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피엔딩, 그 이후의 이야기 [영화]

문이 열려있으면 '룸'이 아니야
글 입력 2022.03.2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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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감금을 다루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우리는 영화가 전개되는 방식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주인공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납치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그가 겪는 일들이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탈출은 존재하지 않는다. 탈출에 실패해 더 큰 위기에 부딪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이겨내고 어두운 방 밖으로 나와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페이드 아웃.


여기까지가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탈출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의 미래는 어떨까? 잃어버렸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 있을까? 끔찍했던 경험을 뒤로하고 앞만 보고 걸어가면, 다 없던 일이 되는가? 보통의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는, 그래서 더 간절한 해피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룸, Room


 

침대와 화장실의 구분조차 없는 작은 ‘룸’에서 엄마 ‘조이’와 아들 ‘잭’이 살고 있다. ‘Good morning, sink.’, ‘Good morning wardrobe’, ‘Good morning, TV’, 아침이 오면 잭은 방 곳곳에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한다. 5번째 생일을 맞이한 잭의 세상에는 엄마와 방 안의 사물만이 존재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바깥세상에 나가 본 적 없는 잭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작은 천창 아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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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잭은 그들을 가두고 있는 벽의 반대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집, 가족, 강아지, 새를 비롯해 우리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말이다. 가로 X 세로 3.5m의 작은 방만이 잭의 세상이고 그 밖은 우주와도 같은 미지의 공간이다.


조이는 7년 전, 집에 아픈 강아지가 있다는 남자를 따라가 지금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17살의 육상선수였던 조이는 24살에 5살 아들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치료받지 못한 어금니가 빠지고 오래전 세게 붙잡혔던 손목은 낫지 않는다. 잭에게는 최선의 것을 주고, 자신을 납치했던 남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좁은 방의 한계를 깨달은 조이는 잭에게 진짜 세상을 가르치기 위해 탈출을 결심한다.

 

잭과 조이가 탈출하는 과정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언급하지 않겠다. 그들이 ‘룸’을 탈출했을 때부터가 영화의 진정한 시작이다. 달리는 트럭 위에서 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을 만난다.

 

자르지 못하고 기른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 나무에서 떨어져 색이 변한 나뭇잎, TV 속에서만 봤던 사람들과 강아지, 작은 사각형의 하늘이 아닌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 이 모든 것을 보는 잭의 눈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두려움, 새로움, 설렘, 불안감이 모두 섞인 그 눈동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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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Room. 공감과 연대의 힘


 

사회로 돌아온 잭과 조이는 적응하기 위해 애쓰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조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잭은 너무 많은 소리와 사람에 불안해한다. 이제 그들을 가두던 ‘룸’은 없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과 변해버린 일상은 또 다른 ‘룸’이 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이 말했던 것처럼 문이 열려있으면 '룸'이 아니다. 삶을 살아갈 의욕을 잃었던 조이가 ‘Goodbye, Room’이라고 인사하며 과거를 보내줄 수 있었던 이유, 열린 문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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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샘’이라고 믿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병원에 있는 조이에게 보냈던 잭. 머리카락에 담긴 연대의 의미가 마음을 울린다. 가벼운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 관심이 아니라 묵묵하고 조용한 응원이 필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룸 안에서 상상해왔던 강아지를 만나고, 뒷마당의 해먹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그들이 나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그려낸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콘텐츠


 

영화 ‘룸’이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가해자의 시선에서 피해자를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죄를 다룬 콘텐츠를 접할 때면 미디어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까지 다양한 콘텐츠에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가해자가 등장하고 인기를 끄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만들어주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많은 콘텐츠에서 범죄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 과정을 자세히 담아내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모습과 그에 따른 피해자의 모습까지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런 것만이 범죄를 묘사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그저 픽션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픽션이 아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해자의 이야기가 아닌, 더 깊은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룸’이 그려낸 조이와 잭처럼 피해자를 ‘피해자’로 규정짓지 않고 그들의 삶을 그려내는 콘텐츠를 소비해야 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콘텐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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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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