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을 애도하는 다양한 방법,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

글 입력 2022.02.2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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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가깝게 느껴본 것은.

 

장례식장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나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선생님이시라던가 몇 번 술을 함께 마셨던 동기라던가.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관계이지만, 나의 몇 배에 달하는 눈물을 기꺼이 흘려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죽음을 맞이한 이보다 죽음 곁을 지키는 이들을 걱정하는 나를 보며 이번 죽음은 그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사실 친할아버지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먹한 사이에 가까웠다. 친할아버지는 손자밖에 모르는 지극히 옛사람이셨고 둘째 아들의 딸인 나는 그의 관심 밖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딱히 섭섭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서로,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공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우리 아빠가 꽤 대단한 효자라는 사실이었다. 아빠는 친할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뒷모습만 보아도 인사를 드리라며 난리였다. 친할아버지 말씀에 꼼짝도 못 했고 쉬는 날이면 친할아버지를 찾아뵙기 바빴다. 그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엄마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아빠의 효심은 지극하다 못해 대단했다. 그러니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아빠가 생각났던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때부터 아빠의 얼굴엔 무언가가 나기 시작했다. 뾰루지 같은 무언가가. 나이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붉어진 아빠의 얼굴엔 무언가가 기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몹시 사무쳐서 그 흔적을 얼굴에 남겨두려는 걸까? 거울을 볼 때마다, 그 무언가를 볼 때마다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나는 아빠가 피부과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아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의 저자는 랍비이다. 21세기에 '랍비'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놀라웠다. 내가 아는 랍비는 탈무드에 나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랍비가 전설 속의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랍비로서 자신의 역할을 '이야기꾼'으로 정의했다는 그녀의 특출한 이야기 솜씨가 빛나는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 자신이 목도한 '죽음'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을 풀어놓는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표지-띠4.jpg

 

 

사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진도가 잘나가지 않아 걱정이었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 정도로 책에 깊이 있게 빠져들고 말았다. 여러 가지 인상적인 문구들 중 미셸 르클레르 감독의 코미디 영화 <사람들의 이름>에서 인용한 한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강제수용소를 겪은 유대인의 후손인 주인공이 자신의 중학교에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아이들의 추모 명판을 설치하는 모습을 보며 하는 말이다.

 

제가 살해당했다고 치면, 살해당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매일같이 떠올리게 하는 이 앞을 지나면서 과연 즐거울지 모르겠어요. (pp.56)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 전쟁 그리고 테러 등 역사적인 비극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 비극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둔다. 형태는 각양각색이지만, 역할은 동일하다. 끔찍한 사건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기리는 것. 나 또한 그런 장소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한치도 의구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위의 문장이 추모의 공간이 과연 희생자들의 입장에서도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볼 때마다 잊고 싶은 순간이 떠오를 장소를 과연 감사한 마음으로 지나갈 수 있는 영혼이 어디 있겠냐는 말이다.

 

범죄의 피해자에게 범죄 상황을 진술하도록 시키는 것이 2차 가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렵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것조차 가해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극의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잔혹한 사건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희생자의 가족, 친구, 지인들이 과연 추모의 공간, 그 본디 목적에 공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장소를 볼 때마다 괴로운 기억에 휩싸여 더 고통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책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죽었다'라는 사실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은 이의 인생 즉, 삶에 방점을 찍자 말한다. 살아온 삶의 양상에 따라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쩌면 울음보다 웃음이 더 잘 어울리는 죽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까지 나아가니,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지치고 힘든 모습으로 보냈던 시간들. 친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우리 사회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리 관대하지 않다. 하지만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을 파티처럼 즐기는 어느 나라만큼은 아니더라도 더욱 편안하게, 미소와 함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적어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아파하기보다, 함께한 시간의 추억을 나눌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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