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키에 맞는 행복을 느끼는 삶 -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3.0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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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행복이라는 게 막연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내가 아는 단어 중 가장 좋은 뜻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서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나의 일기장에도. 하지만 행복이 손에 잡히지 않는, 아주 멀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잘 쓰지 않게 되었다.

 

한 번쯤은 행복의 정의를 스스로 다시 내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인터뷰에서 혹은 TV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더 집중하고 귀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생각해 보곤 했다.

 

 

 

다시 펼쳐 든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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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 년 전에 읽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을 처음 펼쳐 들었을 때는 주인공이 가진 남성우월주의적 사고와 여성관이 불편해서 책이 주는 메시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그가 걸어온 삶의 행적에 집중하여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난처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은 있지만 전보다 조르바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인물들이 느끼는 행복이 선명하게 다가왔고, 덕분에 나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로 표현되는 30대 중반의 지식인 화자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60대 노인 조르바가 크레타섬에서 갈탄광을 개발하며 지내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비교적 단순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고, 둘의 대화와 삶에 대한 성찰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고 있다. 화자는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모순과 불합리함을 지성적으로 사고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고 조르바는 불나방처럼 온몸으로 부딪히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특히 조르바는 제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들에 귀 기울이며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과 열정, 일의 성패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순수함을 지녔다. 조르바와 크레타에서 지내며 화자 역시도 점점 삶의 순간순간에서 솟아오르는 행복들을 느끼게 된다. 화자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스스로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이따금씩 언급하기도 한다.

 

 

 

성취와 행복


 

 

“행복을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는 자에게 화가 미치리라.”

 

-89p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무언가 성취했을 때 보상처럼 따라오는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행복을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두었을 때,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가 미뤄 둔 만큼의 행복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을까. 그 행복이 내가 제쳐 둔 것들과 맞바꿀 만큼의 것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취와 행복을 동일시하면 쉽게 공허함이 찾아온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곳에 내 모든 행복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성취와 상관없이 그것을 아직 이루지 못한 지금의 나에게 맞는 행복이 있고, 그것을 이루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또 따로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다.

 

 

 

행복에 대한 정의


 

 

“‘공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행복은 그 사람의 몸 크기만 하다'라고 말했지. 맞는 말이야.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크기만 한 행복이 존재하는 거지.”

 

-166p

 

 

앞에서 언급했듯 내 나름대로 행복의 정의를 내려보려고 애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강박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이제는 명확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행복은 오래 지속되는 어떤 목표나 상태보다 문득, 찰나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느낌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행복은 제때 껍질 까서 맛보아야 내 것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데, 조르바는 이것을 잘 실천하며 살았기에 60대의 나이에도 삶에 그만한 애정과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조르바에게 각자의 키에 맞는 행복을 그때그때 한가득 껴안을 수 있는 삶을 살아보라는 메시지를 건네받은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문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게 “한 번 사는 인생, 조르바처럼!”과 같은 메시지는 아니었다. 죽음과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조르바를 통해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새기며, 그렇다면 이 한 번뿐인 삶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고찰해 볼 수 있었다. 또,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떤 부분을 가로막고 있는지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것 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은, 비로소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된 나를 그려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행하면 복이 옴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라고 소리치는 조르바의 영혼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11p

 

  

내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도, 잘 살아내고 싶은 것도 나 자신이다. 그런데 ‘잘’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커져 그것이 두려움으로 변할 때가 있었다. 두려움은 나를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나는 그 두려움에 발이 묶여 어디도 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된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 그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했다. 그렇게 해서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일단 해보는 것, 해보지 않고 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몇 년 전 가수 타블로의 저서 ‘블로노트’에서 행복을 ‘행하면 복이 옴’이라고 정의한 것을 보았다. 그 정의는 내가 크고 작은 도전 앞에서 주저할 때마다 큰 힘이 되었다. 조르바의 삶과 행적을 읽어 내려가며 오랜만에 그 정의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들을 주저하지 말고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조르바를 통해 한 번 더 전달받은 듯하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한 번쯤은 엉뚱하고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일을 저질러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제안한다. 그곳에 생각지도 못한 큰 자유와 해방감이 당신의 삶에 큰 여지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이 글을 마치며 내 삶과 행복에 대해 고찰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를 추천한다.

 

 

[정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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