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개띠랑 작가

글 입력 2022.03.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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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20대가 겪는 비극 중 하나는 취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붓다가 막상 취업이 되서 일을 시작하면 퇴사를 꿈꾸게 되는 것일 테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미생>의 대사는 일단 들어갔으면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으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지옥과 전쟁터는 결이 조금 다르다. 전쟁터의 고통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면, 지옥은 비교적 막연하다고나 할까. 회사 밖이 지옥이라는 말은 그 길을 가본 사람이 적기 때문에 풍문으로 들려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지옥과 전쟁터를 비교해 전쟁터가 더 나으니 머물자는 결론은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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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이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책을 낸 작가 ‘개띠랑’도 ‘지옥’으로 한 발을 내디뎌본 사람이다. 남들보다 빨리 취업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경력을 쌓던 작가는 5년간의 회사 생활 끝에 스스로가 완전히 소진되었음을 느끼고 돌연 빵집 아르바이트생이 되길 택한다. 누군가는 지옥이라 부르는 회사 바깥에서 3년을 보내며 그는 좋아하는 일을 발견했고 더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세상이 끝장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개띠랑 작가처럼 회사 바깥에서 또 다른 길을 찾으려는 시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시대정신과 같았던 ‘존버’는 최근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직장 내 과로사나 직장 내 괴롭힘 소식 속에서 점점 색이 바래는 것처럼 보인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고, 본업 외에 사이드프로젝트를 하며 독립을 꿈꾸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회사 이름으로 자신의 일을 정의하기 힘들다 생각하는 이들은 스스로 일에 이름을 붙인다.


지난 24일, 회사원에서 빵집 알바생을 거쳐 이제는 ‘디지털 크리에이터’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게 된 작가 개띠랑 님을 만났다.

 

 

 

회사를 버리고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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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을 쓴 ‘개띠랑’입니다. 제가 94년생 개띠인데요, 제 또래의 사람들과 ‘개띠’인 제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필명을 ‘개띠와 함께’라는 뜻의 ‘개띠랑’이라고 지었어요. 인스타그램에 일상툰을 연재하다가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에는 말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시고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시며 들었던 생각들, 경험한 일상들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도 빵집에 계시나요? 근황을 알려주세요.


5년간의 회사 생활을 끝낸 후 빵집 아르바이트를 3년 가까이 했고, 지금은 그만둔 상태예요. 퇴사 후 생긴 제 목표는 일러스트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거든요. 지난 3년간 빵집 일과 그림을 병행했다면, 이제는 그림만 그리며 사는 삶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에요.


회사를 그만두시고 이직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빵집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길을 택한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했던 선택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두 회사를 거치며 너무 지친 상태였어요. 그러다 보니 첫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이직을 했지만,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둘 때는 다른 회사로 간다는 선택지는 아예 배제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회사로 간다고 해도 제가 퇴사를 결심하게 했던 일들이 반복될 것 같았어요. 아르바이트는 좀 다른 길을 뚫어보고자 선택하게 된 거예요. 저는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회사와 달리 아르바이트는 필요 이상으로 일에 나를 쏟아붓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여러모로 회사 생활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회사 생활과 크게 다르지도 않더라고요(웃음)


방송디자인 업계에 계시다가 아예 다른 분야인 빵집으로 오셨으니 적응하는 데 시간도 걸렸을 것 같고, 일할 때 다른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빵집에서 일하시며 회사에서 배우지 못했던 무언가를 배웠다면 소개해주세요!


5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사람은 충분히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빵집에서 일하다 보니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사람 대하는 법을 더 많이 배웠습니다. 사장님 같은 경우도 제가 회사에서는 한 번도 못 만나본 스타일의 상사였는데, 좋으신 분이었어요. 3년이나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책에도 나와 있는데, 아르바이트 첫날이자 가게 개업날 만났던 손님이 기억에 남아요. 잔뜩 긴장해 있었는데 그분이 오셔서 개업날 시식빵이 왜 없냐며 호통을 치셨어요. 대처할 줄도 몰라서 우왕좌왕했지요. 그분이 2년 후에 또 오셔서 호통을 쳤는데 그때는 적응이 되어서 좀 더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었어요.

 

 


일,일,일 이게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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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eddirang

 

 

명함에 ‘디지털 크리에이터’라고 적혀 있습니다. 명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칭은 아닌 것 같아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하는 일을 정의하려다 보니 어려웠어요. 책을 냈으니까 작가라는 호칭이 생겼지만 작가 말고도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그걸 다 아우를 수 있는 단어를 생각하다가, ‘종합예술인’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그림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를 해보자는 마음에 ‘디지털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써봤어요.


사람마다 일에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 모두 다른데요, 작가님의 경우 일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빵집에서 일하시는 동안 그게 충족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제 개인의 삶이 보장되었으면 하는 게 컸어요. 제때 출근하고 제때 퇴근하는 거요. 회사를 다녀보면 ‘칼퇴’를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으니까요. 아르바이트는 정해진 시간만 채우면 되니까 그런 면에서 회사보다는 제 삶이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아르바이트도 항상 칼퇴가 가능한 건 아니더라고요. 제가 10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거였는데 뒷사람이 늦게 오면 저도 좀 더 일을 하게 되고,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손님이 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하시면서 인스타그램에 그림도 꾸준히 그리셨는데요, 그림을 그리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퇴사 후 다시 회사에 들어갈 자신은 없고, 굉장히 막막해하던 중에 친언니가 예전부터 제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니,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고... 빵집에서 겪었던 일을 하나 둘 그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자신의 일상을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3년 동안이나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도 원래 인터넷상에 저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겁도 나고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려서 올리니까 공감해주시는 분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분들 덕분에 용기를 내서 계속 그릴 수 있습니다.


작가님 말씀을 듣다 보면 지금까지 두 개의 회사와 빵집을 거쳐온 시간이 결국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그걸 하며 살아가기 위해 걸어온 길처럼 보이기도 해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걸 좋아하기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작가님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회사에 다닐 때는 좋아하는 게 일이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렇게 힘들었던 회사도 제가 하고 싶었던 영상디자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 들어간 거였거든요. 기대와 달리 막상 일을 해보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고, 압박감도 심했죠. 그래도 내가 좋아서 택한 거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생각도 잘 못 했죠.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때서야 참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난 3년간 가까운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마음의 짐을 더는 방법을 배웠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간다면, 좋아하는 일도 꾸준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은 들어요.

 

 


퇴사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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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eddirang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순간 순간 불안함이 밀려오곤 하는데요, 작가님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고 계신가요?


저도 책에서는 자신만의 속도에 맞게 살아가자고 써놓았지만, 사실은 아직도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어요.(웃음) 그럴 때마다 제 책을 보면서 ‘나 이렇게 하기로 했지’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요. 이렇게 눈이 보이는 결과물로 생각을 한 번 정리해놓으니 제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직장인이나 알바생이나 스트레스 받는 건 크게 다를 것 없다는 대목(파트 ‘퇴근’)을 보며 ‘이게 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잘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잘 산다는 건, 제 행복과 직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각자가 정의하는 행복과 그 기준이 모두 다르지만, 밤에 잠들 때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회사에 다닐 때는 너무 찌들어 있어서 그런 생각으로 잠든 적이 별로 없어요.


과거의 중요한 시점(입사, 퇴사, 이직 등등)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까요? 과거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요?


과거로 돌아가도 저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취업 때문에 불안할 때는 회사에 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어쨌든 회사에서 배운 게 많고, 그걸 바탕으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기도 하니까요. 물론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때의 제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두 번째 회사를 그만뒀을 때는 다른 회사를 가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너무 커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선택지는 전혀 없었어요.


회사를 나오실 때 말리는 사람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일하는 사람은 나니까 내 생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는 항상 쫄아 있었고 일을 하며 ‘재밌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근데 그림을 그리면서는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어요.


앞으로 작가님이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아주 소소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작가님이 꿈꾸는 미래가 궁금합니다.


일단 올해의 목표는 그림으로 번 돈으로 작업실을 구해보는 거예요. 더 멀리 본다면, 그림 그리는 게 주업이 되는 걸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빵집을 그만두고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하고 있어요. 일단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은 빵집투어를 다녀와 그림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영상은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으니 한번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집어 들 독자는 대부분 퇴사를 고민하는 회사원이거나, 회사를 나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일 것 같아요. 이들에게 ‘퇴사 선배’로서 건네고픈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유독 우리나라는 나이대마다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들이 뚜렷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속도가 자신의 속도와 맞지 않는다면 좀 내려놓아도 된다고,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졸업도 취업도 바로바로 하며 빠르게 달려본 사람인데, 막상 내려놓아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인스타그램에 일상툰을 연재하다가 이렇게 책도 내고 인터뷰도 하게 된 게 정말 신기해요. 책에는 인스타그램에 연재된 내용만 있는 게 아니라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면서 ‘이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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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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