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잃기 위해 잊는 세계에 관하여

글 입력 2022.03.1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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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이의 세계는 존재한다.

 

오랑이와 짹짹이의 세계는 실존한다.

 

나는 오랑이와 짹짹이의 실존하는 세계에 잠시 다녀왔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던 세 문장이다. 말 그대로 나는 전날밤 오랑이와 짹짹이의 세상에 들렀다 이제 막 현실로 복귀한 참이었다. 나는 그날 하루를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으로 보냈다. 그 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단지 '오랑이의 세계'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발견했음에 환호했다.


오랑이는 내가 꿈 속에서 만나고 온 오랑우탄의 이름이다. 내가 오랑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처음 꺼냈을 때의 반응은 '왜 하필 오랑우탄이야?'였다. 알 수 없다. 원래 꿈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이 뜬금없고 난데없는 것들의 향연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굳이 그 오랑이의 출처를 따지자면 언젠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만났던 오랑우탄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오랑이의 출현을 반가워했던 이유는 바로 다음 대목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말이야, 그 오랑이가 사실 저번에도 내 꿈에 나왔었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달 전쯤 나는 꿈 속에서 내 친구 오랑이를 은행 ATM 창구에 혼자 내버려 둔 채 새 친구 짹짹이(작은 참새였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이번에 꾼 꿈에서 오랑이를 그리워하던 내가 그 은행을 다시 찾아가 그곳에서 하염없이 날 기다리고 있던 오랑이와 엉엉 울며 상봉했다.

 

이날 이후로 나는 오랑이의 세계가 이 우주 어딘가에 실존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곳과 다른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꿈을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 말을 어느 과학자가 듣게 된다면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나의 동심을 깨부수어도 될지 가늠부터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망상을 즐기는 것은 내가 동심을 찾아 헤매는 어린 영혼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에게는 언제나 도망칠 수 있는 일종의 쥐구멍이 필요했다. 언제라도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 곳.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곳이 바로 내가 발견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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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부터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얕은 잠에 빠졌다는 뜻이라던데 그런 것은 다 모르겠고, 오히려 꿈을 꾸지 않는 날이면 더 침울했다. 그렇다고 늘 특별한 꿈만 꾸는 것도 아니다. 사실 별거 없다. 다만 나를 두렵게 만드는 내용은 잘 꾸지 않는다. 대체로 배경은 현실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지켜지는 기묘한 법칙이 한 가지 있다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꿈 속에서 나는 자주 웃고, 그들은 자주 운다. 그 때문에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눈동자에 대해 오래 생각하곤 했다. 기억이 휘발되기 전, 가장 선명할 때 그림을 여러 번 덧그리듯 그것을 떠올렸다. 그러다 보면 쉽게 착각하게 된다. 온 세상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 같다.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길을 잃어 긴긴밤을 헤매고, 목적을 알 수 없는 난데없는 모험을 떠나는 것도 좋았다. 그 안에 있을 때 나는 모두가 사랑하는 고유한 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더 그 세계와 사랑에 빠졌다. 잊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면 습관처럼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애썼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누군가 저 무의식의 세계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모를 그 따뜻한 손을 마주 잡으며 이대로 영영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마뜩잖다. 내가 사랑하는 그곳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옆집 드나들 듯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나는 미약한 불면을 안고 산지도 한참이었다. 매일 밤, 이불을 꼭 그러안고 두 눈을 꾹 감아도 잠에 들려면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서 너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때 말짱한 정신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얄밉다. 친구들의 연락도 점차 끊겨가면 어찌할 수 없이 고독하고 지난한 밤의 서막이 열린다. 그럼 나는 자리에 누운 채 지칠 때까지 상상을 하거나, 몸을 피곤하게 하려는 전략으로 난데없는 운동을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뒤에도 잠들 기세가 느껴지지 않으면 밀린 일기를 써 내려갔다. 어떤 날은 손바닥 만한 노트의 책장을 넘겨가며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남을 때까지 펜을 움직였고, 또 어떤 날은 할 말이 너무 많아 팽팽 돌아가는 정신을 따라가기 위해 노트북을 열고 블루 라이트를 정통으로 맞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덕분에 밤과 정신과 우울과 희망과 기다림의 역사가 줄줄이 남겨졌으나 그것들이 탄생될 적 나에겐 오로지 잠과 꿈과 만남을 위한 인내 뿐이었다.

 

노력 끝에 비로소 잠에 들면 나는 바라던 그곳으로 향한다. 나를 위해 기꺼이 눈물 흘리는 이가 있는 곳, 죽거나 다치지 않는 곳, 이름 없이 사라질 걱정 따위 없는 곳, 이상한 것이 평범한 곳, 나태하고 잔잔한 곳, 분노나 미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곳. 그런 이상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이렇게 늘 잠만 자고 싶었다.

 

아침을 알리는 알람은 접속해 있던 게임의 네트워크 연결 상태 불안정을 알리는 갑작스러운 팝업 창 같다. 전혀 반갑지 않은 소식에 공고해 보이던 세계가 하나 둘 흩어져갈 때, 나는 가장 슬펐다. 차라리 정말 게임이었다면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을 향해 휴대폰을 높이 쳐들며 애를 쓸 수나 있었을 텐데.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가 꿈 속에서 하루를 보낸 것처럼, 현실에서도 하루를 보낼 차례가 온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진짜 세계'가 사실은 꿈인 거 아닐까 하는 기대 섞인 망상을 한다 하더라도 착실히 교복을 입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기막힌 이중생활을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였다. 꿈을 담보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이후였다. 현실이 끔찍하게 망해버리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되면 이곳을 포기하고 내가 사랑하는 꿈 속으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모든 것들이 제 의미를 잃어갔다. 학교 생활도, 교우 관계도, 노력도, 행복도, 경험과 감각도 모두 덧없이 느껴졌다. 그런 것들이라면 괜히 피곤하기만 하고 신물이 났다.

 

그 길로 나는 온종일 잠만 잤다.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지냈다. 하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어둠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으면 내 호흡소리조차 소음처럼 거슬렸다. 그럴 땐 숨을 참았다. 가슴이 답답하게 짓눌려갈 때쯤에야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어느 것에도 미련이 없었다. 나는 고작해야 태어난 지 스무 해도 안 된 세포 덩어리일 뿐이라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오히려 사라지려면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무기력은 이미 온몸을 잠식해 더 이상의 하찮은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계속해서 잠만 자고 싶었다. 힘겹게 머리 굴려야 하는 상상도 지겹고, 눈을 감으면 바로 펼쳐지는 꿈만 꾸며 시간을 공짜로 축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가 너무도 길었다. 하는 것도 없이 지쳐갔다. 자꾸만 숨이 차는 것 같았다. 목 뒤가 뜨겁고 손에서는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어항 속 구피들이 떼를 지어 죽어 있었다. 오랫동안 밥을 주지 않아 서로의 시체를 물어뜯다 결국 죽어버린 듯했다. 비린내가 났다. 구역질이 났다. 모든 게 싫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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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현실이 망하는 일은 없었다. 얼만큼의 시간을 들이더라도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온갖 거추장스러운 것들만 늘어갈 뿐이었다. 망하라는 삶은 망하지 않고, 죽고 싶다 염불을 외던 나는 기력을 찾아갔다. 오래 방치된 창고의 먼지를 털어내듯 잔기침을 뱉으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꿈 꾸는 밤이 좋고 해 뜨는 아침은 나를 괴롭히는 악당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놈의 정신은 다시 내 잠을 깨우던 말짱한 상태로 퍼덕이며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듯 무기력을 청산해야만 했다. 마땅한 이유 없이 순리를 따르는 자정작용은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까.


어항을 두었던 자리에 식물을 새로 들였다. 흔하디 흔한 다육식물이었다. 주먹만 한 작은 도자기 화분에 심긴 선인장에게 '인장이'라는 지으나 마나 한 이름도 붙여주었다. 어느 날 내가 다시 너를 돌보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너무 쉽게 죽지는 마. 언제고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까.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도 잠시 해봤다.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꾸었다. 늘 그래왔듯 짙은 새벽이 되어서야 지쳐 나가떨어지듯 잠에 들었지만 꿈 속의 그들은 언제나처럼 나를 반겼다. 그들은 여전히 내 생의 담보였고 나는 여전히 버릴 것이 별로 없는 가볍고도 하찮은 사람이었다. 불안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곳이 내가 죽어서 다시 살 수 있는 세계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괴로운 날도 마찬가지였다. 꿈을 꾸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언제든 살 수 있었다. 여긴 현실이 아니야,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나는 언제든 꿈으로 돌아갈 거야.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러는 사이에 '인장이'는 죽지도 시들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인장이'를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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