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별도 사랑의 일부인 것을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글 입력 2022.03.03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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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쉬이 하지 못하여 상대방의 서운함을 샀다.

 

하지만 분명 억울한 점도 있었다. 사랑이 뭔지 당최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인가?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달콤하게 읊조려야 하는가? 몇십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 자신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겠는데, 만난지 몇주 되지 않은 타인을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인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야 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렴풋이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나의 사랑은 아주 굼벵이같은 모양새였다. 서로에 대해 아주 천천히 알아가며 만나다 보면 생겨나는 것이 사랑이었다. 친밀감, 안정감, 소속감 같은 단어로 지은 소박한 오두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사랑을 잘 모르지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이 나에게 또 다른 답을 내어줬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는 것.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랑을 하며, 각자에 맞춘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보통명사지만, 그 단어를 입술 밖으로 내는 순간 고유명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이 그 자체로 사랑이었다. 수없이 각기 다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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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레이스의 요동치는 감정에 공감하면서도, 묵묵히 새로운 삶을 결심한 에드워드의 행동도 이해가 됐다.

 

사랑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에드워드는 29년 동안 함께해온 자신의 가족이자 연인인 그레이스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그레이스가 아닌 새로운 사랑이 이미 생겼다고 하면서.

 

그런 에드워드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레이스는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지독한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상처받았을 것이다. 양방향으로 오가는 사랑을 믿었지, 29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 마음이 고작 짝사랑일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을 테니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하는 고민도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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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가 이 가족을 바라보는 자세가 흥미롭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절대적인 사랑은 없고, 정도나 해결책 역시 없다. 그러므로 누구의 문제도, 누구의 잘못을 짚기에도 어려운 일이다.

 

가족의 해체를 다룬 영화야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 영화에서 새롭게 다가온 것은 완전히 성인이 된 아들 제이미의 존재였다. 만약 그레이스와 에드워드의 이야기만 계속해서 이어졌다면 굉장히 감정적으로 전개됐을 것 같은데, 제이미의 존재가 그레이스와 에드워드의 사랑을, 이 가족의 사랑을 한발짝 떨어져서 천천히 곱씹을 수 있게 했다.

 

제이미는 부모의 이별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는지 괴로워하면서도, 아버지의 선택이 밉고 또 감정적으로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가 힘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려 했다. 그 가운데에서 그레이스와 에드워드를 바라보니 그 누구 한명의 편을 들기 어려웠다.

 

사실 영화 제목인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처음에는 '네 사랑은 착각이었어'라는 어조로 읽혔지만, 영화가 말하는 건 그런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처연하고 담담한 자세로, 아름답기도 잔인하기도 한 사랑의 속성을 그저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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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떠나고 싶을 수 있어."

 

사랑은 영원한가? 사랑은 어떤 논리적인 절차에 의한 결과도, 자연 발생하는 현상이나 감정도 아닌 것 같다. 사랑은 일종의 의지가 아닐까. 그러므로 시작은 찰나의 우연일지 몰라도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 의지와 결심의 산물이다.

 

우리는 절대 같아질 수 없는 존재이면서, 가까워지기 위해 늘 대화하고 노력하며 사랑을 이어간다. 서로 정말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던히 애쓰는 아이러니한 것. 아마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위해 노력해왔을 그레이스와 에드워드를 돌이켜 떠올려본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인 것을, 이별 역시 사랑의 일부인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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