를 대면할 순간.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순환은 나를 점점 뜨거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느낀다. 내가 아닌 것에도 같이 열을 낼 수 있는 발화점들을 자꾸만 늘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지키는 따뜻한 온기와 불같은 폭발이 된다. 나는 계속해서 열을 유지하는 ‘읽듣쓰말’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칠 뿐이다. 스스로 영악하게 선택적으로 열을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치가 떨릴 때도 많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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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포즈(pause) 즉 ’잠깐 멈춤‘의 중요성이었다. 말의 매력과 집중도를 높이는 것은 이 잠깐 멈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말하기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벅찰 때가 많은 내게 친절히 다가온 개념이다. 작가는 말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멈춤 포인트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나의 눈에 들어온 건 '멈춤'이다. 대화의 기본 속도가 나에겐 1.5배속을 한 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대답을 해야 할 때 시간이 야속하리만큼 빨리 흘러간다. 비단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에서도 그러하다. 결국 의도치 않게 대화에 '잠깐 멈춤'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잠깐 멈춤, 대화하다 생기는 공백을 보통은 참을 수 없어 한다. 공백은 곧 어색한 것, 상황과 관계가 애매하다는 일종의 신호, 누구 하나는 노력해서 극복해야 할 상황이 된다. 물론 뻘쭘할 때도 많지만, 말의 공백이 필요한 사람과 때도 있다는 걸 알면 한결 더 편안하고 매력적인 대화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슬쩍 변론해본다.


앞서 말했듯이 말하기는 가장 예민한 발화기구이기도 하다. 나의 언어가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는 투명한 수정구슬이며 순식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도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 이들에겐 숙고의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대화를 조금이라도 무해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랄까. 물론 말을 내뱉고 소화하는 자체를 오래 하는 이가 있음도 당연하다. 어찌 됐든 말하기를, 말하는 상황을 가꾸려는 노력의 공백을 마주한다면 무심한 듯 편안한 무언의 응시로 그를 채워보심은 어떨까.


 

"이런 침묵은 몇몇 가깝고 특별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한 형태다.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와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의 결과로, 우리 사이에는 실핏줄을 닮은 무언의 통로 같은 것이 생겨나있다."

 


작가가 비슷한 생각을 ‘침묵’에 대입해 쓴 글을 만나서 참 반가웠다. 침묵에 대한 짧은 글은 꼭 모두가 읽어 보기를 바란다. 적절한 침묵을 예리하게 포착한 그의 시선, 이를 예찬하는 수려한 언어는 덤이다.

 

 

"힘들 때 힘을 빼면 힘이 생긴다."

 


작가가 진행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의 이름이다. <힘 빼기의 기술> 이란 책을 쓰기도 한 그는 중요한 일일수록 힘을 뺄 때 일이 원활히 풀린다고 말한다. 그 마법의 주문은 ‘만다꼬’다. ‘뭐한다고’의 경상도 사투리로, ‘뭐한다고 이렇게 애를 쓰냐’는 해탈에 가까운 태도다. 대개 타인의 시선 때문에 원치 않는 힘을 쓰게 되는 상황에서, 힘을 놓고 ‘강약강약’의 리듬을 만들라고 한다. 최선은 쉴 새 없이 달리는 것만은 아니라고.


몸에 밴 습관적 힘주기는 여행지에서 많이 느낀다. 평소 밖을 나가기 전 코디에 흠결이 없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나가서도 유리에 모습이 비칠 때마다 그리 달라지지도 않는 수정을 거듭한다. 말 그대로 힘을 잔뜩 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여행지에선 무장해제다. 오히려 누가 그 공간에 더 적응해서 편안해 보이는지를 겨루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금 헝클어진 머리칼, 편안한 슬리퍼류, 한없이 흘러내린 셔츠는 ‘힙’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감각을 일상으로도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본다. 힘을 줘야 할 때 몰아줘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힘을 주고 있으니 힘을 들여 더 힘을 내기란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선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상대가 어떻게 보이는지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걸 멈춰야 할 것이다. 그 찰나의 판단은 얼마나 얄팍한가. 자기 세상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는 건지. 우리 모두 자만을 좀 거둘 필요가 있다. 결국 각자의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들이니까. 우선 나도 몸에 힘을 뺄 주문을 하나 외워봐야겠다. 참고로 친구가 말해준 주문인데, 조금 겸연쩍지만...

 

‘온↘ 몸을↗ 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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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 각 상황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발화자의 개성보단 으레 그렇게 쓰인다는 관념이 앞선 말하기다. 특히 글을 부지런히 쓰는 지금 공감한 마음이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 매번 얼마나 어휘력이 부족한지, 그런 어휘로 쌓아 올린 글은 얼마나 흥미 부족하고 부실한지 체감한다.


그리하여 의식적으로 전형적임을 벗어나 새로운 단어를 써보거나 다른 상황에서 사용될만한 표현을 적용해보기도 한다. 본능적이든 치열하게 설계해낸 것이든, 그 모험은 자체로 놀이 같으며 글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새로운 표현을 찾기 위해선, 반드시 타인의 언어를 향해 부지런히 몸을 옮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보다 예민한 힘을 기울여야 하는 그 시간이 항상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생각이 몸에 스며들 때 자연스레 나의 말은 생기를 얻고 타인은 이해 타당해진다. 결국 나와 너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내는 보상을 받는 순간, 그 정도 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부지런히 몸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플랫폼에 글을 연재하는 에디터 활동은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말하기다. 이 말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계속 고민한다. 나의 언어를, 여러 존재의 언어를 어떻게 전달할까.


글은 인장과도 같다. 머릿속에서 부유하다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을 얼른 붙잡아 조각하여 나란 종이에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선명하든 그렇지 않든,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든, 한 번 남은 자국은 생각보다 꽤 질기고 뚜렷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그 흔적을 소유했느냐의 차이는 실로 큰 것 같다. 어떤 형태든 글을 계속해서 남기고, 어쨌든 쓰지 않는 것보단 쓰는 게 나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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