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은 끊임없는 모순의 수용 [도서]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범람하는 모든 삶에게
글 입력 2022.03.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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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란 단어는 흔히 부정적이고 글자 그대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많이 사용된다. 어떤 영역에서는 그 자체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조차 이를 일관된 줏대가 없고 앞뒤가 안 맞는 논리를 가진 상태, 명확한 입장을 선택하기 위해 지나가야 할 과도기 정도로 여겨왔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들엔 일관된 기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즐비했다. 그 혼란 속을 벗어나고자 완전히 달아나기도 하고 더 명확한 입장을 세워보려 정면으로 부딪쳐보기도 하였다. 그 결과로 편안함에 이르렀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워지고 괴로워졌다.


<모순>을 읽고 결국 그 행동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삶은 그 자체로 거대한 모순의 집합체이기에, 모순은 그 자체로 결과이기도 하다.


인생의 모순을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 그 자체로 너무나 혼란스러운 우리의 존재를 이내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감싸 결국 사랑으로 귀결시켜낸 양귀자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작가는 <모순>을 쓰면서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고 한다.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바람. 나는 다행히 첫 독후감을 쓰고 있지만, 혹여나 작가의 바람이 무너질까 미리 언급한다. 삶이 어렵고 흔들린다고 느껴봤다면 반드시 책을 읽어보시라. 그다음에 같이 이 글을 공유해도 늦지 않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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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마주하며 든 생각은 ‘내 인생의 모순은 무엇인가’였다. 깊게 고민할 새도 없이 주인공 안진진의 서사는 나의 것과 닮아있었다. 아버지에 관한 내용에서 많은 것들을 공감했다. 아버지의 명백한 폭력,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 상흔.


그러나 안진진과 비슷하게, 그 뚜렷한 증거를 갖고도 나는 아빠를 엄청나게 원망하지는 않는다. 현재 관계에도 큰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애정의 마음이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관계에 큰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 같기도 하다. 마치 그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없었던 것처럼 모두 연극을 하는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이론과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내가 겪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해주고, 그 역사가 현재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 또한 그걸 느끼고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상처가 상처였음을 알려주는 말들. 하지만 상처받았음에도 무작정 미워하지 않는 모순. 그 이유를 ‘떨어트릴 수 없는 가족애’, ‘끈끈한 혈연’ 따위의 말들로 간단히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내 안에서도 수많은 감정이 우후죽순 생겨날 뿐이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아직도 어떻게 아빠와 가족을 대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한다. 문득 더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아빠와 비슷한 환경에 속해 있고 비슷한 행동을 하는 나, 거기까지의 서사를 직접 경험하며 왠지 아빠의 감정을 알 것만 같기도 했다. 남아있는 감정이 없어 다시 한번 아빠를 깊숙하게 들여보내려다가도, 말 한마디에 상기된 기억으로 다시 단념하기도 했다. 아직 아빠에게 썼던 애증의 편지를 전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쉽게 말했던 ‘애’를 후회할까 봐.


그것들이 같은 뇌에서 나온 것들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나 스스로 아직 형언할 수 없는 감정과 서사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것은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역사를 가진 나에게 이 혼돈은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 자체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지만, 이를 해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강박을 갖는 것 역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결과로 여길 때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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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개인적 감정의 모순 이외에도 삶에는 다양한 모순이 존재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의 모순, 같은 것이 각각 다른 무게로 존재를 짓누르는 모순, 사회는 바뀐다고 하지만 정작 개인의 삶은 바뀌고 있지 않은 모순.


명백히 구조적인 기형이 이런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간단히 치부해버리자면 결국 여러 결의 모순이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인생은 하나의 이론과 법칙처럼 깔끔하지 못하고, 이젠 깔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순의 흐름 속에서 방황하다 벗어나기 위해 하나의 기준에 묶여 산다면 그것 또한 늪에 빠지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안에서 순간순간 적절한 선택을 해나가야 하고, 매번 새 마음으로 작은 투쟁들에 맞서 싸워야 하기에 생은 필연적으로 고달플 것이다.


비슷한 삶 속에서 수많은 모순적인 선택지를 마주치며 흔들리면서도 결국 굳건히 버티는 안진진을 보며, 더 이상 그 개개의 선택을 모순적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모순은 특정한 관점에서만 성립하는 개념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의 과정으로 도출된 결과가 다른 곳에서는 절대적인 오류 값으로 측정된다. 결국 모순도 해석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 해석의 몫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나와 그를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매번 독립적인 선택과 해석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모순을 맞닥뜨렸다 해서 그 자체로 상심에 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이를 살아있음의 지표로 인식할 수도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므로.


다만 전제가 모순적이라고 하여 선택의 결과 또한 의미가 없다는 것은 다른 결이다. 부적절한 선택은 당연히 이뤄지지만, 그에 대한 관용은 적절한 방향을 향한 노력이 뒤따랐을 때 가능하다. 의도적이고, 끊임없는 부적절한 선택은 삶의 속성에 기대어 숨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모순이 악행을 대변하는 뚫리지 않는 방패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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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우리가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때로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숱한 모순 속에서도 사랑에 관한 도덕을 가장 포기하고 싶지 않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해서는 안 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선택해서는 안 될 방향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한다고,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했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안진진의 말에 반발심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라는 안진진의 말이 적절할 것 같다. 삶의 속성으로서 모순을 받아들이면,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찬 그것을 적어도 받아들일 수는 있다. 형언할 수 없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지 않아도 살아낼 수 있다. 그것은 삶에서 대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광활한 포용이며 어떤 사랑과도 같다.


소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우리들에게 삶의 본질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단정해버려도 좋은 것이 아님을.' 용기를 잃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적어도 나에게 충만히 스며들었다. 추운 겨울 우리를 감싸 안는 캐럴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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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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