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콩 호텔 투숙기 [영화]

영화 <메콩 호텔>(아핏차퐁 위라세타쿤, 2012)
글 입력 2022.03.11 18: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회원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월 즈음 태국이 해외 관광객의 입국 후 격리 조치를 해제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해외여행이 그리웠던 저는 소식을 듣자마자 잽싸게 비행기표를 끊었고, 2주간의 여행 끝에 살이 새까맣게 탄 채로 한국에 돌아와 자가격리에 들어갔습니다. 이틀 정도는 괜찮았는데 앞으로 5일을 더 방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거려서, 회원님들께 여행 정보나 공유해드려야겠다 싶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곳은 제가 묵었던 로컬 숙소인 <메콩 호텔>입니다.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좋아하는 터라 기왕이면 메콩강이 잘 보이는 곳에서 묵고 싶었는데, 여기서도 리버뷰는 가격이 대체로 센 편이라 제 비루한 예산으로는 좀 빠듯하더라고요. 그런데 열심히 서치를 하다 보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은 가격의 호텔이 하나 있었습니다. 별점이 좀 낮고 리뷰도 거의 없어서 살짝 걱정은 됐지만, 제가 또 도전 정신이 투철한 편이잖아요? 결국 4일을 거기서 묵었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메콩 1.jpg

 

 

호텔의 첫인상은 꽤 좋았습니다. 방에 놓인 가구에서 연식이 좀 느껴지긴 했지만, 청소가 잘 돼 있었고 넓이도 제법 넓어서 나름 쾌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강이 정말 잘 보이는 방이더라고요. 예약할 때 요청사항에 가능하면 강이 보이는 방으로 달라고 써 놓았는데, 투숙객이 저 말고는 없다시피 해서 좋은 방으로 주신 것 같습니다. 로비에 상주하는 사장님과 온종일 기타만 치고 있는 사장님 친구분을 빼면 정말 아무도 없었거든요. 아무튼 거의 호텔 전체를 빌린 것처럼 지냈습니다. 여기까지는 되게 만족스러웠습니다.

 

근데 여기 사장님이 좀….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 이상합니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는데 침대 커버에 벌건 핏자국 같은 게 보여서 카운터에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이 직접 커버를 들고 올라오시더라고요. 그런데 침대 커버를 갈아주면서 하신다는 말이 글쎄, 메콩강 주변에는 사람이나 짐승을 잡아먹는 귀신이 돌아다녀서 가끔 이런 일이 있다지 뭡니까. 선하게 생긴 얼굴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런 말을 하니까 소름이 돋더라고요. 싸해지는 제 표정을 보셨는지 그제야 지난번에 묵은 손님이 흘린 와인 자국인 것 같다며 웃으시지 뭡니까. 그날 밤 저는 방에 있는 불이란 불은 다 켜고 잤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님, 볼수록 참 흥미로운 분이었습니다. 제가 이상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랬을까요? 첫날 밤에 있었던 일 때문에 숙소를 옮길까 하다가 빠듯한 예산 탓에 포기했는데, 어쩌다 보니 사장님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강이 잘 보이는 호텔 테라스에서 물멍을 때리다 보면 꼭 사장님이 지나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요. 뭔가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던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좌파 세력과 싸우기 위해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던 어린아이와 여자들의 이야기. 호텔에 한 모녀가 묵은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귀신이었던 엄마가 자기 딸을 잡아먹은 이야기. 태국이 라오스에서 뺏어 온 불상이 다시 라오스로 돌아가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는 이야기. 호텔 투숙객의 반려견을 잡아먹은 여자 귀신 이야기. 보트 가격이 비싸지자 정부에서 대나무로 값싼 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사장님은 이런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하시고는 자기 일을 하러 쌩 가버리곤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참 별난 분입니다.


 

메콩 2.jpg

 

 

그런데 흥미롭게도, 테라스에 앉아 사장님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어쩐지 그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배를 구하지 못해 홍수에 휩쓸려 죽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품고 귀신이 되어 떠도는 건 아닌지, 엄마에게 잡아먹힌 딸이 귀신이 되어 호텔을 돌아다니던 누군가의 강아지를 해한 건 아닌지 나름대로 추리를 하게 된달까요. 퍼즐 조각처럼 널브러진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짜 맞추다 보면, 터질 듯 붉어진 해가 금세 강 아래로 잠기곤 했습니다.

 

초자연적인 일은 낮과 밤이 뒤섞이는 시간에 많이 일어난다고 하던가요. 사장님이 흘리고 간 과거와 현재, 전설과 역사의 파편을 이리저리 뒤섞다가 붉게 물든 세상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일순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히고 뒤엉켜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자신을 발견해 달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존재들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곳의 사장님은 늘 이런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요. 그는 메콩강을 종횡무진 움직이는 모터보트 같습니다. 휩쓸리기만 할 뿐인 거대한 흐름을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스르는 모터보트.

 

우연이었을까요? 셋째 날엔가 저는 처음으로 이 호텔에서 저 말고 다른 투숙객을 보았습니다. 젊은 여성분이이었는데, 놀랍게도 제가 머릿속에 그렸던 귀신의 모습을 똑 닮은 분이었습니다. 사람더러 귀신이라니 좀 실례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저는 그분이 귀신이었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귀신은 어떤 시간에 머물러 있는 존재들이고, 제가 그걸 봤다는 것은 비로소 서로 다른 두 시간이 충돌했다는 뜻이니까요. 그건 제가 이 호텔에 와서 매일같이 생각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당연하게도, 저는 체크아웃을 하는 날까지 그분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메콩 3.jpg

 

 

체크아웃 당일, 저는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기차 시간까지 테라스에서 물멍을 때릴 수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강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모터보트들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는데, 웬 나무 하나가 저 위에서부터 떠내려오더군요. 저는 어쩌면 그 나무에 누가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터보트는커녕 대나무 배조차도 구하지 못한 누군가가 겁에 질린 채 나무를 껴안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모터보트들이 떠내려오는 나무를 피하느라 어지러운 곡선을 그렸습니다. 저 강에는 많은 것들이 저렇게 어지러이 뒤섞이고 있지 않을까요. 귀신이 많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사담이 길었는데요, 아무튼 가성비 좋게 메콩강을 바라보며 물멍(과 신비체험)을 하고 싶은 분들께 강력히 추천하는 곳입니다. 시설은 좀 낡았지만 방 컨디션은 좋은 편이고, 코드가 맞는 분이라면 사장님과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방문하신다면 사장님이 얼마 전 숙소에 묵었던 한국인 손님이 하나 있었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귀신에게 잡아먹혔다느니 하는 짓궂은 농담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겁이 없는 분들이라면 저처럼 재미있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박호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7.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