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임천지심', 산수를 보는 방법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2.1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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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며, 조선 산수화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다. 한편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로,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한 독자적 화풍을 개척한 인물이다.

 

겸재 정선과 폴 세잔은 살던 시대도, 살던 곳도 전혀 다르지만, 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여러 차례 그린 것과 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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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경교명승첩》 하첩 중 <장안연우>, 간송미술관 소장

 

  

《경교명승첩》에 실린 <장안연우>는 정선이 백악산 서편 능선에서 지금의 경복궁과 인왕산 자락을 보고 그린 그림으로, 비안개 사이로 보슬비가 내리는 광경을 담고 있다. 정선은 조감법(鳥瞰法)을 적용하여 그가 서 있었을 법한 장소를 근경의 낮은 위치에 배치하고, 저 멀리 화면 중심에 남산을 그려 넣었다.

 

‘조감’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만약 그가 그린 것처럼 실경을 감상하려면 하늘을 나는 새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선은 머리로 부감한 시점을 상상한 뒤 여러 풍경을 합성하여 아름다운 진경을 그려낸다.

 

 

Mont_Sainte-Victoire_with_Large_Pine,_by_Paul_Cézanne 복사본.jpg
Paul Cézanne, Mont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1887, Courtauld Institute of Art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1887~1890)을 보면 색면이 겹쳐져 서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덕에 산이 주변 공기에 녹아든 듯하다. 세잔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산을 직접 보고 그렸음에도 눈으로 본 것을 그리기보다는 풍경을 머리로 느끼고 마음으로 재구성하며 자연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한다.

 

이처럼 그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응한다. 즉 보는 행위를 강조하며 자신을 외부세계와 물리적, 정신적으로 관련시키는 그의 작업은 그 무엇보다 내면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임천지심(林泉之心)’은 북송 6대 황제 신종 때 활동한 화원 화가이자 이론가로서 산수화 창작과 이론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곽희의 산수화론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곽희는 『임천고치(林泉高致)』 「산수훈(山水訓)」에서 “산수를 보는 데에도 법이 있다. 숲과 시내의 마음으로 다가서면 값어치가 높아지고 교만과 사치의 눈으로 다가서면 값어치가 떨어진다”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화가는 미적 관조를 통해 산수와 조응하는 ‘임천지심’한 마음으로 산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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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정선과 세잔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정선은 단순한 모방으로는 실제로 풍경을 보고 느낀 감흥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연에서 받은 감명을 강조하고자 대상을 과장하고, 왜곡하거나 생략하여 그린다.

 

세잔 역시 “산이 내 몸에 들어와 산의 의식이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한 데서 그가 풍경을 볼 때 가졌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비단 화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연에 가져야 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는 ‘임천지심’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두 화가를 하나로 이어낸다.

 

 

참고문헌

배지민 (2011). ‘수묵 감성’으로 본 현대 도시의 공간감 표현과 그 가능성 모색(국내박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울.

윤진영 (2013). 조선후기 西村의 명소와 진경산수화의 재조명. 서울학연구, (50), 69-107.

정민영 (2013). [정민영의 미술칼럼] 같은 소재, 서로 다른 감동. 대한토목학회지, 61(11), 108-115.

이태호, 『이야기 한국미술사』, 마로니에북스, 2019.

네이버 캐스트, 테마로 보는 미술, '진경산수화', 2011. 04. 20.

두산백과, '폴 세잔'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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