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XXL 레오타드’와 ‘안나수이 손거울’ 사이 교차하는 억압과 고민들 [공연]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을 통해 본 연대의 의미
글 입력 2022.03.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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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계급이 교차하는 억압의 장(場)에 선 아이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렇게 다양한 위치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만큼, 혐오와 억압도 하나의 층위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젠더, 계급, 인종, 장애, 연령,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기준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복합적인 억압과 차별을 마주한다. 우리는 어떤 층위에서는 소수자이지만, 어떤 층위에서는 권력을 가지며 누군가를 억압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이렇듯 다양한 정체성과 억압이 교차하는 장(場) 위에 서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연극의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두 축은 ‘젠더’와 ‘계급’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준호’와, 꿈보다는 생계를 걱정하며 노동현장으로 내몰리는 ‘희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준호’는 여성용 레오타드를 입으며 심적 안정을 느끼는 남학생이다. 이런 준호의 취향이 담긴 사진이 얼굴만 모자이크 된 채로 SNS에 올라가자, 준호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희주’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희주는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는 체육 수행평가 짝을 구하지 못하자, 사진을 빌미로 준호에게 수행평가를 함께 하자며 압박한다.

 

공통점이라고는 나이 밖에 없을 것 같은 준호와 희주는 체육 수행평가 준비를 함께하며 서로 상처 주고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알아가고 이해하며, 힘이 되어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어른들에 의해 젠더 규범이나 계급 위계를 수용한 ‘민지’와 ‘희관’, ‘태우’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갈등은 준호와 태우의 갈등이었다. 준호는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에 슬퍼하고 자신의 취향을 들킬까봐 두려워하면서도, 고급 아파트에 사는 자신과 임대 아파트에 사는 태우를 구분하며 태우를 무시한다. 태우 역시 준호의 취향을 ‘남자 답지 못한 것’,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것’이라고 매도하며 계속해서 아웃팅을 시도하지만, 임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준호에게 무시 당하고, 차별적인 발언들을 견뎌야 했다.

 

둘의 갈등을 보며, 결국 우리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풍경만을 통해 누군가를 재단하는 편협한 존재이자, 소수자인 동시에 억압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러한 편협한 시야에서 벗어나 연대하고, 억압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연극 속 체육 수행평가에서 아이들에게 과제로 주어졌던 ‘춤’과 ‘관찰 일지’를 생각해 본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무언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 서로를 관찰하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회는 중요한 연대의 계기로 작동한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보았던 풍경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시선에서 보이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억압의 기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The only true currency in this bankrupt world is what you share with

someone else when you're uncool.

 


극 중에서 이 문장은 준호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자, 준호의 취향을 들키게 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 파산한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통화(通貨)는 당신이 쿨하지 못할 때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무언가이다” 라는 뜻의 이 문장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어쩌면 이 ‘쿨하지 못한(uncool)’ 상태는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본 풍경만을 정상적이고 옳은 것으로 규정하는 편협함을 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스스로의 편협함과 복합적인 위치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서로를 교차하는 다양한 차이를 이해하며 연대하는 것은, 구조적인 혐오와 억압이 다양한 층위에서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현재에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이다.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갈등은 개인 간의 화해와 이해만으로 단 한순간에 풀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개인들은 연대를 통해 혐오와 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그리고 이러한 균열이 만들어낸 작은 변화들은,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벽을 언젠가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아직 서툴고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의 다름을 마주보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며 생각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같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에도’ 연대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극의 시도와 수평적인 공간 구성으로의 변화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단순히 서사를 넘어 연극의 준비 과정, 무대 공간 구성 등으로도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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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서로 다른 환경과 불공정한 경쟁에서도 불평 없이 어른들을 따라야 하는

청소년들의 일상과 현실적인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룬다.

초연 당시 창작진은 ‘부모의 욕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2020년, 다시 한번 공연을 준비하며 초연의 주제와는 다른

변화된 한국사회와 청소년들에게 포커스를 맞춰 제작했다.

지난 5월부터 약 6개월 간 희곡이 가진 청소년, 젠더, 소수자, 노동, 인권에 대한

스터디 및 특강을 진행해왔다.

작품의 주제에 대해 새롭게 질문을 던지며 동시대 사회의 문제의식을 담고자 했다. 재공연이지만 캐스팅의 변화, 변화된 주제,

초연과는 다른 새로운 공연형식으로 관객과 만난다.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작품 소개 中

 


2015년에 초연을 선보였던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스터디와 특강 등의 준비기간을 거치며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그 중 두드러지는 것은 수평적으로 구성된 무대에 모든 출연진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과, 배리어 프리 극을 시도한 것이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 무대 안과 무대 밖에 존재하는 위계와 다양한 장벽들을 없애기 위해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도들 때문에, 서사와는 별개로 ‘연극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 어떤 장면이나 대사를 놓칠까봐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연극을 보면서 스크린에 띄워지는 대사와 연극 시작 전 무대와 소리에 대한 설명 등을 통해 극을 더 잘 이해하고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편안함을 느끼며 연극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예술은 일정한 층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향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2022년 공연에서 보여준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의 변화는 참 반가웠다.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 예술 분야의 배리어 프리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관객들의 접근을 높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좋은 어른’에 대한 고민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속 유일한 어른 캐릭터는 체육교사 ‘영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과 말 속에서 이미 수많은 어른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젠더 규범과 계급 위계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흡수되어 아이들의 공간에서도 재현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민지의 ‘안나수이 손거울’이다. 민지의 어머니는 매년 생일선물로 민지에게 안나수이 손거울을 사주며 이렇게 말한다.

 

 

장미에 뭐가 앉아야 어울릴까? 나방이나 파리가 장미에 어울릴까?

썩은 계란이나 고양이 시체, 나방이나 파리는 그런 데 앉는 거야.

너한테 파리나 나방이 앉게 하지마. 알았니?

 


개인적으로는 아직 영길보다 준호와 아이들의 나이에 더 가깝지만,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부채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영길의 위치에 가까워질 텐데, 그때 어떤 마음으로 수많은 준호와 민지, 희주를 바라보게 될까?

 

아이들은 여전히 다양한 차별과 억압이 교차하는 혐오의 장에서 성장해 간다. 연극 속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힘든 현실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갑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어른들을 통해 학습한 규범과 위계를 누구보다 잘 체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부모의 위치를 그대로 물려 받으며 미성년자라는 무력함 속에 약자의 자리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극은 영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좋은 어른’에 대한 고민을 전달한다. 영길의 삶 역시 녹록지 않지만, 그는 아이들 개개인에 주의를 기울이고, 청소년들에게 규정에 맞지 않는 노동을 시키는 고용주에게 항의를 하기도 하는 어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서로의 위치를 뛰어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좋은 어른’을 정의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적어도 ‘좋은 어른’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 나가는 사람이 ‘좋은 어른’이 아닐까 싶다.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렵고, ‘좋은 어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세대를 뛰어넘어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영화 <작은 아씨들(1994)>에서 어머니가 자매들에게 했던 말을, 지금도 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수많은 준호와 희주, 민지와 태우 앞에도 그대로 놓아두고 싶다.

 

 

너희에게 더 좋은 세상을 주고 싶어. 그러면 너흰 더 좋게 만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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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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