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의 선택 앞에서 - 17어게인 [영화]

글 입력 2022.02.2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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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마이크는 남부러울 게 없었다. 미모의 여자친구, 인기스타, 출중한 농구 실력, 원만한 교우관계. 모든 게 완벽했고, 사회가 정해준 대로 길만 걸으면 미래는 보장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약 20년이 지난 현재 마이크는 첫사랑인 아내와 이혼서류를 주고받으며, 자식과는 데면데면한 사이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손에는 농구공이 아닌 제약회사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의 미래가 예상치 못하게 바뀌게 된 건 대학 진학이 걸린 중요한 농구대회에서 여자친구인 스칼렛의 임신 소식을 들은 마이크의 돌발 행동 때문이었다. 17살의 어린 마이크에게는 눈앞의 대학 진학보다 여자친구 뱃속의 자신의 아이가 더 소중했고, 그게 자신의 미래라 옳다 여기지 못해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선택으로 인해 직진대로일 것 같은 마이크의 인생에 여기저기 장애물이 생기고 만다.

 

그 때문에 마이크는 늘 과거를 그리워했고, 후회를 달고 살았다. 그날 그 얘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시합을 뛰고 얘기를 들었더라면. 얘기를 들어도 시합을 했었더라면. 중간에 뛰쳐나가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불만은 과거의 후회를 불렀고, 저 멀리 머물러 있는 빛나던 순간을 그리워하다 17살로 되돌아가는 마법을 겪게 된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과거로 돌아간 마이크, 과연 그는 그날의 선택을 되돌렸을까.

 

*

 

어떻게 보면 클리셰적인 이야기라 결말은 눈에 훤했지만, 나에게 생각할 거리 하나 정도는 심어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건 ‘과거로 돌아가면 뭐가 달라졌을까’였다.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 사실 여기엔 이미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이야기의 흔적이 꽤 많이 묻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몹쓸 자기연민이 지겨워 더는 안 하고 싶었지만,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할 말이 많아지는 걸 보면 하나의 고질병 같기도 하다.

 

과거로 돌아간 마이크는 현재의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잘못된 부분들을 발견하며 하나씩 고쳐나갔고, 가족의 현재에 좋은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유인 농구에 대한 선택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그날의 선택을 죽도록 후회했으면서도, 결국은 다시 경기장을 박차고 스칼렛을 따라 나가면서 과거와 같은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둘이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마이크는 농구코치가 되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마이크는 결국 또 같은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나 역시 한때 후회를 달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마이크에게 꽤 많은 동질감을 느꼈었는데, 결국 또 같은 선택을 해버린 그의 결정은 내 상식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사랑의 힘 따위의 단어로 설명할 현상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 현상에 대한 나 혼자만의 명확한 답변을 내리고 싶어 오랜 시간을 붙잡고 머리를 굴려봤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거나 마이크가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았다거나 등의 애매모호한 결론만 도출될 뿐이었다.

 

*

 

과거에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대게 후회의 길이가 길다는 점에 있다. 이때, 이 후회의 길이는 한때의 선택으로 인해 현재의 삶을 만족스럽게 영위해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점점 길어지곤 한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늘어진 후회를 등에 업은 이들은 곧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 가상으로 도피하거나 과거로 돌아가길 간절히 희망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가 반복되다 보면 상황은 즉시 악화 되는데,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과거 자신이 한 선택이 마치 남이 억지로 떠넘긴 숙제인 양 타인에게 책임을 물게 된다. 결국 후회는 미련을 낳고, 미련은 자기연민을 불러오고, 자기연민은 책임 전가를 가져온다. 이건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불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크 역시 불변의 과정을 거치며 종국에는 스칼렛을 탓했기에 현재에는 이혼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건 아마도 감당하기 힘든 크기의 후회를 그렇게라도 남에게 억지로 덜지 않으면, 도저히 제정신에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행동인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생각보다 인간은 훨씬 더 비겁하고 나약하니까.

 

선택은 후회를 부르지만, 후회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태도에 따라 삶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뭘 선택하든 간에 크고 작은 후회는 생기기 마련이고, 자신이 내린 결정은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던 것을 마이크도 나도 이제는 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에 미련해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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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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