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멸의 아름다움 [음악]

글 입력 2022.03.02 12: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가수의 분위기에, 노래의 선율에, 혹은 가사에 매료되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 하현상은 19년도에 방영한 JTBC '슈퍼밴드' 시즌1 우승팀의 멤버이다. 그의 강점은 음악으로 전하고자 하는 날것의 감정과 메시지가 강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다. '슈퍼밴드' 내내, 그리고 솔로 활동까지 이어진 감정 표현에 사로잡혀 그의 음악에서 느낀 소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불꽃놀이(Burning Sunset)


 

 

 

저물어 가는 태양이 어딘가

떠밀려가던 내 뒷모습 같아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남김없이 사라져버릴까


간주 없이 시작하는 첫 소절은 강렬하다. 같은 가사를 후렴에서도 반복하는데, 몰아치는 멜로디와 상반되게 어딘가 쓸쓸함과 허무함이 느껴진다.


제목으로 사용된 불꽃놀이와 일몰을 보면 둘 다 아름답지만, 찰나의 순간이다. 그런 짧은 순간에 본인을 대입해서 본다. 앨범 소개에 "청춘은 불꽃이다. 모두 저마다의 불꽃을 태우며 살아간다. 불꽃놀이처럼."이라는 문구가 나와 있기도 하다.


저 짤막한 가사만 본 사람이라면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부분이 아름답다는 거지? 세상에, 혹은 사람에 떠밀려서 저물어 가는 모습이 나 같다고 말하는데? 태우고 태우다 못해 사라져버리고 싶은 청춘이 아름답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아쉬운 것 투성이지만

아름다운 건 끝이 있다는 것 아닐까


그 질문에 하현상은 이렇게 대답한다. 끝이 있기에 순간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현상.jpg


 

불꽃은 타고 타다가 언젠가 꺼진다. 해도 빨갛게 불타지만 밤이 되면 결국 져버린다. 이 타오름에는 끝이 있기에 지금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흔히들 청춘에는 열정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느리더라도 그 속도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너무 힘들고 벅차기도 하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같이 든다.


언젠가 이 불꽃은 분명 끝이 날 것이다. 아직 청춘이라 말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끝이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울 거라 믿고 싶다. 적어도 최선을 다하고 하현상의 음악을 들으며 공감했던 순간만큼은 아름다울 것이다.


자신을 태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서 '불꽃놀이'의 가사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생각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공감은 곧 위로가 된다. 위로를 건네받기 때문에 하현상이 말하는 소멸은 더 아름답다.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있다

짧은 순간 부서지면 안 될까


또, 그가 말하는 미련은 끝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타는 순간이 고통스러우면서도 더욱 반짝이고 싶은 것이다. 하현상의 팬으로서는 그가 노래를 더 길게 들려주고 싶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앨범 'Calibrate'를 내면서도 "저를 갈아 넣은 앨범이 나와요."라는 말을 하여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가사이다.

 

 


데려가 줘


 

 

 

그리워지는 옛 모습이

서러워서 난 노래를 부르네

이대로 밤이 가는 건

아쉬워서 또 붙잡고 있네

다시 오지 않는단 걸

아는 것조차 내겐 슬픔이야


여기 또 미련을 말하는 노래가 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에 고요하게 과거의 자신을 곱씹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 노래에서 미련은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적용된다. 옛 순간을 그리워하는 지금 순간도 미래에는 과거가 될 것임을 알기에 지나가는 매시간이 아쉬운 것이다. 이렇게 모든 순간에 미련을 가지는 모습은 애절해 보이지만, 소멸해가는 지금 순간마저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이런 '데려가 줘'와 꼭 이어 듣는 노래가 있다.

 

 

 

어떤 이의 편지


 

 

 

시들어 가는 건

후회 없지는 않겠죠

절대 쉽지도 않겠죠

그래도 아름다워


곡 소개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생각은 어떠할지 떠올려보는 이야기."라고 나와 있다. 가사 그대로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면 후회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트위터 블루룸 라이브에서도 "생각보다 덤덤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진짜 슬프다가 화도 날 것 같고, 그런데 또 그리운 게 있을 것 같고."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을 앞둔, 시들어가는 상황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또 다신 오지 않을 날들이여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여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난 그대를 생각하겠소


미련을 가질 상대가 있고 기억할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미련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들 테니 다른 말로 바꿔보면 그립고, 애틋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좋은 기억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힘들었던 시간 중에도 잠시나마 추억하고 싶은 시간이 남기 마련이다. 곡의 화자가 생각하는 '그대'가 현재 함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화자는 눈을 감는 순간에도 그대를 생각하겠다고 한다.


누군가는 슬프다고 하겠지만

절대 그러지 않을 걸 알기에

긴 꿈을 꾸는 순간에도

나는 그댈 떠올리다가


끝부분의 가사를 보면 죽음을 꿈에 비유한다. 추억을 가지고 영원한 꿈을 꾸는 건 절대 슬프지 않을 거라 말한다. 이 가사를 마지막으로 허밍을 하다 노래는 끝이 난다. 잔잔하고 쓸쓸한 분위기지만 어떻게 보면 허밍이 죽음을 찬양하는 멜로디로 들리기도 한다. 이런 화자의 죽음을 함부로 슬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좋아하는 곡을 반복하여 듣는 편이라 서너 시간 동안 듣고 있을 때도 많다. '어떤 이의 편지'를 그렇게 듣다 보면 주마등이 스쳐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을 감으면 가장 추억하던 순간이 그림처럼 찍힐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감정을 음악을 통해 느낄 때 아티스트의 가치관이나 생각도 함께 전달받는다. 죽음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하현상의 가사와 그걸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보컬을 통해 감정을 공유 받을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소멸과 생성의 연속이다. 한 부분이 끝나면 다른 부분이 생겨날 것이다. 육체의 완전한 소멸도 기억과 함께라면 그리 슬프지 않다. 끝을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되어 보자.

 

 

[정예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