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짓기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2.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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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쓰는 해였다. 우연한 기회로 단편소설을 써서 독립출판을 했고,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하나 찍기도 했으며, 또 소설을 써서 교내 문예지에 실어 날랐다. 다 내가 자초한 글들이었다. 한편으론 인문대학이란 타이틀이 글 쓸 일을 양산해냈다. 모든 대학생이 보고서에서 허덕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국어학 전공 수업의 기말 과제가 문법 지식을 녹여낸 소설 쓰기란 걸 알았을 땐 정말 뜨악- 했었다.

 

 

 

아트인사이트와의 사개월


 

그러다가 연말에 24기 에디터 모집 글을 우연히 보곤 들입다 지원했다. (사실은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다 1분 남기고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별다른 마음가짐도 없이 매주 하나의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을 마주했다. 한 번의 마감을 위해 한 번의 벼락글쓰기를 했으면 되었던 지난날과는 달랐다. 매 일요일에 벼락글쓰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뭘 쓸지 고민하고 어떻게 쓸지 고민했다면, 뒤로 가면서는 점점 바빠질수록 머릿속에 고여있던 키워드 하나 겨우 끄집어내어 후다닥 쓰는 식이었다.

 

막달인 2월엔 소재 고갈의 지경이었다. 일전에 반강제 문화예술 디톡스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바빠서 뭐 하나 제대로 향유하지를 못하니 뭘 사유할 윤활유가 없어서 삐걱였다. 삐그덕대며 타자를 썼다 지웠다.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뱉어내려니 빈속을 비워내는 것만 같았다. 갈수록 소진되어가고 사라지는 그 무언가들. 스스로 계속 뭘 쓰기엔 젬병인 사람인가보다 했다. 그래서 향후 활동도 고사했다.

 

이번 달 마지막에 짬 낼 여유가 좀 생겨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집도 여행도 미술관도 다녀왔다. 드디어(!) 영화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카락스의 영화를 보자니 머리에 안 들어올까 싶어서 물 흐르듯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 영화의 아동용 영화까지 봤다. 다큐도 봤고 남의 졸업 영화제도 갔고 또 갈 예정이다. 탈탈 책과 뉴스도 집어 읽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더 이어서 글을 쓴다고 해야 했나 싶으면서도, 갑작스레 부어 넣는 통에 체한 건지 길게 늘어 완성된 글을 쓸 만큼 생각이 정리되어 있진 않아 안심했다. 그래도 포만감에 미리 춘곤증을 앓고 있다.

 

 

 

아트인사이트와 잡생각들


 

쓰다 보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옆에 남는다. 대체로 그 사람들은 실존하는 나의 주변인인데, 아트인사이트는 거의 그렇질 않다. 그래서 어떤 심리로 글을 읽고 있을까, 어떻게 판단했을까가 주 관심사였다.

 

물론 지인들이 글에서 이런 부분이 좋더라 하고 얘길 건네오기도 하지만, 철저히 익명의 누군가가, 지금도 읽고 있을 그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기억의 곡선에 따라 곧 머릿속에서 사라질 글 중 하나가 되겠지만, 개중 누군가에겐 한 단어라도 남아서 오래 내 글이 빌붙어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의 장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매주 글 기고하기라고 답한다. 철저히 내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이기적인 글을,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곳에, 그것도 떡하니 올려놓을 기회가 매주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벼락글쓰기를 하다 보면 쓰는 능력도 꽤나 나쁘지 않게 변해있다. 한편, 단점이 뭐냐 물어도 답을 똑같이 한다. 하지만 대부분 글은 마감이 있어야 완성되곤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도리다. 서로가 감수해야 할 유일한 부분.

 

미학 문외한이지만 이곳저곳 아트인사이트 덕에 다니다보니 즐길 줄은 알게 되었다. 보고 좋다 나쁘다 정도는 판가름할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도 좀 세웠다. 전시를 보고 나와서 늘 잘 모르겠지만 괜찮았던 듯 정도의 말만 늘어놓다가 이젠 신랄하게 너무 과하다는 둥 못되게 말하는 과도기를 거쳐서 이 부분은 별론데 저건 괜찮더라 하고 적당히 중용을 꿰한 듯한 말 정돈 뱉게 되었다. 가야할 길과 배워야 할 게 태산이겠지만 아무렴 이제 남은 게 시간이다.

 

 

 


 

다른 필진의 칼럼이나 기고문을 읽으면서 깊음을 느끼고 나의 정신적 빈곤함을 보기도 했다. 망상이 생각으로 치부되려면 받쳐주는 지지대가 있어야 할 듯싶다. 마지막 글 취사를 종료하면서, 벼락글쓰긴 당분간 멈추고 채워넣는 시간만 가져야지 하면서도 내 생각을 꾹꾹 욱여넣은 글은 또 언제 쓸 수 있을까 싶어서 시원섭섭하다. 아쉬울 때 이별해야 더 남는 거란 말만 믿고 온점을 찍어볼 뿐이다.

 

Fin.

 

 

[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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