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박쥐 스프와 개구리 다리를 권하는 책,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도서]

꼭 먹어보고 싶은 것 vs. 이건 좀...! 싶은 것들 리스트
글 입력 2022.03.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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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음식의 세계지도이며 방대한 도서관이다. 5대륙 155개국에서 골라 모은 ‘700가지’의 맛들이 담겨 있다. 만찬의 나라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론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까지 접하기 어려웠던 나라의 음식들을 소개한다. 음식의 기원과 특징, 생생한 맛 묘사까지 꽉 차있는 건 필수다.


 

- 지역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 음식 이름

- 나라

- 종류 (과일과 채소, 육류, 해산물, 향신료, 음료, 디저트 등)

- 맛봤음(TASTED) □

- 음식 서술 (역사, 기원, 문화, 조리법, 맛 묘사 등)

 

 

책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비슷한 요리 유산을 공유하는 지역끼리 한데 묶고, 거기서 다시 나라별로 세부 분류한다. 음식 이름 옆엔 음식의 종류가 있고, 작은 체크리스트가 있다. ‘맛봤음(TASTED)□’의 네모 빈칸을 채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본문이라 할 수 있는 음식 서술엔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있다. 당근은 원래 보라색이었는데 네덜란드 독립 영웅을 기리는 의미에서 주황색이 됐다든가, 터키시 딜라이트는 원래 궁전에서 개발된 인후통 약이었다든가 하는 내용이다. 요리의 역사와 식문화에 대한 재밌고 폭넓은 지식이 가득하다.

 

*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자신만의 투두리스트, 혹은 먹킷리스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을 얼마나 잘 읽었는지 증명하는 건, 얼마나 많은 투두리스트가 생겼는지 세어보는 것 아닐까?


반대로 아무리 맛깔난 맛 묘사가 적혀있더라도 이건 절대...! 싶은 리스트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박쥐 스프나 개구리 다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도저히 시도해볼 수 없을 것 같은, 그만큼 더 신기하고 독특한 음식들이 있다.


그래서 여기 음식에 대한 내 투두리스트(to-do list)와 낫투두리스트(not to-do list) 몇 개를 공개한다. 이건 꼭 먹어 보겠어!와 이건 좀 절대..!에 대한 목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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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꼭! “시드르 꿀 Sidr Honey"

예멘 / 향신료와 양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꿀이자 가장 비싼 꿀이다. 시드르나무는 예멘 동부가 원산지로 건조한 지역에서 자란다. 시드르 꿀은 지금도 45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개발한 양봉 기술을 고수한다.

 

호박색을 띄며 옅은 캐러멜 맛이 난다. 다른 꿀보다 수분이 적어서(일반 꿀은 18%이나 시드르 꿀은 11~14%) 질감이 독특하며 걸쭉한 편이다.

 

 

토종꿀 퍼먹는 걸 좋아한다. 가끔 한 수저 씩 떠먹으면 싸아악 몸이 풀린다. 책엔 크레타 꿀이나 사탕수수, 마스코바도와 같은 다른 종류의 천연 당이 있었지만, 시드르 꿀만의 ‘수분 적은 질감’이 식욕을 자극했다.


 

이건 꼭! "양모과 Medlar"

아르메니아 / 과일과 채소

 

썩은 과일을 먹는다? 입맛이 뚝 떨어지는 소리로 들리지만 실제 양모과는 썩혀서 먹는 과일이다.

 

떫은맛이 너무 강해서 생과일로는 먹을 수 없으며 블렛팅(bletting)이라 불리는 과정을 거쳐야 식용 가능하게 된다. 열매를 따서 짚에 먼저 약 2주 정도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딱딱한 흰색 과육이 부드러운 갈색으로 바뀌며 사과 소스와 밤 페이스트를 섞은 듯한 맛이 나게 된다.

 

 

과일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아무 조리 없이 어떻게 자연 상태 그대로 그렇게 새콤달콤한 맛을 갖고 있는 건지! 보통 과일은 싱싱한 것을 바로 먹거나, 얼리거나, 건조해서 먹지만(익히는 건 안 된다) 썩히는 건 또 처음이다. 썩힐수록 더 풍성한 맛을 낼 수 있다니, 대체 사과 소스와 밤 페이스트 맛이 나는 모과는 어떤 맛인 건지!

 

 

이건 꼭! "가젤의 뿔 Gazelle Horns"

모로코 / 디저트

 

작은 초승달 모양으로 굽는 북아프리카식 쿠키다. 아몬드 페이스트로 속을 채우고 등화수로 맛을 냈으며, 얇은 크러스트를 입혔다.

 

 

이젠 하다하다 뿔까지 먹는군... 거북이 손과 골수도 먹는데 뭔들 못 먹겠는가... 하던 찰나 귀여운 설명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아몬드 페이스트로 속을 채운 쿠키라니! 아프리카 음식엔 늘 미지의 호기심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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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제비집"

중국 / 육류

 

희귀하고 비싼 식재료로 중국에서 수 세기에 걸쳐 귀한 대접을 받았다. 금빛제비가 타액을 응고시켜 만든 둥지이며, 쌀국수 면처럼 가는 건조 섬유로 이루어져 있다. 밋밋한 해초처럼 맛이 아주 가벼운 편이며 익히면 젤라틴 같은 질감이 된다.

 

  

숟가락은커녕 가족끼리 컵 공유도 하지 않는 나에게, 누군가의 타액을 비싼 돈 주고 먹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건 좀..! "박쥐 스프 Bat Soup"

괌, 팔라우 / 전통 음식

 

식용할 수 있는 박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수프 재료로는 무게가 최대 500그램까지 나가는 마리아나과일박쥐의 인기가 높다.

 

우선 박쥐를 양파와 마늘, 생강을 만든 향긋한 국물에 통째로 삶아야 한다. 익으면 건져서 날개와 대가리, 꼬리, 껍질과 내장을 제거한다. 그리고 살점만 발라내서 다시 국물에 넣는다. 흔히 코코넛 밀크를 첨가하고 다진 실파를 고명으로 뿌려서 먹는다. 남아메리카의 식용 설치류와 비슷한 맛이 난다. 서양 육류 중에서는 메추라기와 가깝다.

 

 

박쥐는 풍부한 살점을 기대할 수 있는 고기가 아닌 듯 보인다. 살보단 가느다란 뼈와 연골이 더 도드라진다. 특히 바이러스의 살아있는 숙주라는 점에서 정서상 꺼려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양고기, 말고기, 낙타고기처럼 박쥐고기는 어떤 향이 날지 궁금한 부분도 있다!

 

 

이건 좀..! "개구리 다리

프랑스 / 해산물

 

프랑스는 1인당 개구리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다. 교회의 규칙에 따라 금식과 금육을 지키던 중세 시대에도 개구리는 금육일에는 먹을 수 없는 육류로 분류되었을 만큼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개구리 다리는 흰색 민물 생선과 닭고기 사이의 맛이 난다. 보통 밀가루를 얇게 입힌 다음 기름에 튀겨서 마늘과 파슬리로 양념해 먹는다. 손으로 잡고 먹는 편인데, 작은 뼈가 많아서 다른 방식으로는 먹기 힘들다.

 

 

파충류를 질색한다. 특히 작은 뼈가 많다는 부분에서 경악할 뻔 하기도 했다. 프랑스인의 달팽이 사랑은... 그래도 양호했던 건가? 미끄러운 질감을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프랑스인들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저건 어떤 맛으로 먹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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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 상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각해지는 요리들이 많았으나,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을 도전한 저자의 ‘용기’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꺼리는 데에는 개인의 취향과 문화적 배경이 함께 작용한다. 늘 뜨거운 감자로 다뤄지는 개고기마저 서양인에겐 ‘역겹고disgusting’ ‘잔인한’ 일이었지만, 먹을 게 없던 우리 조상들에겐 귀한 단백질 보충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제각기 나름의 문화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포용하고 직접 체험하는 것 또 다른 일이다. 파리에서 나고 자란 서양인이 한국의 홍어를 먹어보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에 서렸을 모험과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당장 글만 읽어도 못 먹겠다는 음식이 한가득인 내가 보기엔 너무나 대담한 사람인 것이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먼 나라의 낯선 요리를 상상하며 나만의 투두리스트를 만드는 것(물론 낫투두리스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저자의 도전정신을 선행 삼아 나 또한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는 것.


낯선 것을 입술에 갖다 대고, 혀로 맛보고, 이로 씹고, 결국 내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맛깔난’ 글 솜씨로 우리 안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책,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였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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