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많은 이들이 와본 곳에 대하여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글 입력 2022.03.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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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대를 위해 몸 바쳐 사랑하고, 그 사람 외에는 온통 흑백처럼 보이는 그런 맹목적인 것이 ‘사랑’이 아니다. 단지 사랑의 한 ‘순간’일뿐이다. 콩깍지라고 하는 이러한 순간들에 속은 연인들은 그들의 사랑이 남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하고 영원한 사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랑과 함께할 것을 약속한 연인은 축복 속에서 영원을 맹세하고, 다짐한다. 아마 영화 속 주인공인 ‘그레이스’와 ‘에드워드’ 역시 그렇게 시작했고, 아들 ‘제이미’는 그 결실이었을 테다.


그러던 어느 날, 29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에드워드는 그레이스를 떠난다. 그레이스는 하루아침에 떠나간 남편을 붙잡고, 제이미는 어긋나는 부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랑’의 한쪽이 찢겨 나갔다. 긴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이별은 아주 간단하고 쉬웠다. 한 명이 그저 집을 나가면서 끝났으니 말이다. 덧없는 질문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정말, 사랑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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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를 떠난 후에도 에드워드는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을 기억한다. 절망에 빠져있던 젊은 시절의 그에게 자신과는 너무 달랐던,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 한 편을 건네던 그레이스에게 위로를 받았고, 애정을 싹 틔웠다. 다르기에 피워낸 사랑은 같은 이유로 시들었다.


그레이스는 선뜻 모르는 이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시를 건넬 만큼 거침없다. “어떡해야 당신이 더 행복해질까?” 시를 엮은 책을 만드는 그레이스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교정해나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누군가는 묻고, 그에 대해 답하며 말이다.


그에 반해 에드워드는 회피성이 짙다.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떠나고 싶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는 그저 있는 그대로, 굳이 말하지 않고 바뀌지 않아도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레이스의 직설적인 표현이 그를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만나 떠났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체만으로 위로와 안정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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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흥미로웠던 점은 오로지 한 가족을 다루면서도 ‘가족’이라는 집단에 맹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되려 공동체에 갇힌 개인에 주목하고, 해체시키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들 제이미가 부모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제이미는 아주 서툴고, 혼란스럽고, 모든 상황이 불편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제이미가 쉬이 극복하지 못한 아픔 속에서 헤매는 것에는 본인 잘못이 없었다. 부모가 갈라진 것은 오로지 둘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그는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그저 좋았던, 다신 오지 못할 과거의 순간을 기억하며 눈물짓고, 다시 양쪽을 번갈아 가며 위로한다.


에드워드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 그레이스가 최후의 비극을 가늠할 때도, 아들은 그러지 말라 말리지 않는다. 대신 용기를 달라고 말한다. 당신이 여기서 떠나는 것을 자신은 막지 못하지만, 떠나지 않는다면 당신의 아들은 그 용기를 배울 것이라고 말이다. 초반의 그를 보며 우유부단하다 여겼던 나는 이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위로였고,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강력한 위로였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부모를 한 개인 개인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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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해체의 방법으로 불륜을 선택한 것은 못내 아쉽긴 했다. 그레이스가 떠난 에드워드를 찾아갔을 때, 상대 여자가 그레이스에게 “불행한 세 명이 있었는데, 한 명만 남았다”라고 말한 것도 도의적 관점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레이스를 향한 응원 같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에드워드의 새로운 아내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끝났을 사랑에 에드워드가 먼저 종지부를 찍었고, 그레이스는 이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어떡해야 당신이 더 행복해질까” 하고 말이다. 그레이스는 괴로움에 돌고 돌아 삶의 끝을 갈구하고 나서야 다시 원래 본인처럼 우아한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여기 와본 적이 있다.”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것, ‘시’가 그레이스의 사랑을 다시 채워줄 것이다. 영화가 상실한 사랑을 다시 채우는 방식이 좋았다. 아픔을 홀로 추스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겪어본,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는 동질의 위로는 그럴듯한 미사여구보다 든든하고 포근히 마음을 토닥여준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며 생겨난 덧없는 질문은 쪼개지고 또 쪼개진다. 나의 사랑이 너의 사랑과 같을까.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가장 사랑했던 순간’이 지나면, 사랑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걸까. 그럼 우리는 에드워드의 말대로, 사랑하면서도 떠나가도 되는 걸까. 사랑을 교정할 수 있을까. 어긋난 지점을 비틀고 꼬집어 완벽한 하트로 자리 잡기까지 생기는 고통까지 감내하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그래서 사랑이 어렵다. 다들 어떻게 이 어려운 것을 하고 있나 모르겠다. 그러나 다들 어떻게든 해내고 있으므로 나도 계속해서 사랑에 도전하려 한다. 답이 없을 것을 알지만, 두려울 것 없다. 많은 이들이 ‘여기 와본 적이 있지’ 않은가.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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