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몸과 친해지기

글 입력 2022.11.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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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에 덴 적이 있다. 나는 무언가를 넣고 우린 물을 좋아해서 항상 물에 보리차나 결명자 등을 넣고 끓여 마셨다. 그날은 비염에 좋다는 말린 작두콩을 넣었다. 물이 끓어올랐을 때 불을 껐다. 더 우릴 겸 식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방으로 돌아오는 동선과 마음상태까지 평소와 다른 건 없었다.  딱 하나 달랐던 것은 조급함이었다. 급한 성미가 좀 있지만, 조심성이나 신중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차근차근했다. 마찬가지로 끓인 물을 물병에 옮겨 담을 때에는 물이 다 식을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 물병의 소재가 내열유리였지만, 유리라는 점 때문에 항상 조심했다. 주전자가 크고 무거워서 국자나 컵으로 물을 떠서 물병에 조심히 담았다.


그런데 그날은 주전자를 힘껏 들어 물병에 물을 따랐다.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물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물을 물병에 집중해서 따르던 중 싱크대 위에 있던 물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물이 쏟아졌다. 주전자의 무게를 못 이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주전자를 물병에 기대면서 물병이 스르륵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유리조각과 물이 흥건했다. 유리에 다치진 않았지만, 뜨거운 물이 왼쪽 다리를 덮쳤다.


나는 얼른 젖은 하의를 제거 후, 다리를 찬물로 식혔다. 순식간에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빨갛게 부어올랐고, 뜨거웠다. 뜨거움을 넘어서서 따갑고 화끈거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을 동반한 뜨거움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찬물로 식혀도 가라앉지 않는 다리를 보면서 공포감이 들었다. 순식간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 흉터 생기면 어떡하지.’, ‘여름에 반바지도 못 입게 되면 어떡하지.’, ‘여자인데, 예쁜 치마도 못 입으면 어떡하지.’, ‘앞으로 이제 어떡하지. 무서워’


그때 시각은 밤 9시~10시쯤이었다. 병원 진료는 끝난 상태라서 다음날까지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쎄~한 기운이 느껴졌다.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절룩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와 입기 쉽고, 치료하기 쉬울 것 같은 무릎까지 오는 기장의 원피스를 입었다. 유리 조각을 한쪽으로 대충 치우고, 찬물에 적신 수건을 챙겼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병원에 일찍 도착하여 치료받으니 공포감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다리 전체를 붕대로 감는 걸 보니 다시 무서워졌다. 다음 날 아침, 붕대를 풀자 마자 다리를 확인했다. 물집은 다행히 허벅지 맨 위쪽에만 있었다. 안도감 든 것도 잠시, 치료가 시작되니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피부가 예민한 탓에 거즈와 반창고를 붙인 곳이 간지럽고, 두드러기처럼 붉게 올라오기까지 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가 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통원 치료를 받기로 해서 집에 있을 때는 소독과 치료를 내가 해야 했다.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안내받고, 소독과 치료에 필요한 것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징그러운 것을 잘 못 보는 편인데 피부가 벗겨진 모습을 봐야 하고, 그 상처에 스스로 손을 대야 한다니.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도 상처를 건드려서 아파 죽겠는데, 그걸 집에서도 겪어야 한다니. 피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몸 챙기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내 상처를 돌보는 건 성가신 일이었다. 소독•치료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득, 붕대를 푼 순간이 떠올랐다. 붕대를 풀자마자 다리가 괜찮은지 확인하던 내 모습, ‘생각보다 크지 않네. 안 보이는 부분에만 생겨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나, ‘보이지 않는 곳이긴 해도 여자 다리에 이게 무슨 일이야.’ 라며 속상해하면서도 안도감을 더 크게 느꼈던 게 생각났다. 허벅지 맨 윗부분이라서 더 위까지 데이지 않아 다행이었으며, 뜨거운 물이 다리 전체를 덮쳤는데도 그 정도인 건 기적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응급실 입구까지 신속하게 데려다주시고 걱정해주신 택시기사님도 감사했고, 혼자 왔냐며 걱정해주시고, 응급실까지 부축해주신 아빠 같은 병원 직원분도 감사했고, 신분증을 안 가져와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속전속결로 치료부터 해주신 의료진분들도 감사했다. 상처가 더 깊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크게 아프거나 다친 곳 없이, 큰 흉터 없이 살아온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내 몸을 잘 보살피고 아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그새 잊고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병원에 전화했다. 통증으로 정신없는 바람에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서 다시 듣기 위함이었다. 전화를 끊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용기 내서 반창고와 거즈를 뗐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했다. 병원에서 안내한 주의사항도 잘 지켰다.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의사의 말도 잘 듣고, 상처를 돌보던 날들은 내 몸에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통원 치료가 끝난 후에도 수분크림과 흉터연고를 바르는 수고가 필요했다. 원래의 나라면 끝났다고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흉터가 옅어질 때까지 그 수고를 기꺼이 했다. 그 결과 흉터가 남지 않았다.


화상치료가 끝남과 동시에 평소보다 잔병치레가 많아졌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일어난다는 말을 실감한 시기였다. 여기저기 아프고, 나이 앞자리까지 바뀌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체중과 체질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내 몸과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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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친해진 후, 가장 큰 변화는 운동이었다. 내 몸과 친해지기 전에는 땀 흘리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운동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운동이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20대 중반에 주변에서 운동한다는 소식이 많이 들리고, 추천하는 사람도 많아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단순 호기심을 해소하기 좋은 며칠 동안 체험할 수 있는 쿠폰을 받아서 PT스튜디오를 잠깐 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인바디를 했는데, 근육은 물론이고 지방까지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생활패턴도 불규칙하고 수면 부족인데, 계속 관리 안 하면 나중에 훅 간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자의로, 호기심이 아닌 관심으로 운동을 시작한 건 큰 변화였다. 처음에는 동네 헬스장에서 그룹 PT와 그룹 필라테스, 자유 운동을 했다. 운 좋게 트레이너를 잘 만나서 그룹 PT인데도 1:1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기초스트레칭부터 단계별로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왕이면 살도 빼자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그 마음보다는 운동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운동과 가까워진 시기였다.


그리고 이사시기와 코로나19 시대가 겹치면서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배운 스트레칭은 집에서 꾸준히 했다. 홈트레이닝을 하려고 인터넷에서 운동영상을 찾아 따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신경도 없고, 재미를 붙인지 얼마 안 된 나한테는 혼자 홈트레이닝을 하는 건 무리였다. 더구나 목과 허리 건강이 다시 안 좋아져서 결국 다시 운동을 배우러 다니기로 했다.


종일 앉아있는 편이고, 목 통증과 엉치 통증으로 불편한 점이 많아서 기구 필라테스에 도전했다.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 동네 헬스장에서 해본 매트 필라테스와 너무 달라서 당황했었다. 온 몸이 사방으로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운동 후 개운한 정도가 올라갔다.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펴지는 느낌이 들고,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이 얼마나 많이 움츠려져 있었는지 체감했다. 굳어 있는 부위가 어디이며, 몸 곳곳에 남은 생활습관의 흔적을 마주했다. 필라테스는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줬고, 운동의 필요성을 알려줬다.


두 번째 변화는 병원에 잘 가는 것이었다. 위장 관련이 아니면,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약국에서 사 온 약으로 버티거나 시간에 맡겼다. 감기에 걸리면 꼭 열이 나는데도 물수건으로 버텼다. 그러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병원에 갔다.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이었고, 주변 상황이었다. 내 몸과 친해진 후에는 병원에 잘 갔다. 그렇다고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에 간 건 아니었고, 일단 지켜본 후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병원에 갔다. 전처럼 오랫동안 버티지 않았다.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제때 받아서 회복도 전보다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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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변화는 영양제에 관심이 생겼다. 평소 먹는 음식이 어떤지, 부족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신경 쓰게 됐다. 알약을 잘 못 삼켜서 작은 알약이나 가루 또는 젤리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섭취했다.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며 필요한 영양제를 꾸준히 챙겨 먹었다.


네 번째 변화는 음식이다. 혼자 산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잘 차려 먹는 것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었다. 특히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는 냉장고에 있는 것을 그대로 차려 먹는 것조차 귀찮았다. 상을 치우는 것도 귀찮고, 설거지는 더 하기 싫어서 최대한 치우기 쉽고, 설거지양이 적은 메뉴를 골랐다. 심지어 먹을 것을 사는 것도 아까워해서 냉장고에는 김치와 계란, 김만 있었다. 과일을 좋아하는데도 먹지 않았다. 어쩌다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할 때면 폭식했다. 원래도 많이 먹는데, 폭식까지 하니 항상 속은 더부룩했다. 어릴 때부터 신경성 위염이 있는데도 관리 안 하고,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밥 먹듯이 위경련이 일어났다.


내 몸과 친해진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제외하고, 귀찮더라도 대부분 잘 챙겨 먹었다. 물, 김치, 계란, 김만 있었던 냉장고 속은 (여름은 제외) 과일, 다양한 반찬, 요거트, 야채, 냉동 블루베리, 견과류, 간식거리, 과일주스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사 후 커진 냉장고도 한몫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체구와 약한 위장에 비해 많이 먹는 편이라서 과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건 지키기 어려워서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됐다. 나는 정신, 육체적으로 한계가 오면 건강에 나타나는 편이다. 영양소 결핍정도가 심각해도 잘 드러난다. 그래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들으면 요즘 내가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빨리 눈치챌 수 있으며, 현재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덤으로 마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은 내 몸을 아끼고 챙기는 것을 게을리하고 있다. 대충 먹는 날과 까먹고 영양제를 안 먹는 날이 많아졌고, 운동도 잘 안 한다. 산책하면서 걷기 운동하는 것과 과일 챙겨 먹는 것만 잘 지키고 있다. 점점 내 몸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불현듯 화상 입었던 때가 생각나면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왜 그랬던 걸까.

사람은 그럴 때도 있으니까, 단순히 그 이유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게을리 하고 있었다. 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살피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예전에 했던 내 다짐을 되새기기 위해 이 글을 써 내려갔다.


반성은 충분히 했으니, 행동으로 옮길 때다. 그래서 다시 내 몸과 친해지는 중이며, 나 자신을 사랑하기도 다시 시작했다.


주변을 보면 자기 몸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혹 그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본인의 건강은 안녕한지 살폈으면 한다. 자기 몸과 친해지면서 자신을 사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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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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