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간주를 점프하지 말아줘

벌써 3월
글 입력 2022.03.0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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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노래방에서 간주를 점프하는 사람과 간주를 다 듣는 사람. 전자는 상당히 실용주의적인 성격임이 분명하다. 여기는 음악감상실이 아니라 노래하는 방이니까 가창이라는 소기의 목적과 관련 없는 간주 따위는 차단한다. 일분이라도 더 노래 부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걔 중에는 극소수로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버리듯이 상의도 없이 남의 차례에도 간점(간주 점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줄여서 부르더라)버튼을 눌러 버리는 골치 아픈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분명 지루한 장면은 넘기며 볼 타입이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골치 아픈 일은 아닌 것이, 애초에 이런 사람들은 나랑 친할 일이 없어서 같이 노래방을 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간주를 점프하지 않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우선 곡의 완성태가 중요한 사람, 그러니까 간주가 삭제된 노래는 전체적인 그림이 깨진다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간주 점프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주체적인 결단으로 느끼는 부류다. 이 소심쟁이 들은 평소에는 노래방에 가지 않으나 밥만 먹고 가려던 회식자리에서 2차로 끌려왔으며, 곡 선택도 본인이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마이크는 다른 사람이 쥐어 주었을 것이다.

 

대략 유형관계도를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IMG_06032022_042602_(700_x_450_픽셀).jpg

 

 

가운데 세모는 속한 무리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양 쪽 모두의 성향을 가진 사람과 어느 성향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 다시 한 번 나뉘어지는데, 어차피 이들은 똑같이 자리의 분위기와 모임의 성향에 맞춰 행동하니까 이 경우에는 구분이 의미 없다.


나는 자리의 분위기에 웬만하면 맞추는 위 그림의 밍숭맹숭한 세모 그룹에 속한다. 나는 네모의 소심쟁이가 아무도 모르게 집에 가려 할 때 유일하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사람이며, 3차를 가기 싫어도 동그라미가 가자고 강하게 주장하면 카카오맵을 켜고 술집을 찾아보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성격 좋은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원래 사람들은 제 각각의 장단점과 역할이 있는 법이다. 네모와 세모와 동그라미가 서로 맞아떨어져서 세상은 잘 돌아간다.


*

 

간주에 대해 생각하면 작년 10월에 열렸던 쇼팽 콩쿠르 결선 무대가 떠오른다. 쇼팽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자는 쇼팽이 작곡한 단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하나를 골라 연주하게 되는데, 대다수가 1번을 고른다. 2021년에도 결선에 진출한 12명 중 9명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으니 결선 청중들은 같은 곡을 아홉 번 듣게 되었다. 반주를 담당한 오케스트라 역시 아홉 번, 리허설까지 포함하면 열 여덟 번이나 같은 곡을 연주한 셈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4분가량 관현악 반주가 나오고 협연자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따라서 청중 입장에서 연주자의 해석 차이도 없이 같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지휘자의 동일한 반주를 반복해서 듣는 일은 사실 좀 괴로운 일이다. 결선 당시 클래식 커뮤니티나 생중계 영상 채팅창에는 간주 점프 안되냐는 얘기가 여러 번 올라왔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05년도 우승자 라팔 블레하츠의 오케스트라 반주가 잘려서 업로드 된 결선 영상이 있을 정도다.


콩쿠르 당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결선 무대에서 보았던 일본인 피아니스트 아이미 고바야시의 연주를 앞 둔 얼굴이다. 전주 동안 협연자가 어떤 표정으로 피아노 의자에 앉아 연주를 준비하는지 지켜보는 일 또한 묘미인데, 아이미가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나는 그녀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음을 확신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향해 눈길을 주는 듯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바깥세계를 향해 있지 않았다.

 

성인의 거죽에 아기의 영혼이 들어간 듯한 텅 빈 얼굴, 나른하게 무엇에 취한 듯하면서 역사가 지워진 얼굴 같았다. 긴장감 때문일까? 그녀는 6년전 해당 콩쿠르에 출전했다가 입상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어쩌면 2021년이 아니라 2015년이라 생각하며 6년 전의 홀을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고바야시의 공간을 떠나 있는 듯한 미묘한 표정이 “대기중” 상태에 꽤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해가 진짜로 시작되는 느낌은 항상 3월에 받는다. 일단 긴 겨울이 끝나고(겨울은 실제 길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겨울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봄이 시작되는 시기이며,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심지어 올해부터는 대통령 선거마저도 3월로 들어왔다. 이쯤되면 3월은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달로 손색이 없다.

 

반대로 1, 2월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 한 해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기마련이다. 대부분이 새해다짐이라는 인간개조를 스스로에게 시도하고 시행착오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나약함을 용서한다. 자신이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 믿으며 아무리 새로운 결심을 해도 봄이 다시 돌아오듯 원래의 나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나 또한 지난 두 달간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작년 말부터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유치원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잠은 계속 밖에서 자고, 얼마전엔 코로나에 걸려 집에 박혀 있다가 격리 해제되기도 했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했으나 잘 안되었다. 성공한 것은 하나 밖에 없다(그건 비밀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미의 그 얼굴이 대충 1월과 2월을 통과한 내 표정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그랬을 것이다.


*


애초에 이 글을 쓴 이유는 공익 근무를 시작하고 이제 어떻게 하면 공익 생활을 유용하게 쓸 것인지 고민도 해보고 실천도 해보라는 잔소리를 근래에 많이 듣게 되어서이다. 내게 잔소리를 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 버튼에는 손대지 말아라. 내 간주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나는 노래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노상원.jpg

 

 

[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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