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싯다운 코미디 [영화]

페이크 다큐멘터리 <셀럽은 회의 중>(2022)
글 입력 2022.04.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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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끝에도 끝은 있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개그콘서트는 박수가 멎은 다음에야 쓸쓸히 사라졌고, 직장을 잃은 희극인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졌다. 코미디빅리그로 넘어가 공개 코미디의 맥을 잇기도 하고, 다시 돌아온 SNL에서 정치 풍자와 최신 인터넷 밈을 난사하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잠시 주춤했던 희극인들은 새로운 창구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운 웃음을 선보이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개그콘서트 식의 정형화된 콩트를 대체할 다양한 포맷이 주목받았는데, 서구권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스탠드업 코미디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국 정서에 맞게 가공하는 과정에서 그 특색을 많이 잃어버린 탓인지, 다른 콘텐츠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해외 시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개그콘서트 종영 이전부터 유병재, 박나래 등과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정기적으로 선보였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연이은 실패 탓이었을까. 넷플릭스가 이번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대신 새로운 포맷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 4월 1일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코미디 스페셜 <셀럽은 회의 중>은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로 활동 중인 네 명의 코미디언(송은이, 신봉선, 안영미, 김신영)이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셀럽 2.jpg

 

 

어떤 이야기가 넷플릭스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다소 막연한 주제 아래 셀럽파이브 멤버들은 각자 생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열심히 회의 겸 수다를 떤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스탠드업 코미디와 비슷하지만, 오로지 개인의 역량으로 다수의 관객을 휘어잡아야 하는 어려움은 없다. 제작진은 스탠드업 코미디에 스튜디오형 예능 포맷을 적용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층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셀럽파이브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함께 활동한 만큼 멤버들의 합도 굉장히 좋다. 김신영은 특유의 에너지로 쉴 틈 없이 상황극을 벌이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신봉선은 적절한 리액션으로 자연스럽게 대화의 맥을 잇는다. 흐름이 느슨해질 즈음 안영미가 19금 유머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유행에 느린 큰언니 역할을 맡은 송은이가 샌드백을 자처하며 적절하게 흐름을 끊고 새로운 주제를 던진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나름의 형식미가 느껴지는 것은 네 출연자의 환상적인 티키타카 덕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에 집중한 구성은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고자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린 것은 좋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상황을 전제한 것은 조금 아쉽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를 위한 아이디어 회의’라는, 명확한 주제도 없고 그다지 참신하지도 않은 상황을 설정한 탓에 출연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던지는 것 외엔 딱히 없다. 전제가 흥미롭지 않은 탓에 주제는 크게 와닿지 않고, 출연자들의 웃긴 이야기 말고는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도 없다. 결국 출연자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으면 이 맥락 없는 토크를 시청할 동기는 금세 사라지고 만다.

 

설정과 주제가 시청자를 몰입시킬 힘이 부족하면 구성이라도 탄탄해야 하는데, 구성도 지나치게 느슨하고 단조롭다. 다채로운 구성을 위한 시도가 있긴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예컨대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이 어설프게 화상회의를 하는 장면은 구성의 단조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지만, 지나치게 짜인 듯한 전개가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을 해치고 몰입을 방해한다. 역병이 창궐한 지 어언 2년, 누구보다 화상회의가 익숙할 희극인들이 음소거 해제 방법을 몰라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나 19금 개그를 위해 굳이 욕조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상황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셀럽 1.jpg

 

 

그러나 이런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셀럽은 회의 중>은 재미있다. 구성이 이렇고 주제가 저렇더라도, 코미디로서 일단 웃겼다면 나름 성공한 게 아닐까. 페이크 다큐멘터리로서는 조금 아쉬울지 모르지만, 네 사람의 이야기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탓에 웃긴 장면은 꽤 많다. 장례식장에서 웃음 참는 이야기도 인상적이고, 드라마 좀 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법한 넷플릭스 러브씬 이야기는 셀럽파이브 멤버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만 여전히 출연자들의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셀럽은 회의 중>은 기존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의 문제점을 답습한다. 물론 출연자의 역량도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지만, 이는 잘 짜인 판 위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지 맨땅에 헤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빛나는 발상과 함께 탄탄하고 다채로운 구성이 있었다면 정말 좋은 포맷이 되지 않았을까. 일회성으로 끝나기에 이 기획은 너무나도 아쉽다. 제작진이 이 포맷의 가능성을 믿고, 더욱 탄탄한 아이디어와 구성으로 꼭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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