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이유,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영화]

감시당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글 입력 2022.04.03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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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살벌한 감시 체계를 보여줬던 1998년 액션 스릴러 명작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최첨단 감시 장비를 소재로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를 보여줬던 작품이다.


영화는 얼떨결에 국회의장의 살해 장면이 담긴 CCTV 녹화본을 갖게 된 변호사 로버트(윌 스미스 분)가 NSA의 추적을 피해 고전하는 내용이다. 휴대전화, 만년필, 구두, 바지 등 온몸에 부착된 전자 발신 장치와 전화선 도청은 물론, 첩보위성을 해킹해 대인 감시정보망을 획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로버트가 방문한 가게의 CCTV를 3D 시뮬레이션 해 그의 바지 주머니 속 볼록 튀어나온 양감(CCTV 파일)을 확인하는 부분이 압도적이다.


21세기에 입장하기 전 최첨단 장비에 대한 무제한적 상상력을 그린 영화는 많았다. 허황될 정도로 압도적인 기술들, 예를 들어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007 시리즈>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터넷만 접속된다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길거리 CCTV는 물론 개인의 휴대전화까지 감시자의 눈으로 작동된다.


실존하는 국가기관과 약간의 기술력 상승을 보탠 디지털 장비들. 타 영화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설정을 그렸음에도 이상하게 이 영화엔 쾌감보다 공포감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곧 무력감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첩보/범죄/액션/스릴러이면서 호러와 같은 섬뜩함이 따라오는 이유는 뭘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2분여의 타이틀시퀀스 만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주인공 로버트의 동선을 감시 카메라 화면으로 보여준다. 여기엔 ‘감시’의 3가지 요소가 모두 등장하는데, 감시를 ‘당하는 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자’, 그리고 감시의 ‘도구’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국방부의 본부인 펜타곤을 보여주고, CCTV 카메라와 위성을 직접적으로 내비춘다. 특히 수십 대의 CCTV 화면을 앞에 두고 감시를 업으로 삼는 감시요원의 방을 보여준다. 영화와 상관없는 일반인들의 영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강도 범죄와 경찰의 연행 장면이 뒤섞여 있다.

 

국가기관에서,

감시 카메라를 이용해,

누군가를 추적하는 영화라는 것을 미리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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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에서 관객을 동화시키는 주력 감정은 ‘무력감’과 ‘섬뜩함’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의 시선을 피해갈 순 없다. 감시체계의 확장성을 보여준 첫 추격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국가 안보국은 증거를 가진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작전에 돌입한다. 신상정보 파악과 전화 녹취, 통신 중단 등 주변 환경 제어에서 시작된 감시는 그가 범위를 이탈하면서 점점 치밀해진다. 그가 스쳐간 모든 거리의 CCTV를 확인하는 건 물론 우주의 인공위성을 활용해 기어코 그의 위치를 차아낸다.

 

이때 어딘가로 ‘숨으면’ 될 것이란 일반적인 예상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악에 대응하는 주인공에 이입하고 있던 관객들은 다니엘과 같은 심정으로 어디론가 숨고자 하지만, 도망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점점 고도화되는 감시의 단계를 통해 좌절된다. 결국 누군가는 탈출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민간인은 정부에 절대로 맞대응 할 수 없고 결코 숨을 수도 없다는 현실을 체감하며, ‘거대(정부)’에 대한 ‘소(민간인)’의 막연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 이것은 ‘섬뜩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영화 속 상황은 우리 일상에서도 언제든 일촉즉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딜 가든 설치되어 있는 CCTV의 ‘안전’에 대한 인식을 ‘감시’에 관한 것으로 비틀어 버린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우리 주위의 카메라 렌즈는 모두 타인의 ‘시선’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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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인지는 곧 화면으로도 이어진다. 영화 3분의 2 지점 중 로버트가 조력자 브릴을 찾아가 함께 차에 탑승하는 장면(1:23:30 부근)이 있다. 짜증을 내던 브릴은 도로변에 로버트를 내리게 하지만 곧 다시 되돌아가 그를 탑승시키며 계속 동행할 것을 권한다.

 

이 때 화면은 두 사람의 표정이 중심이 된 클로즈업과 고가도로 전체가 보이는 풀샷을 교차시킨다. 두 샷은 개연성 없이 튄다. 주인공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풀샷는 이전에 나왔던 감시의 시선과 비슷해 보인다.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화면은 어떤 감시자가 이미 그들의 위치를 파악했노라고, 이번에도 잡히고 말았노라고 느끼게 한다. ‘과연 저들이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긴장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우습게도 로버트와 브릴은 무사히 기지에 도착한다. 중간에 공격한 적들은 없었다. 한 마디로, 그 풀샷은 아무 의미 없는 평범한 컷이었다. 다만 이제 관객은 일상적인 샷을 보고도 불길하고 위험한 징조를 느낀다. 감시의 시선의 존재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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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의 등장시기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수 있다. 개봉년도인 1998년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화 되기 시작하고 기술의 고도성장을 이루며 일반인들에게도 ‘디지털화’가 확연히 가까워지던 시기였다. 특정 전문분야를 넘어 일상에까지 확장, 혹은 침투·침범하고 있는 ‘기계’를 체감하고 있던 때였던 것이다. 21세기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혼재하던 20세기 끄트머리에 적절히 등장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적절함’이란 기계에 대한 호기심과 의심을 유발하기에 적절했다는 뜻이다. 영화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이념은 바로 ‘국가에 대한 의심’이다. 언제나 날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거대기관이 개인을 배신하거나, 은연 중 서려있던 불신이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권력과 힘의 크기가 기술의 수준과 비례되던 시기에, 가장 최고 수준 기술을 가진 국가에 어려 있던 막연한 두려움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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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기술을 선점한 자가 획득할 수 있는 감시 권력을 보여준다. 일상의 모든 것이 감시 체계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관객에게 남은 건 묘한 섬뜩함과 공포감, 그럼에도 도망칠 수 없을 거란 무력감이다.

 

디지털 기술이 정점에 오른 2022년, 특히 그것을 사용하는 일상 수준이 대폭 상향평준화된 지금.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게 훨씬 많아졌다. 우린 지금 얼마나 많은 감시를 당하고 있을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Enemy of the State>, 토니 스콧, 199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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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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