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긴 꿈의 터널에서 더는 잠들지 말기를 [다큐]

체념 증후군의 기록
글 입력 2022.02.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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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오랫동안 잠이 들어 자신을 깨워줄 왕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잠만 자는 공주를 직접 바라보는 상황을 생각해볼 때, 공주의 주변인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현실이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딸을 위해 밤낮없이 간호하는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매일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랫동안 잠에 빠진 아이들이 있다. 이들의 증상을 “체념 증후군”이라 부른다.

 

 

 

삶이 죽음을 향해 당겨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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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접하게 된 “체념 증후군의 기록”은 존 햅터스와 크리스틴 세뮤얼슨 감독의 다큐멘터리이다. 이 증후군은 “특히 아이들에게서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나타내는 증후군으로, 심한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고 정의된다. ‘삶이 나를 앞질러 갈 때’라는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처럼, 생사가 달린 기로에서 마주한 두려움 속 아이들은 극한 절망감을 느끼고, 죽음의 두려움을 피해 눈을 오랫동안 감아버렸다. 몇 년간 보고된 체념 증후군의 사례는 200건이 넘으며, 호주의 난민 수용소에 있는 몇 아이들도 이와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폭력적 상황을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난민 가족들을 담는다. 영상에 따르면 정신적 외상을 입은 스웨덴 거주 난민 아동 수백 명이 체념 증후군의 혼수상태를 겪으며, 이 상태가 수년 지속될 수도 있다고 한다. 체념 증후군의 초기 증상은 말을 하지 않다가 점차 누워만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먹는 양이 줄어들면서 결국 먹고 마시는 것을 완전히 중단하는 양상을 띤다.


어떠한 과장 요소 없이, 사실적인 카메라의 시선은 지켜보는 가족의 아픔을 보여준다. 몇 개월째 잠든 아들을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적막은 견고하지만 깊은 슬픔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아이가 다시 눈을 뜨고 활기차게 움직인다는 그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부모는 그들의 팔과 다리를 움직여주고, 영양을 계속해서 섭취하도록 노력한다.


지금도 수많은 난민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삶 앞에, 죽음의 트라우마를 뒤로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간다. 다큐에 등장하는 7살 다샤 역시 1년 넘게 동안 무반응 상태였으나, 다샤의 가족이 스웨덴에서의 망명 신청이 승인되면서 감사하게도 다야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잠을 자는 상태이지만, 가족의 안정감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릴 수 있으며, 이 희망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증후군 회복의 열쇠가 된다.

 

 

 

진심이 담긴 사랑,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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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가 필요하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을 자라나게 하는 데에는 환경적 요소가 크게 중요하다. 어쩌면 마을이 아닌 전 세계라고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난민 수용에 있어서 비판적인 견해가 두드러지는 현실이지만, 분명 기억해야 할 사실은 꿈과 희망이 짓밟히는 아이들이 무수히 있다는 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다른 차원을 열기 위한 열쇠가 ‘사랑’이었던 것처럼, 하나의 답으로 떨어지지 않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흔한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 정답인 요소이다.


난민과 관련하여, 2015년 터키의 한 바다에서 세 살배기 어린아이 쿠르디의 작은 주검이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쿠르디의 가족은 IS를 피해 터키로 피신했다가 그리스로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중이었으나, 거센 파도로 가족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 참담한 사진 한 장으로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사회적으로 난민에 대한 직접적인 구출과 관련된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의 생명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점점 세계는 반이민 정서로 흐르고만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많은 난민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외국인 보호소에서 거주하기도 한다. 여기서 외국인 보호소는 “미등록 외국인을 강제 출국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일시 수용하는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현재까지 구금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문제가 야기 되고 있다. 국내 현황으로 본다면 난민의 거주는 안전하게 보장되지 못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외국인 보호소 생활을 해야 하기에 외적으로도 안정으로 누릴 수 없으며, 난민 인정을 어렵게 받더라도,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내적 안정감을 누리기는 어렵다.

 

 

 

체념의 잠


 

다큐의 마지막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체념’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동화같이 순수한 이야기만 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어서, 이득이 없어서 우리는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한다는 뜻’의 체념에 빠질 수도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위치하는 약자를 당연히 여기는 현시대의 사고에는 깊은 체념적 인식이 넓게 깔려있다.

 

그러므로 오랜 기간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아이의 꿈에 불을 켜고 손을 잡아줄 안정된 어른이,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함을 인지해야 한다. 아이가 일어났을 때, '잘 잤나고. 무서운 꿈을 꾸지는 않았냐고', 늘 다정하게 물어봐 줄 지구촌이라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무력함, 희망 없음이 만연한 지금의 세계적 상황에 아이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무고한 죽음, 죽음 같은 삶이 더는 발생 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란다.

 

 

*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화성외국인 보호소”

- 난민, ‘세계는 하나’라는 거짓말, 유레카 편집부,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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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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