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 - 내부순환 [격주의 문학]

글 입력 2022.03.1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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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작품은 정지돈 작가의 단편소설 「내부순환」이고, 소개라기보다는 단평이 될 것 같다. 정지돈 작가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내부순환」 역시 역사적인 사건들이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과 작가의 상상력이 존재하는 소설적 공간이 병렬적인 양상으로 존재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있는 공간이 있고, 이 주인공들은 소설 바깥의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의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설화 및 우화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었지만,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소설의 텍스트에서 풀어서 설명하면서, 소설 속 인물들을 함께 병치하는 양상은 2010년대 이후 소설의 독특한 지점들이다. 정지돈 작가뿐 아니라 이장욱, 손보미, 박솔뫼, 서이제 작가의 소설들에서도 이러한 글쓰기 양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오늘날 문단의 소설들을 다루는 나의 칼럼에서 이러한 지점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형식의 소설들을 ‘인용’을 활용한 글쓰기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지돈 작가는 인용을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가이다. 정지돈 작가는 (나의 배경 지식이 맞다면) 소설의 세계에 인용의 글쓰기를 정착시키는 데 가장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소설가이다. 그는 201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서부터 문단에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사실과 허구가 혼재하는 그의 소설에 항상 제기되던 비판은 “이게 소설이냐”하는 것이었다. 현실과 사실로 가득한 문학, 소설적이지 않은 소설의 존재에 대해서 당시의 문단은 다양한 층위에서 이 ‘인용적 글쓰기’를 다루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제는 이러한 형식의 글쓰기를 꽤 많이 볼 수 있고, 이제는 오히려 소설만을 위한 소설, 삶과 유리된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용을 활용한 이러한 작법은 굉장히 다양한 층위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이 글에서든 또 다른 글들에서든 이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작가와 작가성의 붕괴’의 개념 같은 것을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지만, 어쨌거나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이 작가들의 이러한 인용적 글쓰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지돈의 글쓰기 속에서는 소설과 소설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하고, 독자가 소설에서 영향을 받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도 현실의 사건의 영향을 받는다. 소설은 더 이상 작가가 빚어낸 완벽한 상상의 세계가 아니며, 완벽한 가상의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


「내부순환」은 《문장》 웹진 2022년 1월호에 발표된 소설로, 정지돈 작가의 소설답게 가상의 인물들과 현실의 사건들이 병렬적으로 서술된다. 소설은 세 개의 플롯이 번갈아 제시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소설 『모터맨』의 작가 데이비드 올(David Ohle)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데이비드 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설의 주인공인 ‘나’와 M, 그리고 미치 미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윌리엄 버로스는 자신의 아내인 조앤 볼머(Joan Volmer)를 총으로 쏴 죽인 충격적인 과거를 지닌 소설가로 기억되고 있고, 그들의 아들인 윌리엄 버로스 주니어도 소설을 쓰며 살아간다.


버로스의 일화를 익히 알고 있던 데이비드 올은 버로스 주니어의 유령작가를 맡게 된다. 부모님의 끔찍한 예술혼과 광기를 보며 자라서 결국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버로스 주니어의 작품을 편집/재창작하면서 그들 가족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가기 위해, 데이비드는 유령작가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수락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소설 「내부순환」의 주인공 미치 미치가 있다. 신인 작가인 ‘나’의 북토크는 몇 없는 독자들이 참여하여 텅텅 비어있는데, 여기서 소설가 지망생인 호준이 찾아온다. 호준은 ‘나’에게 자신의 소설 원고를 보여주는데, 그의 원고에는 미치 미치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필명으로 부적합하다는 ‘나’의 조언을 듣고 호준은 미치 미치로 개명한다. 어느 날 호준은 데이비드 올의 작품 『모터맨』에 깊이 빠져들고, ‘나’와 M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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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줄거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소설의 설정을 위와 같이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정지돈 작가의 작품은 종래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는 방식처럼 독자에게 간단하게 소개하기는 어렵다. 그의 작품 속에는 허구적인 소설의 설정들도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바탕을 둔 병렬적인 플롯 역시 존재한다. 정지돈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는 현실과 허구 사이의 관계성에 주의를 기울일 때 더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소설의 허구적 공간은 과거의 역사적 공간과 미묘하게 닮았고,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의 인물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행동을 한다. 독자가 소설로부터 영향을 받는 인물들이라고 한다면, 정지돈의 주인공들은 사실로부터 영향을 받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소설과 현실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허구성과 사실성을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시도들은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팩트라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인가. 이러한 새로운 질문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소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스티븐은 작가의 블록을 극복하는 데 유령작가 일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결국 모든 작가는 유령-작가라고 말이다. (강조는 필자)

 


「내부순환」에서 데이비드 올이 수행하는 유령작가 작업은, 윌리엄 버로스 주니어의 유작인 『프라크리티 교차로』를 편집하는 일이다. 이 소설에서 유령작가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완전한 원래의 이야기를 현대의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새롭게 가공해내는 작업을 말하는 것 같다―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도 소설가 지망생 덴고가 여고생 후카에리의 소설을 재창작해준다. 아무것도 없는 원초적 상태로부터 창작해내는 소설가들의 작업과 구분하기 위해 유령작가라는 표현을 쓴 것인데, 그렇다면 그냥 작가와 유령작가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사실 소설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이라는 것도 현실에서의 경험 혹은 간접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가공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문장이 정지돈의 소설, 그리고 인용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오늘의 수많은 소설들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지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창작이라는 작업이 작가의 고유한 재주를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그 독창성이 명확해야 하고 기존에 있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새로운 것은 세상에 없다. 우리가 소설이든 음악이든 하나의 창작물을 좋게 인식한다고 하면, 그것은 창작물이 아주 새롭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경험과 작품이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했기 때문이지, 그것이 독창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전위적인 작품들이 대중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


‘인용의 글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설과 삶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이 그런 것처럼, 삶 역시 아주 새로운 삶은 없다. 누군가가 살았던 것의 변형된 되풀이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말은 절망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위로가 되는 것인가. 적어도 모든 존재가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정지돈 작가는 굉장히 다작하는 작가이다. 단편소설과 중·장편소설 외에도 다양한 산문으로도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은 서울과 파리를 산책하며 정지돈 작가가 남긴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자유롭게 산책하고 여행하지 못하는 코로나 시대의 아픔에 위안을 주는 책이다. 정지돈 작가의 수필 글을 접해본다면 그의 전위적인 (혹은 전위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크기변환]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jpg

 

[크기변환]정지돈.jpg

정지돈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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