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나더 라운드 -술을 통해 바라본 인생-

글 입력 2022.02.2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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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술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포도의 달콤함, 맥주의 담백함 등 재료에서 비롯된 맛은 제각기이나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십 년 동안의 숙성에서 비롯된 쌉싸름하지만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취기가 있다. 아마도 이 한 가지 공통점이 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하지만 즐거움의 대가로 술은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힌다. 술의 주 성분인 알코올이 뇌에 도달하는 순간 도파민을 만들어내면서 우리를 즐겁게 만들지만 동시에 뇌의 이곳저곳에 흘러들어가면서 악영향을 미친다. 기억력, 통제력 등을 떨어트리면서 점차 뇌가 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정신을 놓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술이 주는 즐거움 속에는 우리의 정신을 놓게 만드는 위험한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를 정신 놓게 만드는 알코올이 굳이 나쁘다고만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주지 않을까? 과연 제정신을 차린다는 것이 꼭 우리에게 좋다는 관점을 버린다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리뷰할 어나더 라운드는 이 해답을 찾아 나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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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부족하다.


 

한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가 이렇게 주장한 바가 있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지. 정말 혈중 알코올 농도가 짙어진 체 내뱉은 말인지. 분간은 안가지만 어쨌든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일 때 가장 이상적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태어날 때,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부족한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족한 농도를 채우게 되면 인간은 좀 더 여유를 찾게 되어 좀 더 활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 술을 먹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듯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자들이 있으니 바로 오늘 영화의 주인공 학교 교사 마르틴과 그의 동료 교사 토미, 피터, 니콜라이이다.

 

덴마크의 한 학교의 교사인 마틴과 그의 친구들은 평화로운 교사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폭풍 전 밤이 고요한 법. 그들의 교사 인생에큰 위기가 다가온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 이제는 열정을 잃어버린 마틴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시도라던가 의욕 넘치는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인 그에게 학생들은 실망을 느낀다. 마틴의 수업에 열정을 느끼지 못한 그들은 마틴을 향해서 더 이상 수업을 듣지 못하겠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마틴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마틴은 열정을 잃어버린 자신을 직시한 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린다. 그러던 중 니콜라이의 생일파티에서 니콜라이가 한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바로 앞서 소개한 핀 스코르데우의 정신 나간듯한 주장이다. 니콜라이를 비롯한 마틴의 친구들은 웃어넘기지만, 마틴은 이 주장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마틴은 딱 한 번 이 주장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실험해 보기로 한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보드카 한 잔을 들이켜고 음주측정기를 분다. 그리고 자신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라는 것을 확인한 마틴은 교실로 들어선다. 예전보다 더 자신감이 쏟아지는 마틴은 단숨에 교실을 휘어잡기 시작한다. 평소와 달라진 마틴에 놀란 학생들은 점차 마틴의 수업에 빠져들었다. 마틴의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곧바로 마틴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이 이론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실험해 보기로 결정한다. 근무 중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유지를 위해 술을 마시되 주말과 오후 6시 이후는 금주라는 조건을 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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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자 보이던 것들


 

몸속에 알코올이 전혀 없을 때,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고 알코올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점차 뇌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뇌의 기능이 마비된다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흐를 것 같으나, 오히려 영화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술을 먹으면서 이성을 조금은 놓자, 마틴과 그의 친구들에게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전에는 소심하게 말도 걸지 못하던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과감하게 새로운 수업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성이 잡아 놓고 있던 무언가가 풀려나자 학생들도 그 에너지에 끌려오기 시작한다. 이성이 잠재우던 에너지가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이성이 잠재우고 있던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풀려나면서 잠자고 있던 그들의 의욕을 깨운 것이다. 의욕이 깨어나자, 그들을 좀 더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다. 피터는 학생들에게 과감하게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체육 교사인 토미는 축구 시합에서 소심한 학생을 과감하게 스트라이커를 맡긴다. 마틴은 히틀러, 처칠, 루스벨트의 성격들을 나열하면서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더욱더 술에 취한 교사들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마틴과 친구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서 그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조금씩 올려보기로 한다. 0.1%, 0.2%... 점점 혈중 알코올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들의 이성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자유로운 영혼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미쳐날뛰기 시작한 그들의 영혼이 어떤 파국을 가져올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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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술에 취하다.


 

마틴과 친구들은 이 실험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지 않고, 최대한 혈중 알코올 농도를 끌어올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자고 한다. 한마디로 미친 듯이 술을 마시겠다는 소리다. 테킬라, 칵테일, 위스키 등등 온갖 술이란 술을 끊임없이 입으로 들이 삼키면서 그들은 점차 취해간다. 취하면 취할수록 그들을 잡아 주던 이성은 완전히 쓰러지고, 육체마저 그들의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여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맞이한 것은 극도의 즐거움이 아닌, 파국이었다. 술에 진창 취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그들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가족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그들이 취해 있었단 사실을. 여기서 그들의 비극이 그쳤으면 좋겠다만, 이게 웬걸 학교에서 술을 마시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마틴의 친구 토미는 때 마침 술에 취한 체 학교에 등장한다. 그들을 즐겁게 해주던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이제는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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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본 인생


 

술에 취한 체 벼랑 끝으로 몰리던 4인방 중 토미는 특히나 상황이 심했다. 술에 취한 체 학교에 등장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계속 술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토미는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갑작스레 하늘로 떠난 것이다. 마틴과 남은 친구들은 토미의 죽음을 애도하며, 남은 3명은 또다시 술을 마시려 했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졸업생 무리들이 등장한다. 자신들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말이다. 과연 토미는 이 상황에서 어찌했을까? 마틴과 친구들은 졸업생들에게 다가간다. 


 술로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고, 자신감을 되찾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성이 눌러왔던 영혼이 풀려나면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선사받았다. 우리가 흔히 좋은 길로 이끈다고 여겼던 이성이 어쩌면 우리를 구속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런 이성이 힘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 모른다. 마치 마틴과 친구들처럼 말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끝에 다다를 수도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토미처럼 말이다. 명확한 장점도 단점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술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술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적당히 조절해야 할 이유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마틴과 친구들도 그걸 깨달았을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졸업생들과 함께 술에 취한다.


 술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 같지만,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영화에 담겨 있다. 우리는 항상 이성을 유지하기를 강요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이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성이 구속해온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미처 보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 자신을 구속해오는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도 있는 법이다. 술은 이성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사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술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에 있어 우리를 지나치게 구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에서 너무나도 멀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술에 취한 마틴과 친구들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결국 영화는 인생에 있어 이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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