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만한 선의 - 소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도서]

글 입력 2022.03.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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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수록된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이기호의 단편 소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왜 자꾸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가?". 소설 속 '권순찬'은 '김석만'으로부터 칠백만 원을 돌려받기 위해 김석만의 아파트 앞에서 대자보를 들고 시위를 한다. 하지만 김석만은 실제로 그 아파트에 살지 않고, 그의 어머니만이 살고 있었다. 시위의 대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순찬은 꿋꿋하게 아파트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있고, 아파트 주민들은 그런 권순찬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불편해한다.

 

어쩌면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시위가 장기화되자, 권순찬을 마냥 외면할 수 없었던 아파트 주민들은 함께 돈을 모아 권순찬에게 칠백만 원을 전달한다. 그 칠백만 원에는 김석만의 어머니 돈도 포함되었다.

 

순수한 선의로 뭉친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훈훈하게 느껴졌다. '요즘 보기 드문 모습들'이라 생각하며 흐뭇하게 소설을 읽어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 권순찬은 그 돈을 거절했다. 그의 시위 목적은 돈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김석만을 한 번 만나 대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파트 주민들이 모아 온 돈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애써 좋은 마음으로, 다른 뜻 없이 오로지 안타까운 사람 한 명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은 돈을 거절하는 권순찬의 모습을 보고 소설을 읽던 나도 괜히 김이 빠졌다. 당황한 건 아파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 '나'는 그런 권순찬에게 화를 낸다. 어쩌면 아파트 주민들을 대표한 셈이 된 '나'는 '왜 애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냐'고 권순찬에게 화를 낸다.

 

아파트 주민들은 다른 뜻 없이 순수한 선의의 마음으로 하나 되어 권순찬을 도우려 했지만, 그 도움이 거절당하자 왜 애꿎은 사람들만 민망하게 만드냐고, 힘들게 만드냐고 또 다른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낸다. 정작 권순찬이 시위를 하게 만든, 이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나타나지 않는데, 남겨진 사람들끼리 서로 기분 나쁜 말만 주고받는다.

 

몇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왜 우리는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는가", "세상의 모든 선의는 과연 순수한가", "모든 선의는 받아들여질 가치가 있는가".

 

소설 속 홀로 싸우는 권순찬의 모습은 사실 낯설지 않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소수를, 기득권에 대항하는 약자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목도했다. 그러한 대립의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보다, 아무 편에도 해당되지 않는,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이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일지도) 이상하게도 애꿎은 대상하게 쉽게 화를 내고, 또 쉽게 동정한다. 절대 강자는 아니지만, 또 절대 약자보다는 위인 사람들은 모든 걸 건 약자들의 싸움을 생각보다 가벼이 여긴다.

 

그랬기에 아파트 주민들은 권순찬의 외로운 투쟁을 뒤에서 너무 쉽고 가볍게 떠든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돕고 싶었다면, 권순찬의 위치에서 권순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본인들끼리 권순찬에 관해 '함부로' 이야기를 하고, '함부로' 돈을 건넨다.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돈을 모았다고 하지만, 그들이 돈을 모은 건 무의식중에 어려운 형편의 권순찬보다는 본인들이 더 힘 있고, 위에 있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칠백만 원, 그 정도 '그냥 조금 나은 형편인 우리끼리 모아서 돕자'는 마음이었기에 선의가 환대 받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오만한 선의 뒤엔 사실상 완전하게 해결되기 어려운 이 사태 속에서 서로 껄끄러운 상황을 (함부로) 빨리 끝내자는 이기심도 숨겨져 있었다. 권순찬을 위한 마음이라면서, 권순찬의 입장에서 생각한 건 하나도 없다. 그러니 권순찬의 시위 목적이 돈이 아닌 대화였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선의가 거절당하자, 그들은 분노한다. 약자에게, 분노한다.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고 오히려 악화되자 불편한 손님을 돌려보내고 싶었던 이기적인 마음이 본색을 드러낸다. 왜 본인들을 불편하게 하냐고, 잘못한 거 없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냐고, 순식간에 피해자가 되어 권순찬을 가해자로 만든다. 정작 함께 분노해야 할 진짜 가해자에겐 분노하지 못하고, 절대적 피해자를 가해자로 지명하여, 또 한 번 약자에게 어설픈 권력을 행사한다.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은 그렇게 괜히 약자에게 가벼운 동정을 주고, 또 너무나 쉽게 화를 낸다. 노동조합이 맞서 싸우는 대상들보다 그 두 집단을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노동조합을 더 미워한다. 어떠한 문제로 시위를 하는 집단을 처음에는 안쓰럽다 생각하다가도 싸움이 길어지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때 중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불편한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분노한다. 애꿎은 사람에게.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수록된 단편 소설 중 하나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타인을 향한 선의가 다 올바른지, 모든 선의는 환대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 묻는다. 진정한 선의는 같은 편에서, 동등한 눈높이로 마주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의 뒤편에 그 누군가보단 위에 있다는 교만함이 있다면, 선의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쉽게 버려진다. 그리고 그 선의는 한순간에 애꿎은 분노로 둔갑된다.

 

책을 덮고, 아파트 주민들이 훈훈하다며 흐뭇해하다 이 도움을 왜 거절하냐며 순간적으로 화를 냈던 스스로가, 내 무의식중의 오만함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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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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