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스와타리 소설론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3.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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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로 쿠로스케 썩 나와-라↗! 마쿠로 쿠로스케 썩 나와-라↗!

 

언젠가 미야자키 하야오 작가의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위의 문장은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이사 온 자매 메이와 사츠키가 낡은 집 곳곳을 누비며 하는 의식과 같은 행위로, 집 안에 숨어있는 ‘검댕 귀신(마쿠로 쿠로스케)’을 쫓아내기 위해 외치는 말이다. 또한 마쿠로 쿠로스케는 하야오 작가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스스와타리’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아무튼 이 스스와타리는 재에서 태어나고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가 그 집을 독차지해 먼지를 만들며, 방구석과 벽 틈새에서 주로 활동하는 귀여운 먼지 요정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스스와타리를 왜 소개하느냐. 나는 오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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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스와타리(검댕 귀신)

 

 

  

소설은 쓰레기 속에서 탄생하는 것


 

소설은 스스와타리처럼 검은 먼지덩이 혹은 쓰레기 속에서 탄생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스스와타리 혹은 쓰레기’는 정말 일상에서의 생활쓰레기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과 경험의 스스와타리를 말한다.

 

소설이 더 이상 새로운(novel) 것으로서 받아들여지는 때는 지났다. 정말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우리는 새로운 것,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찾아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가장 먼저 우리 안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혹여나 그 속에 우리가 놓쳤던 귀중한 원석이 있지는 않은가 하고. 소설이 쓸모 있는 이야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내면의 스스와타리를 수십 번이고 들쑤시고 헤집어 꽤 괜찮은 경험의 원석을 발견하고 나서의 문제다. 그 원석을 찾기만 한다면 차후의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그 원석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세공해 매끈한 보석으로 세상에 내놓으면 되는 것이다. 모두들 자신만의 원석을 찾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세공의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1단계 : 원석을 준비하기


그 첫 번째는 돌의 준비 과정이다. 적절한 원석을 골랐다면 세공사는 본격적인 세공을 하기 전, 돌에 갈라진 선은 없는지, 세공하기에 어려운 단단한 부분은 없는지 살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는 돌 대신 ‘인물’을 준비한다.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나만 고르라면 ‘인물’이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돌의 준비 과정’은 소설가가 인물을 살펴보는 작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소설가는 인물이 처음부터 매력적이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그런 인물은 과감하게 빼버린다. 특수한 공간에 특수한 인물이 나오는 소설은 만들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건 보통 사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인물로 두고, 눈에 띄지 않는 인간의 당연한 감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소설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모든 것이 충족되어있는 완벽한 인물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단편 소설 『범죄자』에 등장하는 레베카와 같은 불완전한 인물에 호감을 느끼고 응원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응원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적절한 인물을 데리고 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2단계 : 원석의 모양 잡기


그 다음은 원석을 갈고 닦는 연마의 단계이다. 소설의 경우에는 인물의 행위와 그 동기를 만들어주는 공간과 플롯을 가져와 배치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공간은 인물의 동선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요소로, 보통 이 공간이 주어지면 소설도 저절로 쓰일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공간은 인물의 상황이나 무의식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자연부터 인물이 상주하고 있는 집과 같은 공간에서, 그 공간을 이루는 개인의 사물들, 오브제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 공간에 어떤 오브제들을 둘지 어떤 동선을 만들지 고민하고 그 길을 갈고 닦아야 한다. 또한 플롯은 갈등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긴장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건의 배치와 배열, 인과성에 유의하여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고민하며 우리는 원석을 어느 모양으로 만들지 연마해야 한다.

 

 

3단계 : 원석을 빛내기


마지막은 광택의 과정이다. 인물은 물론이고 인물이 어느 행동을 할지, 그래서 어떤 인과성을 가지고 어떤 사건을 겪을 것인지를 정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어느 부분을 힘주어 빛낼지 정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그것이 바로 시점이다. 우리가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구에게 말할 것인지, 이야기 속 누구에게 목소리를 내게 할 것인지는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원석을 정하고 모양까지 만들어 뒀는데, 이것을 어설프게 혹은 모양에 맞지 않게 엉뚱한 곳을 힘주어 빛나게 했다가는 보석이 아니라 그저 어느 한 부분이 빛나는 조약돌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야기를 구상한 후 본능적으로 선택해버린 시점 때문에 다른 시점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려서는 안 된다. 최은미 소설의 『라라네』에서처럼 라라가 아니면 절대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시점을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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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중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다이아몬드는 가공면이 많을수록 빛의 투과율이 높아져 더 많은 빛을 산란시키고 더욱 반짝이게 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공사의 아주 정교하고 심혈을 기울인 노력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작업은 아주 정교하고 세심해 자칫해 어느 한 가지라도 놓치게 되면 그 세계는 너무나도 쉽게 구멍을 드러내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가(인물),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인가(공간), 언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인물은 왜 그런 행위를 하는가의 답을 얻은 뒤 세공을 해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소설이 진정한 이야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아주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우리가 쥐고 있는 돌은 과연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한 가치 있는 원석이 맞는지, 우리는 정말로 우리 내면의 감정과 경험의 쓰레기 더미를 수십 번이고 헤쳐 빛날 수 있는 돌을 찾은 것인지에 대하여. 누군가 내게 ‘너는 그런 원석을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음. 아직도 찾는 중이다. 그러니 나도 다시 한번 외쳐본다. ‘마쿠로 쿠로스케 썩 나와-라!’하고. 아주 오래되어 미처 잊고 있었던, 눈길이 닿지 않은 틈새에서 스스와타리가 숨어 있다가 턱 하니 귀중한 원석을 안고 나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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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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