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을 담습니다. [도서/문학]

대필가 포포의 일상 "츠바키 문구점"을 읽다
글 입력 2022.02.1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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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면 기분 좋지만 내가 쓰고 싶지는 않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손편지보다는 빠르게 보낼 수 있는 메일이나 메시지가 보편화 되는 현대 사회에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기껏해야 축하 행사에 일환으로 인터넷에서 글귀나 이미지 사진을 메시지로 보내지 일상생활에서 손편지를 잘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 편지를 받으면 소중히 간직하긴 하지만 내가 써서 보내는 일은 잘 없었다. 변명 같지만, 손글씨를 쓸 일이 잘 없다 보니 썩 예쁘다고 말하지 못할 글씨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메시지로 써도 편지다.'라는 마음으로 장문으로 된 메시지와 기프티콘, 편지를 쓰게 되더라도 짧은 문장으로 카드 한 장 보내는 게 다였다. 편지라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받으면 기분 좋지만 내가 쓰고 싶지는 않은.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츠바키문구점.jpg

 

 

 

'뭘 대신 써주는 거지?'


 

츠바키 문구점은 대필가였던 할머니의 엄격한 가르침에 지쳐 어린 시절부터 가출해 해외를 돌아다니던 주인공 포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문구점과 함께 대필업도 이어받아 생활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대필업이라는 직업은 생소했다. 대필이란 게 무언가를 대신 써주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쓰는 직업이란 말인가. 그러한 물음은 책장을 넘기자 알게 되었다.

 

편지를 써주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있어 '편지를 대신 써준다.'라는 이미지는 그것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변호사를 옆에 두고 유서를 작성하는 회장님의 모습.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림같이 의뢰인을 옆에 두고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요구를 듣고 그에 맞추어 내용을 생각하고 편지를 써서 부치는 일이었다. 의뢰는 목적은 다양했다. 헤어진 옛 인연의 안부를 묻는 편지도 있었고 돈을 빌려달라는 일을 거절하는 편지도 있었다.

 

나는 포포의 배려심과 세심함에 놀랐다. 포는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끝까지 들어주었고 의뢰에 맞게 종이와 잉크를 고르고 펜도 모두 다르게 사용했으며 필체마저 바꾸어 썼다.

 

때로는 씩씩하게 때로는 유려하게. 편지를 읽는 사람에게 내용이 완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편지 넘어 보내는 사람의 진심이 보이도록.  포포의 세심한 배려는 전하려고 하는 바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편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구나. 내가 편지라고 써 왔던 것들은 과연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써왔을까?

 

 

편지.jpg

 

 

 

'손편지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정성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겠지?'


 

아니었던 것 같다. 대충 구색 맞춰 구해온 편지지 세트에 여기저기 틀리게 써 고친 자국이 여럿, 멋 내본다고 꺼낸 낯선 볼펜으로 인해 삐뚤빼뚤해진 글씨에 번진 글자들. 내용은 또 어떠한가. 편지지 채우기에 급급해 중구난방인 편지가 아니라 아무 말 대잔치라는 말이 어울리는 문장들의 모음집.

 

정말 정성을 담았다면 적어도 번진 자국은 없었어야 했고 내용은 통일되어 있었어야 했다. 그저 썼다는 성취감에 취해 오만했다. 받는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편지들이었다.

 

책을 읽고 많이 반성했다. 포포만큼의 정성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정성도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책장을 넘겼다. 포포가 편지를 쓰며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나도 달라지고 싶었다.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진심을 전할 수 있는 편지가 쓰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마음가짐'


 

포포는 의뢰를 받고 바로 써 내려가지 않는다. 편지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평소처럼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구상이 떠오르면 충분한 생각을 거친 뒤 세심하게 종이와 필기구를 골라 편지를 써 내려간다.

 

잘못된 글자가 없도록, 잉크가 번지지 않도록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비유를 사용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진심이 보이도록 포포는 조심스럽지만, 거침없이 내용을 써 내려간다.

그 후 가장 어울리는 봉투와 우표로 봉한 후 편지를 보낸다. 진지한 작업이었다. 포포가 편지를 쓰는 내용을 읽을 때마다 책 밖에 있는 나도 진지해졌고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편지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랐구나. 포포는 일이니까 열심히 썼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직업이니까. 남의 편지를 대신 쓰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편지라는 것을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가 받았을 때 기분이 좋으니 내가 어떻게 쓰던 상대방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쓰는 내가 진지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 수 있을까.


다른 점을 인지하고 나니 어떻게 변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달라지고 싶었고 달라지기로 했다. 책을 덮은 후 편지를 쓰고 싶었다. 제대로 된 편지를 말이다. 이후로 나는 전보다 자주 편지를 쓰게 되었다. 축하할 일이나 위로할 일이 있을 때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용을 생각하고 구겨진 자국 없는 깨끗한 종이에 조심스레 한 글자씩 마음속 진심을 써 내려간다.

 

받는 사람에게 진심이 느껴지도록 존중받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나는 종이에 마음을 담는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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