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는 누구일까요?

글 입력 2022.03.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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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자기소개의 달이다.

 

8살 이후로 학교를 벗어나 본 적 없는 나는 매해 3월만 되면 새 교실, 새 친구들 앞에 떠밀려 쭈뼛쭈뼛 자기소개를 해왔다. 적잖이 긴 시간이 흘렀고 난 이제 경력 20년차에 접어든 어엿한 '자기소개 경력자'이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자기소개 시간은 여전히 쑥스럽고 어색하다.


나는 오늘도 자기소개를 한다. 다만 오늘의 자기소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평소보다도 더 막막하다. 얼굴도, 경력도, 소속도 가려진 이 공간에 홀로 서있는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이번 기회에 나를 둘러싼 볼품없는 수식어들을 잠시 내려놓고 가장 솔직한 나를 향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일주일 중 이틀은 공부하고 하루는 돈을 번다. 남는 나흘은 되는대로 보낸다. 막상 별 일은 없으면서도 새학기가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실체없는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에 가서 앉아있는 날이 늘었다.

 

 

Q.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푸나?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화보다는 '영화관'이 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집 근처에 아무도 찾지 않는 영화관이 있는데, 종종 텅 빈 영화관에 가서 혼자 영화를 보고 오곤 한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외부세계와 단절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일상은 너무나 파편적이고 매일이 정신없이 돌아간다. 남들보다 부족한 에너지를 갖고 살아가는 내겐 일상의 틈새 속에 잠시 침잠할 곳이 필요한데, 영화관이 그 역할을 해주는 공간인 것 같다.

 

 

Q. 주로 어떤 영화를 즐겨 보나?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그 전까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사실 취향이랄 게 없는 것 같다. 코미디부터 작가주의 영화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평이 좋은 작품들은 다 찾아본다. 영화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도, 음악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좋다는 것에 한번쯤 발은 담가보려고 한다.

 

한때는 이런 넓고 얕은 취향의 폭이 줏대없는 것처럼 느껴져 부끄럽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언가를 즐기고 향유하는 데에 굳이 나만의 울타리를 쳐둘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많이 보고 느낄수록 세상이 점점 즐거운 곳이 된다는 걸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다만 공포영화는 아무리 시도해봐도 무서워서 도저히 못보겠다. 영화 연출의 꽃은 공포영화라고들 하던데, 애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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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엔 글도 쓰기 시작했는데?

 

작년에 재미삼아 시작한 블로그가 계기가 되어 올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관람과 체험이 끝난 뒤, 이를 글을 통해 곱씹고 복기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과 감상이 한층 풍부해지는 것을 느낀다. 당장에 돈이 되고 떡이 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나의 사유를 정립해나가는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꾸준히 글쓰기 연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모든 거창한 이유에 한참 앞서, 내가 글을 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재미있어서다. 어릴 때는 소설가를 꿈꿀 만큼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그 감각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여기저기 헤매다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아, 결국 내 길을 종이 위에 있나보다,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그 뿐이다.

 

지금 당장은 그저 좋아서 글을 쓸 뿐이다.

 

 

Q. 글쓰는 전공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성향이나 진로를 염두에 두고 전공을 선택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전공도 취미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고등학교 땐 동양화를 전공하며 디자인을 하고 싶어했고, 대학교 땐 디자인을 전공하며 미술사와 미학 수업만 찾아다녔다. 지금은 디자인을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에서 다각도로 살펴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좋아하는 내 성향과 잘 맞는 전공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예고부터 미대까지 거진 10년을 미술을 하다가 이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한눈 팔다가 멀리도 돌아왔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헤매던 시간의 켜가 쌓여 지금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내가 있지 않나 싶다.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여러 사회문화 현상들을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묶어내고 해석하는 과정이 재밌다.

 

다만 앞으로 이 공부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좀 더 나중에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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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가끔은 내가 나를 생각해도 심란할 때가 있다. 나는 올해로 스물다섯이 되었는데, 이젠 정말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근래 자주 한다. 지금의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피터팬 같은 상태다.

 

요즘의 일상, 지금 하는 공부는 어쩌면 안정적인 직장과 평탄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직선도로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면 무슨 재미가 있나 싶다. 길지 않았던 지난 삶도 그랬듯이, 난 앞으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둘레둘레 돌아다니며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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