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되나요? [도서/문학]

책 <인간 실격> 리뷰
글 입력 2022.03.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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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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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일본 문학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책뿐만 아니라 작가의 이름과 일생 역시 유명하다. 수차례의 자살 시도, 사랑하는 여성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으나 홀로 살아남은 남자의 이야기. 마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는 결국 마지막 자살 시도 끝에 만 39세의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둔다.

 

책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조적인 질문이 담겨있다. 특히 주인공인 요조가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된 듯하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을 읽으며 가슴을 움켜쥐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내면의 어둡고 끈적한 지점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방금 뭘 본거지?"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간 책의 내용을 곱씹었다. 공허함과 허탈감에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는 책을 다시 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안 상태에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겨울 것만 같았기에.

 

결국 나는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찬찬히 되짚어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중 드러나는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숙제인, 사랑과 자아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들춰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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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난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특히 서로를 속이면서 조금의 가책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술과 담배, 매춘부, 전당포와 좌익 사상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달랠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그의 근본적인 우울감을 해결할 수 없었다. 요조는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카페의 여급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여자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는다.


그는 죄의식, 인간에 대한 공포, 그리고 허위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방황한다. 시간이 흐른 뒤 요조는 순수한 처녀인 요시코를 만나 아내로 맞이한다. 그리고 요시코가 강간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모든 인간을 의심하고 공포에 떨며 자살을 기도하나 결국 실패하고, 그는 정신병원에 끌려가 ‘인간 실격자’가 된다.

 

작중 요조는 여성 편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고독한 분위기를 풍기며 돌봐주고 싶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잘생긴 청년. 그는 끝없는 공허함에 몸부림치며 수많은 여성의 사랑을 이용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의지하며 자극을 받아 변화한다.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어두운 삶 속에서 구원을 바랐던 요조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첫 번째 사랑, 매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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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는 처음부터 여성을 신뢰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어릴 적 하녀들에게 추행을 당했고, 깊은 인간 불신에 빠져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했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여자들과 어울려왔다. 그는 인간을 향한 공포심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수단으로써 매춘부와의 사랑을 이용했다.

 

요조는 마치 나오코에 대한 상실감으로 원나잇을 한 와타나베(상실의 시대)처럼, 방황의 의미로 사랑을 했다. 그들을 인간이나 여자로 보지 않고, 백치나 미친 사람으로 여기며 하룻밤 동안만 사랑했다. 그 사랑이 진실 여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느끼면서도, 매춘부들의 억지가 아닌 호의,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향한 호의를 느끼기 위해서 그는 사랑을 수단으로써 이용했다.


그의 첫 번째 사랑은 현대 사회의 합류적 사랑에 가깝다. 요조는 마음속 깊은 감정의 심연을 메우기 위한 친밀성이 필요했다. 그 일정한 거리감 사이의 관계에서,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해관계가 다르면 얼마든지 헤어질 수 있는,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사랑을 한 것이다.

 

 

 

두 번째 사랑, 쓰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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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특정한 한 인물을 사랑하게 된 것은 쓰네코가 처음이었다. 요조는 그녀의 지친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내 나와 ‘유사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편안함에 쓰네코를 사랑하게 된다. 요조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작중 처음으로 행복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을 마치 거울처럼 투영하면서 점차 자신이 가진 감정과 상태를 선명히 바라본다. 다만,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아를 탐구한 시도가 항상 긍정적인 성장을 이루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성찰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외면하려고 했던, 남에게 의지하고 가난에 허덕이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요조는 그 결과로 쓰네코에게 동반 자살을 제안한다. 본질적 자아의 탐구는 미숙한 자아가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세계의 고통을 깨닫는다는 의미의 성장. 더욱 처절하게도, 요조는 그녀와의 동반 자살에서 혼자만 살아남는다.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부조리함에 몸부림치면서.

 

 

 

세 번째 사랑, 시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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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는 여전히 남에게 의지하는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남편을 잃은 시즈코라는 여성에게 얹혀살게 된다. 처음 그녀와의 사랑은 첫 번째 사랑과 마찬가지로 수단으로써의 성격이 강했다. 몰래 시즈코의 물건을 팔아 술을 사는 등 요조는 쾌락을 영위하기 위해 시즈코를 이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조는 시즈코와 그녀의 딸 시게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지켜본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모녀의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그들의 행복을 자신이 망칠 것이라는 생각에 곁을 떠나게 된다.

 

'행복하구나, 이 모녀는. 얼빠진 나란 놈이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머지않아 두 사람을 망치겠지. 소박한 행복, 착한 모녀, 두 사람에게 행복을. 아아, 혹시라도 신이 나 같은 놈의 기도도 들어준다면 단 한 번,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두 사람의 행복을 기도하리.’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이 생각나는 구절이었다. 요조는 시즈코와 함께하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녀가 일자리를 구해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줬기에, 동거를 하면서 그대로 살아간다면 계속해서 그녀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관계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했다.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결심하고 일을 시작했으며 의존적으로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려 시도함으로써 비로소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 사랑, 요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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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코는 정말 순수하게 상대를 신뢰하는 착한 여성이었다.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요조를 걱정하고 늘 그를 신뢰했다. 요조 역시 결혼을 결심할 만큼 그녀의 순수함을 사랑했다. 정착하지 못했던 마음을 처음으로 다잡게 해준 사람. 요조는 요시코와 결혼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는 결혼 생활 중 상대에게 신뢰로 다가간 요시코가 되려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에게 잘못은 없었다. 하지만 요시코는 죄책감에 더 이상 예전처럼 그를 마주하지 못했고, 결국 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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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되나요?’


그는 삶은 언제나 모호하고 앞날을 알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생에 답이 정해진 투명한 선택 따위는 없다. 다시금 세계의 고통을 되새긴다. 요시코를 사랑하는 마음과 불신하는 마음이 충돌하고, 결국 그는 정신 병원에 간 뒤 자신에게 삶이 갖는 의미를 찾는다.


‘지금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요조는 사랑의 실패를 통해 자아를 찾고 긍정적인, 혹은 아주 부정적인 변화를 겪었다. 상대방에게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세계의 고통을 인정하고 반쯤 체념한 채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것이 곧 요조의 궁극적 가치관이 되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간다


 

나는 그가 찾은 진리에 동의한다. 삶에는 많은 고통과 시련이 존재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벅찰 때도 있다. 그래서 우울증이 오거나 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는,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무책임하고도 지극히 당연한 시간의 흐름뿐이다.


지독한 우울감에 빠졌을 무렵 이 책을 접했다. 절망과 좌절에 몸부림치는 요조가 안타까웠지만 약간의 동질감도 느꼈다. 당시 나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 절망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진리가 지극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증거로 나는 무기력의 심연 속에서 헤어나왔다. 그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마저 지금은 모두 지난 일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시련과 고통은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고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감정이 들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계속해서 오는 파도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풍화작용에 깎여 나가며 변화할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담담한 말의 반복이, 아직 찾아오지 않은 생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사그라들게 한다.


사랑과 자아에 대해 말하자면, 요조가 성장한 것은 ‘이별’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여겨진다. 이별은 상대와 더불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 점이 참 감사하다. 방황도 하고 성장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나 역시 요조처럼 사랑의 실패에 고통받고, 혹은 그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을 수도 있지만 굳게 믿고 있다. 결국 모든 일이 지나가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요조와 달리 그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웃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인간 실격(2012), 다자이 오사무 작, 민음사 출판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와 세 여인(2019), 니나가와 미카 감독, 엔케이컨텐츠 배급

 

 

[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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