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에서 ♥을 주는 □에게 : 시민청 '이그지스트 : 별들의 터널'

글 입력 2022.02.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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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SNS의 하트를 무심코 누르시지 않았나요? 여러분은 누구에게 하트를 건네곤 하나요? 이번 전시에서는 종()에게 ♥(하트)를 건네보고자 합니다.

 

노지영 작가는 미디어 매체로 생명을 소환해 내는 현대미술작가입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이그지스트 : 존재 증명> (2020) 을 선보인 후 시민청 소리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 <이그지스트 : 존재 증명> (2021)을 공개합니다.

 

<이그지스트 : 별들의 터널>은 다양한 생명의존재에 대해 조명한 프로젝트로, 무차별적 세계 속 잊혔던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탐구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볼 수 있는별들의 터널로 관람객을 초대합니다.

 

“다시 태어난 생명들이 통합된 세계로 소환되기 위해 스쳐 간다. 생이 다한 것은 보내주어야 하니 매달리지 말라 일렀다. 그러나 종이 울려 퍼질 때마다 위기에 처했던 생명, 종들이 소환되어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을 나열한다” 전시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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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무지갯빛 장막을 걷고 들어가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분리된 별개의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터널을 거닐다 보면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바로납작한 세계로 통합되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모든 별(생명체)들의 움직임입니다.

 

"소란한 세계 속, 고요한 찰나의 이곳은 <이그지스트 : 별들의 터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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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해있는 두 스크린은 일종의 시퀄로 별들의 터널을 지나 소환된 새로ㅍ운 종들의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를 통해 작품 속 등장하는 여러 종(種)의 의미와 역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블루버드는 SNS 트위터를 떠올리며, 공룡은 무작위의 메모리 난파 속 조우하게 됩니다. 뱀은 용이 되지 못한 비극적인 보통의 설정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 매탈뱀으로 강화되며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이족보행서포터는 인간을 간접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품 가운데 위치한 흰색의 유연한 벤치에 앉아 양쪽 벽면의 영상을 동시에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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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기면 <이그지스트 : 존재 증명>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이 작품은 생명들이 평평한 세계로 통합된 순간을 포착해 세계관이 형성된 기원을 설명합니다. 이곳은 세 가지 규칙을 전제합니다.

 

[첫 번째, 시공간의 구분이 없이 평평하다. 시간의 낙차가 없어 영원한 시간 속에 존재하며 낮과 밤이 공존한다. 존재는 영원한 순간에 고여있기에 오히려 자유로이 어디에서든, 언제든 존재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마치처럼 어디로든 복제되고 공유되며 이미지로서 부유할 수 있다.

 

두 번째, 모든 생물은 SNS 가상 세계 속에 존재한다. 시대 개념이 뒤섞인 상황 속에서 존재들은 인간들의 SNS 속에 통합되어 버리며 모든 생명이 공존해야 하는 위기를 마주한다. 이렇게 생이 다하기 전 소환되는 기회를 얻어 다른 세상에 도착한 존재들은 새로운 환경을 기회로 살아남고자 다른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 번째, 이곳에서 이족보행은 서브 역할이자 매개체이다.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탈피해 모든 것을 위계 없이 그 존재 자체로 바라본다. 모든 생명체는 더는 무엇이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아도 되며,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매번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이족보행서포터는 그 주체를 동물에게 이양하며 서포터를 자처한다. 한편, 이족보행 서포터는 생명체를 SNS로 소환하는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사랑으로 표상되는 SNS 속 하트를 누르면 생명체는 코드화되어 디지털 상태로 떠다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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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작품들이 소환된 생명체들에 주목했다면, 두 작품은 이족보행 생물에 초점화가 되어있습니다. <매직 서클-☆☆소환>은 관람객의 접근에 따라 센서가 반응해 바닥 화면에 QR 코드가 등장합니다. 작가는 마법진으로 발동해 별들을 소환한다고 비유합니다. 여기서 발걸음을 옮겨 마주한 <75분의 1>찰나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사진촬영을 통해 QR코드를 인식하면 인스타그램 AR 필터를 통해 공룡 캐릭터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순간의 촬영으로 우리는 어느새 이족보행 서포터가 됩니다. 순간의 시간이 고여있던 터널 속 생명체와의 만남은 우리의 SNS 속에서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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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은 어두운 긴 통로의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작가는 마치 이곳을 각각 영상 속으로 들어가면 깊지만, 몇 걸음을 걸어 나가면 스쳐 지나가는 터널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터널을 나오자 영원했던 시간이 다시 흐릅니다.

 

전시는 절멸위기를 맞닥뜨린 생명체들이 어느 날 현대의 주술인 코딩을 통해 소셜미디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부활하게 되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형식을 취합니다. 설산, 사막 등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설정한 배경은 가상성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종소리 그리고 대 피리 연주와 함께 울리는 띵동 사운드와 이족보행 생물의 발자취를 강조해 주는 등 게임 효과 오디오도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QR 코드로 인식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AR 필터, 마주해있는 두 스크린 가운데 위치한 흰 벤치, 무지갯빛 장막까지 관객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관람 요소들이 많습니다. 미디어 영상이 근접한 공간인 것을 고려해 작품끼리 서로 상호작용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장소 특성적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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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도시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굉장히 평평합니다. 반면, 자연에서는 사물의 전면을 볼 수 있기에 입체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필자는 전시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해보길 시도합니다. 디지털 노마드 세상 속에서 핸드폰으로 언제나 볼 수 있는 SNS에 모든 것이 뒤섞여 공존하는 자연을 투영해봅니다. 덕분에 밝은 화면 속 생명체는 어디든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시장 내부도 미디어아트 작품이 자연으로 표상되는 어두운 터널 속 별이 되었다. 이렇듯, 도시와 자연에서의 관점을 통합시킵니다.

 

이야기의 뒷편에만 머물던 대상을 호명한 것도 인상깊습니다. 누구나 아는 시 김춘수의 <>에서도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존재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던 생명체를 다시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어쩌면 가졌을지 모릅니다. 한편, 전시는 결국 생명체가 우리를 호명하며 위로를 준다고 말합니다. 숨쉴틈도 없이 잠겨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불안감, 누구나 한 번 쯤 느꼈을 법한 보편적인 감정을 공감하게 해줍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길을 찾아나가며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존재로 나아가는 모습이 용기를 주기도 한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이 마치 ''로 표상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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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우리, 잠시 시간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요? 여기, 영원의 공간의 상징인 '별들의 터널'이 있습니다.

 

. . .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작가는 정혜인 시인님의 구절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산다고 합니다. ♥을 주어 소셜미디어로 종들을 소환한 건 이족보행 서포터지만, 어쩌면 화면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생명체들도 우리에게 를 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별들의 터널에서 함께 이족보행 서포터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장소 : 시민청 소리갤러리 B1 / 기간 : 2021. 12. 9 - 1. 31

 

 

[윤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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