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나요?

글 입력 2022.02.2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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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나요?'

<버드맨>, 2014,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버드맨- 혹은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

 

  

우리는 사랑을 원한다. 허나 인생은 절대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우리의 사랑도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사실에 무기력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된 단순하고 일시적인 사랑을 벗어나 진정으로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사랑을 찾는다면, 더욱이 그러한 사랑을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줄 수 있다면, 조금은 기운 나지 않을까. 영화 <버드맨- 혹은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리건'은 히어로 영화 '버드맨'으로 인기를 끌었던 왕년의 무비스타다. 시간이 흘러 이젠 사람들에게 잊혔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의 연출과 주연을 맡으며 더는 '무비스타'가 아니라 '배우'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하지만 이건 그의 바람일 뿐, 갑작스레 하차한 배우의 자리를 급히 채우게 된 배우가 무대 위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유력한 비평가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의 연극을 망쳐버리겠다고 선언한 데다, 아내와는 이혼한 지 오래됐으며, 유일한 가족인 딸 '샘'과의 관계는 최악이다. 이런 현재 상황에서 대중의 사랑받는다고 한들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쯤에서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인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을 떠올려보자. 리건은 연극 쉬는 시간에 예기치 못한 일로 뉴욕 한복판을 나체로 뛰어다니게 되는데, 이 광경이 SNS에서 화제 되며 그의 근황은 물론 그가 출연하는 연극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갈구했던 대중의 사랑은 그가 전혀 속하지 않은 SNS 상에서 존재하고,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관심인지라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노력으로 얻을 수 없던 것을 얻게 해주는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 때론 너무도 간절히 바라던 것이 알고 보면 그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는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이 영화의 부제목인 이유다.

 

이윽고 리건은 자신이 열망한 사랑이 무의미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연극이 재개되자, 리건은 사랑에 배신 당하고 자살하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준비한 가짜 총이 아닌 실제 권총을 들고 올라간다. "난 사랑받지 못해, 난 존재하지 않아, 난 여기 없다고"라는 대사와 함께 직접 자신의 머리를 쏜다. 하지만 관객들은 리건의 자살기도가 실감나는 연기라고 생각해 그에게 기립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즐길 새도 없이 피 흘리며 쓰러져서야 원하던 것을 손에 쥐게 됐다니. 삶이란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 속 아이러니인 것이다.


하지만, 리건은 죽지 않았다! 비록 묵사발 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리건의 연극을 망쳐버리겠다던 비평가는 예술지 1면에 그를 새로운 전설이라 칭찬한다. 그의 쾌차를 비는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물론, TV에서 생중계까지 된다. 잠시 뒤 샘이 들어와 그가 좋아하는 라일락을 건네주며 그를 껴안는다. 바라온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떨떠름해 보이던 리건은 샘이 잠시 병실을 나간 사이, 창밖으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다 투신한다. 곧이어 샘은 사라진 리건을 찾다가 열려있는 창문에 걸린 하늘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렇듯 명확하지 않은 결말이기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2014년도 개봉작이니 그럴 법한 분석은 다 나왔을 거다. 그럼에도 굳이 8년이 지난 지금에 와 한마디 거드는 글을 써내리는 건, 영화를 통해 꼭 전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 샘은 리건이 가장 싫어하는 꽃을 건네며 "아빠가 원하는 건 그들에게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 대사는 영화를 관통한다. SNS 상에서 잠시 인기를 얻은 것에 더해 배우로서 큰 인정과 찬사를 받게 됐지만, 일평생 원한 사랑은 그들에게 없었다. 리건을 괴롭혔던 버드맨의 환영을 물리친 건 남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에게 읊조린 한마디이며, 그가 바랐던 꽃을 선물한 건 바로 평생 철저히 외면해온 딸 샘이다. 이 순간, 리건은 본질적인 배역으로 삶이라는 무대에 임해야 함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나’로서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을 굳건히 믿어주고, ‘아버지’로서 딸 샘과 애정을 누리며 살아가야만 사랑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리건 톰슨’의 인생 2막을 위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의 하늘로 날아오른다, 오직 ‘샘 톰슨’ 앞에서 말이다.


우리는 사랑을 원한다. 허나 인생은 절대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우리의 사랑도 원하는대로 할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사실에 무기력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된 단순하고 일시적인 사랑을 벗어나 진정으로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사랑을 찾는다면, 더욱이 그러한 사랑을 내가 먼저 나에게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달라진다.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모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진실한 사랑에 의해 끝내 자신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리건처럼 우리도 각자의 무대 위 주인공으로서 기필코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길 바란다. 레디, 액션!

 

 

[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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