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뒤집힌 상을 통해 바라본 이 세계 [영화]

여성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글 입력 2022.03.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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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은 이미 평등하다?”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에서 수잔 팔루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성 평등 투쟁은 '대체로 승리했다'고, <<타임>>은 선언한다.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수 있고, 어느 로펌이든 입사할 수 있으며, 어느 은행에서든 신용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이제 여성에게는 워낙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에 더는 기회균등 정책이 필요하지 않다고, 재계 지도자들은 말한다.”

 

그러면서 수잔 팔루디는, “여성의 지위가 이보다 더 높은 적이 없었다면 어째서 여성들의 감정 상태는 밑바닥에 있을지”를 묻는다. 앞서 적잖은 고위 인사들의 주장처럼 이제는 정말 여성 인권의 신장으로 남녀가 평등한 세상에 도래하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사회에서 여전히 각종 여성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에서는 남성 우월주의자인 주인공 ‘다미앵’이, 여성이 젠더 권력을 쥐고 있는 세계로 이동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이 영화는 소위 ‘미러링’을 통해 기존 사회에서 고정관념으로 자리한 남녀의 특성들을 전복시킴으로써 문제의식을 느끼고 낯선 감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수잔 팔루디가 의문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은 이미 평등하다”라는 사고에 제동을 건다.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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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주인공 다미앵은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유머로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 더욱이 남성 중심의 프로젝트 개발에 힘쓰기까지 하는 ‘여성 혐오적 시선’을 탑재한 인물이다. 그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지고 만다.

 

다미앵이 눈 뜬 곳은 다름 아닌, 여성이 젠더 권력의 우위를 차지하는 세계였다. 그곳에서 다미앵은 기존의 세계에서 좋아했던 ‘알렉산드라’를 만난다. 본래 알렉산드라는 다미앵의 친한 친구인 크리스토프의 여성 비서였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크리스토프의 상사로 바뀌어있다. 다미앵은 그 사실에 짐짓 충격을 받지만 이내 알렉산드라의 마음을 얻고자 비서를 자처한다.

 

그러나 다미앵의 기대와 달리 비서 일은 수월하지 않다. 다미앵은 줄곧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자세로 있기를 강요받고 불만을 쌓아간다. 결국 알렉산드라에게 저항의 목소리를 내보지만, 알렉산드라는 “고루한 남성 주의냐”며 그를 매도하기 일쑤다. 이후 다미앵과 알렉산드라는 성적 구도에서 서로 우위를 점하고자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러는 사이 점차 서로에게 매료되고, 종내에는 사랑하게 된다. 다미앵은 결국 알렉산드라에게 청혼하고 알렉산드라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행복하기도 잠시, 다미앵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는다. 알렉산드라가 기혼자임을 숨긴 채 다미앵을 만나왔단 거였다. 다미앵은 알렉산드라에게, “자신도 다른 남자들처럼 갖고 놀다 버려진 것이냐”며 화를 낸다. 이에 알렉산드라는 지금껏 자신이 다미앵을 두고 소설의 소재로 쓰고 있었으나 전부 끝냈고, 이혼까지 접수했다고 말한다.

 

알렉산드라는 물론 다미앵의 마음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꺼낸 말이었으나, 다미앵은 도리어 자신을 이용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분노한다. 둘은 몸싸움을 벌이다가 세게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진다. 그렇게 이번에는 알렉산드라가 성별이 전복된 세계로 가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2. 거울을 비춘 듯, 성별을 뒤바꾸어 새롭게 조명해본 세계



<거꾸로 가는 남자>의 초반에 등장한 현실 세계에서는 여성 혐오로 가득했던 반면, 이후의 세계에서는 남성 혐오로 가득하다. 다미앵이 회사에 제출한 의견은 ‘너무 남성적이고 섬세하다’는 이유로 철회되고, 얇은 티셔츠를 입으면 직장 사람들로부터 ‘섹시하다’라거나 ‘너무 비치는 거 아니냐’는 등의 평가를 받는 등 성적 대상화 되는 일이 빈번하다.

 

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에서는 남성을 성적 대상화 한 장면이 등장하고, 바에서는 남성이 옷을 거의 다 벗은 채 뇌쇄적인 표정으로 봉춤을 춘다. 기존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나 성차별과 관련한 문제들을 뒤바꾸어 재현한 장면들인 셈이다. 다미앵이 텔레비전에서 절절한 낭만적 서사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역시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평론가 인아영의 말을 상기시키게 만들기도 한다.

 

“최근의 서사에서 우는 남자는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되는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이나 독자 역시 우는 남자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심정적인 거리를 둔 채로 바라보게 된다.”

 

위 장면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고전적이고 시대 역행적 발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남성이 우는 장면이 적게 재현되었던 것과 반대된다. 따라서 인아영의 주장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세계에서 다미앵은 점차 불합리함을 주장하고 저항한다. 알렉산드라에게 수동적인 일은 맞지 않는다거나, 알렉산드라와 동등한 연인 관계에 있기를 바란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앞서 말 한 바 있듯 알렉산드라로부터 돌아온 것은 "고루한 남성주의"냐는 반문이었다.

 

뒤집힌 세계에서 알렉산드라는 기득권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에 사회에 얼마나 불평등이 가득한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닿는 피해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다미앵의 발언을 ‘남성주의적 발언’이라고 일축하면 자신의 기득권적 위치를 유지하고 사회의 불평등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평등을 주장하기 위한 발언을 할 경우 ‘여성주의’냐며 무작정 비난하는 백래시의 상황과 유사하다. 영화는 이렇듯 이 사회를 다시금 바라보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3. 영화 속 가스라이팅의 재현과 그 안에서 제기되는 성별 구분법의 오류



알렉산드라는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를 상징하는 구슬을 통에 담아 전시한다. 더불어 자신이 만난 남자를 소설의 소재로도 이용한다. 남성을 소유물의 일종으로 상정하면서, 얼마나 많은 남성을 만났는지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그리고 남자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경우 "사랑한다"라고 하거나, “너를 만나면 어른이 된 거 같았다”는 감언이설을 흘리며 자신의 옆에 두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가스라이팅에 해당한다. 이때 알렉산드라가 "임신 중이라 호르몬 조절이 안 돼서 그랬다"고 변명한 것은 악행을 자신의 본능이나 유전적인 것으로 책임을 돌리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하고 마는 가해자들의 치졸한 변명과 닮았다. 이렇듯 영화 내에서는 사회에 만연한 데이트 폭력이나 엄연한 가해 행위를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그런데 위 알렉산드라의 변명은 비겁하다는 사실 이상으로, 애초에 어불성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그에 대한 근거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한 젠더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젠더를 각기 다른 개념으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젠더라는 용어가 "생물학적 결정론을 반박하고, 성적 주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위와 같이 유전학적으로 본능에 의해 하릴없이 어떤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젠더가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개념이라는 점은 영화의 다른 장면을 통해서도 재현되는 바다.  우선 크리스토프가 남성 운동에 나갈 때 “아이는 중요하기 때문에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이는 모성이나 양육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더불어 다미앵과 알렉산드라가 각자 자신이 있는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이 왜 현재 위치를 점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둘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풍습을 끌어오는데 다미앵은 선사시대 때 남성이 사냥하여 수렵 채집 생활을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세계에선 여성이 주도하여 사냥했다고 받아친다. 여기서 사회에 만연한 성 고정관념은 본능적인 것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시사하는 셈이다.

 

 

 

4. <거꾸로 가는 남자>의 한계, 남성의 시선을 통한 세계의 재현


 

이쯤에서 다미앵의 시선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미앵은 영화에서 내내 억울한 입장으로 등장하나, 기실 기존 사회에서 기득권의 위치를 점한 바 있다. 그가 다미앵은 자신의 위치를 탈환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눈물겹다. 이는 김지혜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주장한 바를 충실히 재현한 것과 다름없다.

 

“특권을 알아차리는 계기는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이다. 더는 주류가 아닌 상황이 될 때, 그래서 전과 달리 불편해질 때, 지금까지 누린 특권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기득권의 입장이었던 다미앵이 역으로 세상의 불평등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은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남성이고, 우리는 남성의 시각에 대입해 영화를 시청해나가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약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강수를 던진다는 점에서 응원하게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가 기득권으로 있을 때의 역할을 계속해서 고수하려는 시도를 보며 잠시나마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어디에 감정을 이입해야 할까. 이것이 어쩌면 영화의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오류도 존재한다. 다미앵이 알렉산드라의 비서로 일할 때 누군가 자택에 침입하자, 알렉산드라에게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있다. 이때 알렉산드라로부터 “여경을 불러요.”라는 문자가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주류에 속할 때는 단어의 앞에 굳이 그 성별을 붙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여경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았다. 물론 이 사회에서는 여자인 경찰이 대부분이라는 정보를 관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편의상 그러한 단어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보다 섬세한 방식으로 재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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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등: 어느 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가 도모해야 하는 것



<거꾸로 가는 남자>는 재현 방식에 있어 다소간에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성별을 전복시키는, 독특하고도 과감한 방식을 통해 사회의 일면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아주 뿌리 깊은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미앵의 피력이 줄곧 ‘남성주의적 발언’이라며 매도당했듯, 페미니즘 운동에 적잖은 백래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차별을 특정 성별의 문제로 보고 방관한다면 다미앵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내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사회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모두가 이행해야 한다. 이는 특정 집단이 아닌, 우리가 함께 상생하기 위한 방향일지 모른다.

 

 

참고문헌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07.17

수잔 팔루디,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arte, 2017.12.15 

인아영, 『눈물, 진정성, 윤리』, 문학동네 제26권 제4호(통권 101호) , 1~23쪽, 2019.12.10

박미선, 『젠더』, 도서출판여이연, 여/성이론 통권 제1호, 317 - 327 (11 pages), 1999.04 

제인 개인즈, 『여성과 재현: 우리도 다른 쾌락을 즐길 수 있을까?』

 

 

[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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