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양화의 다채로운 멋과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기회 - 도서 '동양화 도슨트'

글 입력 2022.02.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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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들어 한국의 자연-특히 산수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고 우리 전통을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산수화와 민화에 대한 지식을 늘리고 싶었다. 『동양화 도슨트』 문화초대를 신청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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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더라도, 동양화의 진입장벽은 서양화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 현대 회화 전, 즉 서양 근세 회화에서 가장 높은 분야로 자리 매겨지는 역사화는 성경과 신화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대마다 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며, 인물과 배경은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사실적인 그림체와 색감 때문에 종교적 상징을 모르더라도 일단 인물들의 감정이나 이야기, 어떠한 상황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반면 동양화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서양화와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진다. 수묵을 기본으로 하여 먹의 농담으로 그려낸 그림은 여백이 많고, 인물이나 산수의 묘사에서 정교함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동양화의 세계관과 동양화의 종류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것을 알아가게 하는 것이 이 책의 혁혁한 가치이자 저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1. 동양화의 뿌리 깊은 세계관: 문인화



동양(아시아)이란 말의 범위는 너무나 넓지만 동양화라 할 때는 그 국가의 범위가 한중일로 좁혀진다. 세 나라가 같은 도구와 같은 재료로, 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나 페르시아, 아랍의 그림은 동양화라 부르지 않는다.(p. 21) 이처럼 동양화와 서양화는 화구에 따라 구분된다. 물론 둘을 가르는 데에는 그림을 그리는 시각,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게 작용한다. 어떤 재료가 나오느냐하는 환경의 문제,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는가하는 문화의 문제가 맞물려 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양화의 이미지는 산수화와 사군자 같은 그림에서 온다. 산수화와 사군자는 각각 그 기원이 병 풍 그림 속 장식 일부에서, 화조화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둘 다 문인화와 문인의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받아 새로운 미학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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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문인화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러면 동양화에서 보이는 특징들-그림에 글이 많이 쓰여 있는 것, 여백의 미가 강조되는 것, 낙관이 많이 찍혀 있는 것, 원근법에 맞지 않는 풍경을 그린 것-등을 이해할 수 있다.

 

문인화는 문인이 그린 그림으로, 문화와 예술을 앞세우던 송나라가 몽골에 멸망한 이후로 많이 그려졌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송나라 시절 궁중 기관이던 화원을 없애면서 화원화가들이 직업을 잃었고, 송나라의 사대부들 역시 관직 길이 막혔다. 물려받은 땅과 신분이 있어 당장 먹고 살 일 걱정까진 없어도 사치하며 살거나 관직에 오를 수 없었던 수많은 문인들은 시에 몰두했고 문인화를 그렸다.

 

문인들은 직업화가가 아니고 그림을 팔아야 하는 입장도 아니었으므로-후일 그 판도가 바뀌어 문인화가 거래되기도 하나 이는 한참 후의 일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 말은 곧 자신들에게 익숙한 예술로 그림에 접근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인들에게 익숙한 예술은 서예와 시였다. 서예의 영향으로 화려한 색감보다는 먹의 농담 표현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는 서예의 획과 여백의 조화처럼 여백의 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해졌다. 또한 시의 영향으로 대상의 실제 외관을 그리는 것보다 마음의 눈으로 본 대상을 그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동양의 산수화에서 풍경의 원근법이 맞지 않는 것 역시 동양만의 표현법을 썼기 때문이다. 산수를 그릴 때 산봉우리 위는 살짝 굽혀 본 시점으로, 산의 전반적인 모습은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펼쳐지는 평지 등은 눈높이에서 바라본 모습을 합쳐서 그린다. (고원법, 심원법, 평원법에 대한 내용은 책의 산수화 파트를 확인하길 바란다) 실제로 본 산이 있어도 그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아 이상적인 풍경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사군자 역시 문인의 절개와 이상을 담은 네 식물로서, 매란국죽 중에서 대나무가 가장 먼저 그려진 것 역시 서예와 관련이 있다. 대나무의 나무 대 부분 표현은 서예의 획을 쓸 때의 붓의 움직임과 유사하고 댓잎은 삐침을 쓸 때의 움직임을 활용하여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인화는 동양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문인화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곧 동양화 감상의 커다란 키 포인트가 된다.

 

 


2. 동양화의 정교함과 화려함: 화조화



한편 동양화에서 정교함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그림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금박을 입히길 좋아하고 장식성과 양식성이 강한 일본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화와 한국화에서는 그런 화려함을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동양화에 문인화 전통보다 더 앞서 자리 잡은 화조화의 전통이 있다.

 

본디 동양화라 함은 중국, 한국, 일본의 그림을 일컫는다고 상기 언급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동양화의 이해, 특히 우리 전통 그림의 이해를 위해 중국화와 한국화를 다루고 있다. 온라인과 sns로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퍼지는 요즘과 달리 과거 문화의 유행은 대륙에서 섬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것은 아마도 대륙의 물자와 인력의 풍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중국화를 먼저 배우고 한국의 경우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자기화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화와는 또 다른 갈래로 발전한 고유한 그림의 갈래를 알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화조화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화조화의 기원은 본래 높은 신분 가족의 조상을 모시는 묘당 벽면을 장식하던 그림이다. 조상의 영혼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그림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꽃과 새를 묘당 벽면에 그린 것이 화조화의 시작이지만 후일 화조화의 범위에는 나무, 풀, 곤충, 야생 동물 등을 포함한 자연의 부분을 그린 그림 모두가 들어간다. 중국에서는 송나라에 이르러 화조화는 절정을 맞게 된다. 특히 황제를 위한 기관이었던 화원의 직업화가들이 화조화를 아름답게 그렸다. 문인화와 달리 둥근 동양화 붓으로 가는 필선을 다루는 것도 능란했으며 새와 꽃의 묘사가 매우 정교하다. 그림의 구도 또한 시각적으로 심미적이다. 한편 화조화는 원의 침략에 따라 남송과 북송으로 화풍 경향이 나뉘게 되고, 양해와 목계 등 화원 밖에서 독특한 화풍의 화조화를 그린 화가들 역시 존재한다. 원의 치세 아래 화원이 사라지고 화조화의 맥이 끊겨버리고 말았지만 양해와 목계가 그린 독특한 화풍의 화조화는 명나라 문인화의 대가인 심주에게로 명맥이 이어졌다. 심주 이후로는 화가의 마음이 투영된 화조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화조화는 어땠을까? 고려 시대의 귀족적인 예술 취향을 생각하면 화조화 전통이 없었을 것 같지 않지만 아쉽게도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의 화조화는 전해지는 그림이 없다. 도자기 문양이나 불화의 배경 속 꽃과 식물을 보고 그 시대의 화조화를 짐작해 볼 따름이다.

 

다행히 조선의 화조화는 전해지고 있다. 조선 초기부터 중국 화조화의 화풍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체적인 발전 과정을 겪었으리라 생각된다.(p. 102) 조선 초중기의 화조화가 산수화의 일부처럼 보였다면, 조선 후기로 가면 독립된 화풍의 화조화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화조화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p. 106) 문인화가인 겸재 정선의 화조화 역시 뛰어나며 정선의 제자인 심사정의 화조화 역시 화려한 맛이 있다. 천부적인 화가 김홍도의 화조화가 뛰어나고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세필의 정교한 묘사와 화려한 색채, 뛰어난 구도. 동시기 중국의 화조화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자기 마음이 투영된 자연을 그렸다면, 우리나라의 화조화는 사실성에 바탕을 두고 그렸다. 색감과 묘사가 화려하면서도 먹의 원숙함이 돋보이고, 또 자연의 조화로움이 두드러지는 화풍의 화조화가 만들어졌다.(p. 107)

 

이처럼 동양화에는 다양한 멋과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알아갈 즐거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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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만의 회화: 풍속화와 민화



풍속화

 

인물화의 시작은 무덤의 벽화, 화조화의 시작은 묘당의 벽면 장식 그림, 산수화의 시작은 병풍 속 그림이었던 것처럼 풍속화의 시작 역시 우리가 알던 의미는 아니었다. 본디 풍속화의 시작은 지배계급의 필요로 의한 것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글을 모르는 백성에게 국가의 기반인 농업과 길쌈을 장려하기 위한 그림, 그리고 또 하나는 통치자가 민생을 파악하기 위한 그림이다. 위에서 아래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그림, 그리고 위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담은 그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등장한 풍속화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활기찬 모습에 산수화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고, 중국에는 없는 새로운 조선만의 풍속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p. 253)

 

저자에 따르면 여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백성들의 의식 변화, 실학의 대두 등이 영향을 미쳤다. 실학은 백성이 잘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으며, 자연히 기술과 실용적인 생산물이 중요해졌다.(p. 263) 그러면서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 화폭에 들어왔고, 그것이 단순히 민생의 보고용이 아닌 미적인 장면 혹은 탐구할만한 장면으로도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의 도화서 직업화가들이 조선만의 풍속을 다룬 우리 고유의 풍속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직업화가들의 풍속화로는 단연 단원 김홍도와 신윤복, 그리고 김득신의 그림이 유명하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김득신의 <파적도>를 본 기억이 한국인이라면 있을 것이다. 비록 진위가 의심받고 있지만 김홍도의 그림으로 알려진 <씨름> 또한. 김홍도 이후로 도화서 화원들에게 풍속화는 보편적인 장르가 되었다. 조선 풍속화의 태동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고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이다.(p. 278) 풍속화의 영역 또한 넓어지게 되었다.

 

윤두서 등의 문인화가도 드러내놓고는 아니었지만 당시 ‘문인이 그리기에’ 속된 주제였던 일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그렸다. 유명한 <나물 캐는 여인 (채애도)>가 그것이다. 문인이 일반 백성 여인 두 명이 나물을 캐는 그림을 그리다니 그의 자화상 만큼이나 상당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사대부 조영석은 실학자라 부를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말 징 박기>에서 말발굽에 징을 박는 노동의 현장을 빼어난 솜씨로 그린 바 있다.

 

개인적으로 19세기의 김준근 풍속화에 흥미를 느낀다. 오늘날 여행지 엽서와 같이 외국인들에게 이국의 풍습과 향취를 느끼게 해 주는 그림으로 풍속화를 그려 팔았다. 그의 그림은 그 수가 매우 많고 그림체가 다르기도 하여 아마 ‘김준근’의 이름으로 외국인 판매용 풍속화를 그려 파는 산업이 있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김준근의 시대를 조금만 지나면 사진의 시대가 오는 만큼, 아쉽게도 풍속화는 마지막 전성기를 화려하고 짧게 맞이하고 사라진다.(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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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민화라는 이름에 대하여.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놀랐던 파트가 민화였다. 민화의 정의 때문이었다. 내가 민화하면 떠올리는 것은 까치와 호랑이가 있는 그림, 특히 해학적인 호랑이 그림이었다. 민간의 아마추어 화가가 그리고 백성들이 소비한 그림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양화 도슨트』에서 접한 민화 지식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저자에 의하면 민화는 ‘民 백성 민’자가 들어가 백성들이 그리고 백성들 집에 걸었던 그림으로 오해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민화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이 조선인/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의 민간 예술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였음을 지적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 미술의 애호가였으나 조선에 대해 제대로 된 배경지식이 없었기에 어색한 이름을 붙였다. 도화서의 화원이나 사대부가 그린 산수화, 화조화 등의 일반적인 그림과 다르다 보니, 조선 민중이 그리고 민중이 소비한 그림이라고 짐작해 붙인 이름인 것이다.(p. 298)

 

그러나 오늘날 민화로 분류되는 <일월오봉도>와 <책가도> 장르는 백성들이 향유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일월오봉도>는 왕실 행사나 왕의 행차 등이 한 권의 책으로 그려질 때 왕의 초상 대신 들어갈 만큼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었고, 정전에서 왕의 뒤를 지키던 그림이었다. 책가도는 글과 유학을 중시하는 문화정치를 펼친 정조가 <일월오봉도> 대신 자신의 어좌 뒤에 세웠던 그림이었다. <일월오봉도>는 사대부조차 쓸 수 없는 그림이었다. 썼다면 역모죄로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책가도는 왕을 보필하는 대신들, 고위 관료 사이 유행하다 하급 관리에게 유행하고, 그다음 그림 걸 공간이 있는 부유한 집에서 유행한 것으로 그 시작이 민간에서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당연히 궁중회화로 분류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일월오봉도>가 민화 안에 들어 있다는 것과 민화의 의미가 잘못 쓰이고 있다는 정보였다. 민화는 장식을 위해, 또는 염원을 나타내기 위한 그림으로,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림을 걸만한 공간이 있는 집’이 있어야한다는 말(p. 299)도 충격이었다. 민화의 주된 소비자는 조선 말기에 양반의 지위를 돈으로 산 사람들이었으리라 본다고 한다. 이들을 백성이나 민중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더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라 한다.

 

민화에 대한 오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화를 그린 화가는 아마추어 화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화의 형식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과 채색은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여유 있는 문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림을 취미 삼아 수련할 수 있는 계층은 없었다.(p. 300) 저자에 따르면 민화의 작가는 도화서의 화가, 또는 도화서 화원 지망생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민화는 도화서의 화가들이 오랫동안 그려왔던 여러 상징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태어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혼란기와 맞물려 급속하게 많은 작품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그림들은 전통과 맥을 같이하고, 대부분의 그림은 전문가의 그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p. 304)

 

민화 파트를 읽는 동안 내 눈은 놀라움에 커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기존에 알던 것과 너무 달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민화말고 새로운 이름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민화의 이름을 가져가되 그 안에 들어 있던 그림들의 분류를 다시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놀라운 내용이 많으므로, 이 부분도 꼭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나는 이 책 때문에 민화에 대한 최근의 논문들을 찾아 읽어보기로 했다.


***


장인용 작가의 『동양화 도슨트』는 ‘청소년을 위한 동양 미술 수업’을 의도하고 이 책을 쓴 만큼 동양화의 발전 흐름을 역사와 연관지어 독자가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렇다고 연도별로 동양미술사 상 유명한 그림들을 딱딱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동양화라는 거대한 바다를 인물화, 화조화, 산수화, 문인화, 사군자, 풍속화, 민화의 일곱 장르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부록으로 붙어 있는 ‘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코너는 동양화 감상법을 얻어가기에 굉장히 쏠쏠하다. 본 리뷰에서 동양화의 기나긴 역사와 발전의 양상을 다 담아낼 수 없었으므로 꼭 책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다. 얼른 동양화 전시를 보러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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